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에게 감사할 또 하나의 이유

2012-06-28 15:46:03



- 한글 이름이 좋은 까닭

[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신문사에 1991년에 입사한 내가 저널리즘에 기여한 첫 사례가 아마 외국 사람 이름을 바로잡은 것이지 싶다. 수습 때 부서 순환 배치 프로그램에 따라 편집부에서 근무할 때였다. 당시엔 희한한 해외 뉴스를 모은 해외토픽 란이 있었다. ‘모디글리아니’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화가 ‘모딜리아니’를 잘못 표기한 것이었다.

이탈리아에서는 N과 L 앞의 G는 묵음이다. Modigliani는 모딜리아니고, gn은 뒤에 오는 모음에 따라 ‘냐 녜 니 뉴 뇨’로 발음된다. 예컨대 Agnes를 이탈리아에서는 아녜스라고 읽는다. 이 이름은 영미권으로 넘어가서 애그니스가 된다.

문자 밥을 먹으면서 나라마다 발음을 적는 독특한 방식이 있음을 알게 됐다. 베트남 정치인 ‘응오딘지엠(Ngo Dinh Diem)’을 우리는 오랫동안 ‘고딘디엠’으로 쓰고 불렀다. 베트남에는 ‘응’으로 시작하는 이름이 있고, 그 발음을 ng로 표기한다.

<찰리와 초콜릿공장>을 쓴 작가는 우리나라에서 로알드 달(Roald Dahl)로 통한다. 달은 노르웨이 혈통의 영국인이다. Roald라는 이름은 노르웨이 탐험가 아문센과 같다. 아문센은 인터넷 백과사전에 '로알 아문센'이라고 나온다. 노르웨이에서는 Roald 같은 단어 끝 d가 묵음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의 이름 또한 ‘로알 달’이지 않을까? 노르웨이에서는 ‘로알’이지만 영국에서 태어나고 살았기 때문에 ‘로알드’로 불렸을 가능성도 있다. 이 의문은 미국에 출장 갔다가 본 뉴스가 풀어줬다. 그의 작업실을 보존해야 한다는 뉴스에서 앵커와 기자는 그의 이름을 ‘로알’이라고 발음했다.

스페인에서는 J를 ㅎ 으로 발음하고 포르투갈에서는 R 을 ㅎ으로, O는 ㅜ 로 읽는다. 스페인 사람 Jose는 호세가 되고, 포르투갈 축구 선수 Ronaldo는 호날두라고 불린다. 과거에 한번 잘못 박힌 오기(誤記)는 좀처럼 수정되지 않는다. 희망봉을 거쳐 아시아로 가는 해로를 개척한 포르투갈 사람 Vasco da Gama를 아직도 많은 출판물에서 ‘바스코 다 가마’라고 쓴다. ‘바스쿠 다 가마’가 맞다. 브라질 대도시는 ‘리우 데 자네이루(Rio de Janeiro)’가 아니라 ‘히우 지 자네이루’다.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의장을 지낸 Alan Greenspan을 한국에서는 ‘앨런 그린스펀’이라고 쓰고 읽는다. 일설에는 처음에 신문사 외신부에서 ‘그린스판’이라고 했다가 “스판덱스의 스판이냐”는 지적에 ‘스펀’으로 수정됐다고 한다. 미국 금융시장 뉴스를 가까이 들여다보고 전하는 일을 하면서 인터넷 방송에서 그를 ‘그린스팬’이라고 부르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다시 들어보고 또 들어봐도 그는 ‘그린스팬’이었다. 아직도 ‘그린스펀’ 표기가 ‘그린스팬’보다 훨씬 많다.

최근에 눈을 성가시게 한 표기는 Walter Isaacson을 ‘월터 아이작슨’이라고 쓴 것이다. 출판사는 스티브 잡스 전기 표지와 광고에 저자 이름을 그렇게 적었다. 번역자는 a 가 연달아 적힌 것을 보고 별 의문 없이 ㅏ 로 발음된다고 추측한 듯하다. 구글에서 그가 나온 방송 동영상을 찾아 들어봤다. ‘아이직슨’이란다. 이상해도 어쩔 수 없다. 그는 아이직슨이다.

한글은 헷갈릴 일이 없어서 좋다. 백우진은 백우진이다. “제 이름은 이렇게 쓰고 이렇게 읽는다”고 알려줄 필요가 없다. 영미권에는 이름을 읽는 방법을 확인해주는 사이트가 여럿 있다. 세종에게 감사할 또 하나의 이유다.


칼럼니스트 백우진 <안티이코노믹스><글은 논리다> 저자 smitte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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