열광적 반응 ‘탑골가요’, 그 흥을 깨뜨리는 자 무시당할지니

2019-09-19 13:58:57



세기말의 ‘탑골가요’가 레트로 시대에 사랑받는 이유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탑골가요’는 유튜브에서 실시간 스트리밍 중인 1998년 2월부터 2001년 12월까지의 [SBS 인기가요]의 별명이다. 한때 1990년대와 2천 년대 인기가요가 <가요무대> 같은 프로에 등장할 수 있을지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이후 JTBC <슈가맨> 같은 1990년대 2천 년대 인기곡을 함께 즐기는 예능프로그램이 등장하기는 했다. 허나 격렬한 춤과 랩, 테크노비트가 충만하던 그 시절의 인기가요를 과연 <가요무대>가 살려낼 수 있을까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시대는 다른 방식으로 세기말의 <가요무대>를 지금 보여준다. 바로 유튜브를 통해서다. 유튜브에서 한국 가요계 레트로 열풍의 ‘슈가맨’ 양준일 폭풍 이후, 아예 세기말과 밀레니엄 쇼프로를 통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에 시청자들은 이제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전성기를 누리던 핑클과 JTBC <캠핑클럽>을 통해 돌아온 핑클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또한 적극적인 <탑골가요> 산책자들은 실시간 채팅을 통해 빠른 방식으로 티티카카 ‘드립’을 공유한다. 내기장기 두는 노인과 그 주변의 훈수꾼처럼, 실시간 세기말, 밀레니엄의 <인기가요>를 보며 2019년의 입장에서 훈수를 두는 것이다. 나우누리 채팅방의 1990년대 20대와 ‘레트로’ 뮤직을 좋아하는 2019년의 20대가 시대를 거슬러 세기말, 밀레니엄의 저 세상 가요무대를 보여주는 유튜브 채널에서 조우하는 것이다.



그 훈수에 따르면 김민종은 ‘코창력’으로 승부 보는 아저씨, 지금은 방송에서 볼 수 없는 <찾길바래> 유승준은 겨드랑이 털 왁싱을 몰랐던 시대의 산물이다(물론 여기에는 ‘군대가길 바래’라는 드립이 또 따라붙는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이상민이 만든 <샤크라>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충격이다. 머리에 탑을 떡하니 얹고 등장하는 걸그룹이라니.

또한 <탑골가요> 산책자들은 당시 쇼프로그램 MC들이었던 소유진이나 김민희가 등장할 때 그들의 미래에 대한 예언을 하는 경우도 있다. 시원한 가창력의 록스피릿 댄스 김현정이나 라틴 댄스의 백지영, 테크노 시대의 눈동자인 이정현이 등장할 때는 다들 집중하고 이모티콘으로 춤까지 춘다.

아울러 <탑골가요>에서는 숨겨진 영상을 찾는 재미도 있다. tvN <톱스타 유백이>의 김지석이 망한 아이돌 그룹의 래퍼로 등장해 의외로 랩 실력을 보여주는 영상도 있다. 은지원이 2019년과 똑같은 얼굴로 솔로 데뷔곡 ‘Murmur’를 부르기도 한다. 영화 <기생충>의 조여정이 앳된 얼굴로 순위 소개도 한다. 폭설이 쏟아지는 날 스키장 특별무대에서 1위를 차지한 임창정은 눈사람으로 변해가며 앵콜곡을 부른다.



동시에 <탑골가요>를 보다보면 당시의 시대상이 자연스레 읽히기도 한다. 특히 1998년 2월 [SBS 인기가요]의 첫방부터가 그러하다. [SBS 인기가요]는 IMF 직후 화려한 쇼 프로그램이 지상파에서 사라진 후 조심스레 다시 등장한 가요순위 프로그램이다. MC 김승현이 진행하던 이 프로그램은 무언가 미사리 분위기 같은 잔잔한 곡들로 이어진다. 요란한 방송 자체가 죄가 되는 듯한 시기가 잠시 있었다.

하지만 1997년에 데뷔한 SM의 H.O.T, S.E.S에 이은 대성기획의 젝스키스와 핑클의 등장으로 1998년부터 가요계는 풍선 흔드는 아이돌 시대로 접어든다. 이후 가요계의 암흑기가 서서히 물러가다 가요계 역사상 가장 저 세상에 가까운 세기말 1999년이 등장한다.

1999년 물방울 귀마개를 쓴 ‘몰라’의 엄정화를 시작으로 이정현에게 이르기까지. 은가루 메이크업과 세기말의 테크노댄스, 거기에 다소 어설픈 초기 힙합 가요까지 가세한 저 세상의 쇼 프로그램 스타일이 밀레니엄까지 이어진다.



비록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탑골가요>에는 지나간 시절을 각기 다른 시대에서 바라보며 깔깔대는 ‘흥’이 있다. 또 그 흥을 깨뜨리는 자 철저히 무시당한다. 채팅창에 올라오는 뜬금없는 정치적인 발언 메시지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더구나 지나간 시절의 <탑골가요> 무대에는 지금의 아이돌에게서 느껴지는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결의’가 없다. 때로는 그 ‘결의’가 대단하게 느껴지지만, 때로는 피로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또 지금의 예능처럼 잘 나가는 연예인의 삶을 지켜보는 것처럼 수동적인 시청자가 되는 허무함도 없는 것이다.



<탑골가요>는 뭔가 저 세상스러운 느낌이 있지만, 동시에 약간의 허술함과 시대와 맞지 않는 우스꽝스러움이 있다. 또 시청자들이 직접 채팅으로 참여하며 새로운 즐거움을 만들어낸다. <탑골가요>는 흘러간 가요 채널이 아니다. 세기말, 밀레니엄의 쇼와 2019년의 채팅창을 오가는 지금 이 시대의 사이버 예능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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