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씹어먹는 ‘보이스퀸’, 제작진 쌍팔년도 마인드는 옥에 티

2019-12-06 13:58:59



주부들에게 목소리 준 ‘보이스퀸’의 의미, 퇴색되지 않으려면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무슨 <어벤져스>류의 영화도 아니고 예능 프로그램이 회당 2시간 반을 방영한다니. 그런데 또 그 프로그램이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끌고 와 버리다니. MBN <보이스퀸>은 방영 첫 회부터 3회까지 목요예능 시청률 종합 1위를 놓치지 않는 것은 물론,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률이 꾸준히 상승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데뷔 무산과 투표결과 조작 논란으로 다 갈아 먹어 황무지가 된 줄만 알았던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 장르의 생명력이 아직 다 하지 않았음을, TV조선 <미스트롯>에 이어 MBN <보이스퀸>이 증명하는 중이다. 노래를 해 온 세월로 치면 아이돌 연습생들보다 길고, 쌓인 한과 ‘허슬’로 치면 랩퍼들보다 할 말이 많을 주부들이 오디션 장르를 씹어먹고 있는 셈이다.



정석희 평론가는 프로그램의 산만한 연출과 눈물을 쥐어짜내는 사연 나열을 지적하면서도, 서고 싶었으나 결혼으로 인한 경력단절로 설 수 없었던 무대에 다시 선 참가자들의 절창만으로도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라 평했다. 김선영 평론가는 <보이스퀸>이 TV조선 <미스트롯>의 장점인 ‘언더독 서사’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참가자들에 대한 편견을 전시하던 <미스트롯>의 단점마저 고스란히 가져온 프로그램이라 지적하며 제작진에게 참가자들을 제대로 존중할 것을 주문했다. 이승한 평론가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장르별로 특화되기 전 Mnet <슈퍼스타K> 시리즈가 지녔던 다채로운 장르의 격돌이란 매력을 <보이스퀸>에서 발견하면서도, 김선영 평론가와 비슷한 맥락에서 쇼가 위험하다는 지적을 남겼다.



◆ 경력단절을 체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눈물

‘남의사람 되려고 간대요 글쎄
텅 빈 커피 잔에 눈물을 남기고
글쎄 가야한대요‘

“주부들의 향연이여유. 주부들은 설 자리가 없어유.” ‘간대요 글쎄’를 불러 열 명의 심사위원 전원으로부터 크라운을 받은 후 박연희 님은 어린애처럼 발을 구르며 좋아했다. 뛰어난 전달력 덕에 한번 들은 노래인데 지금도 가사가 생생히 떠오른다. 올해 나이 58세. 30년 전 29세 때 MBC <주부가요열창>에서 대상을 수상했단다. 당시 출연료는 약소했어도 부상으로 침대며 문갑 등 한 살림을 받아서 뿌듯했다고. 이렇듯 <주부가요열창>은 끼를 펼칠 기회가 없는 주부들에게 추억의 한 페이지를 선사했었다. 더도 덜도 아닌 그저 아련한 추억이었다. MBN <보이스 퀸>이 총 상금 5000만원, 음원 발매 및 다양한 특전을 내세웠지만 추억 만들기에서 진일보할 수 있을까?



시작부터 내내 눈물바다다. 또 빤한 감성 팔이냐, 지난 날 가족의 안위를 위해 내 한 몸 희생한 이가 어디 한 둘이더냐, 눈물 없이 담백하게는 못 만드느냐, 날선 지적들이 이어진다. 그러나 세월의 풍파는 물론 경력단절을 체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눈물의 의미를 모른다. 알 수가 없다. 부르고 싶었으나 부르지 못했던 노래, 오르지 못한 무대. 그 하나로 가슴이 벅차지 않겠나. 따라서 누군가에겐 지긋지긋한 장면들의 연속이고, 누군가에겐 공감되는 가슴 절절한 장면들이고, 호불호가 갈릴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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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나는 가수다> 식의 노래를 중간에 끊어가는 편집이며 산만한 연출, 마음에 들지 않는 요소들이 꽤 있지만 락발라드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을 부른 올크라운의 63세 안소정 님, ‘I GOT YOU’를 소울 넘치게 소화해 역시 올크라운을 받은 63세 전영분 님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보이스 퀸>은 가치가 있다. 안소정 님은 ‘그대 그리고 나’로 751점이라는 고득점을 받아 3라운드에 진출했다. 전영분 님의 2라운드 무대도 기대된다!

정석희 방송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 <미스트롯>의 성공 요인뿐 아니라 단점까지 가져온 프로그램

TV조선 <미스트롯>이 성공한 이유 가운데 중요한 키워드는 ‘언더독’이었다. 대중음악 시장에서 B급 장르로 취급받던 트로트, 방송이 선호하는 2049층에서 밀려난 어르신층, 무명의 여성 가수들 등 비주류 3요소가 자아내는 정서적 공감의 힘은 매우 컸다. 그중 가장 극적인 스토리의 주인공은 대부분 경력단절 여성들이 포진된 ‘마미부’에 몰려있었다. 최종 결승에서 송가인과 홍자의 라이벌 구도를 깨고 2위를 차지한 정미애가 대표적 사례다.

<미스트롯> 열풍에 편승한 후발주자로서 <보이스퀸>이 집중한 것은 바로 그 극적 스토리였다. ‘고등부’에 ‘걸그룹부’까지 있었던 <미스트롯>에 비해 평균 연령대가 높은 만큼 오랜 시간 축적된 개인사와 가부장적 가족제도 안에서 억눌린 기혼 여성의 설움이 응축된 무대는 매 순간 눈물 없이는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 쇼가 출연자들의 사연을 부각시키는 태도와는 별개로, 절실함이라고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여성들의 목소리와 놀라운 실력은 <보이스퀸>의 제일 큰 경쟁력임은 분명하다.



문제는 이 프로그램이 <미스트롯>의 최대 단점마저 고스란히 가져왔다는 데 있다. 제목과 콘셉트부터 미스코리아를 패러디한 <미스트롯>은 여성들에게 꿈을 노래할 기회를 준다는 취지가 무색하게도 출연자들에 대한 성적대상화가 시도 때도 없이 이뤄지는 프로그램이었다. 만약 이 프로그램이 지상파 예능이었다면 분명히 훨씬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보이스퀸>도 마찬가지다. 경력단절로 꿈을 접어야 했던 여성들에게 그 능력을 펼칠 무대를 제공한다는 기획의도에 맞지 않게, 곳곳에서 그들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드러낸다.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찾고 싶어 나왔다는 여성들을 굳이 소방관의 아내, 목회자의 아내 등으로 수식하는 자막이나 “주부가 해내기 쉽지 않은 곡”을 잘 소화했다는 소위 퀸메이커의 멘트 등을 접하고 있노라면, <미스트롯> 때처럼 출연자들 무대 영상 클립만 소비하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점점 굳어진다. 특히 2라운드 때 도입한 서열식 자리 배치는 출연자들을 향한 최소한의 존중마저 저버린 장치였다. 지금쯤 시청률 상승에 고무되어 있을 <보이스퀸> 제작진은 이 쇼 인기의 핵심은 서바이벌 구도가 아니라 출연자들을 향한 공감과 그들의 실력에 있다는 점을 깨닫기 바란다.

김선영 칼럼니스트 herland@naver.com



◆ <슈퍼스타K>의 가능성과 <주부가요열창>의 한계 사이

분명 TV조선의 <미스트롯>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해 보이지만, MBN <보이스퀸>은 특정 장르로 특화된 오디션을 추구하는 최근 추세와 달리 ‘주부’라는 참가조건에 승부수를 걸었다. 주부라면 어떤 장르를 들고 나오든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한 덕분에, <보이스퀸>은 20대 참가자부터 60대 참가자까지, 댄스부터 재즈, 블루스, 록과 트로트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장르가 격돌하는 독특한 형태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되었다.

이런 접근은 우리가 애초에 왜 오디션 프로그램에 매료되었는지를 상기시켜준다. 처음 Mnet <슈퍼스타K2>가 화제를 모으며 케이블 채널의 역사를 다시 쓰게 된 비결은 단순했다. ‘재능이 있으나 부당하게 소외되어 왔던 이들에게 재능을 뽐낼 기회를 준다.’ 댄스에 밀려 있던 포크기타에, 아이돌 같은 외모에 밀려 있던 곰 같은 사내들에게, 연습생 출신이 아니라 행사를 뛰며 발라드를 부르던 청년에게 마이크를 준다는 점은 시청자로 하여금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매력이 있었으니까. 자신의 끼와 재능과 열정을 모두 ‘주부’라는 정체성 아래에 묻어야 했던 참가자들에게 기회를 준다는 서사적인 매력과, 다양한 장르가 공존하며 선사하는 포만감은 <슈퍼스타K2> 시절 느꼈던 즐거움과 그 결을 같이 한다.



다만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기껏 덮어둬야 했던 재능을 뽐내고 있는 참가자들을 다시 ‘주부’라는 정체성으로 호명하는 프로그램의 태도다. 끊임없이 참가자들에게 가족의 존재를 상기시키고 ‘주부’치고는 잘 한다는 식의 코멘트들은 시대착오적이다. 자칫 참가자들의 위치를 ‘주부’로 한정 지어 그들이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도 계속해서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을 이어가기 어렵게 만들 수 있지 않나. 참가자격은 ‘주부’였을지 몰라도, 어디까지나 음원을 발매하고 프로 가수로 활동하는 걸 목표로 한 오디션 참가자다. 그에 맞는 대우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

1988년 MBC <주부가요열창>이 신설되었을 때 당시 담당 PD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주부들이 TV출연할 때 반드시 남편과 아이들을 참가하도록 하는데 이는 이 프로를 일부 주부들의 허영심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건전한 가족프로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 말했다. 2019년은, 1988년과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영상·사진=M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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