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아 “사람들을 위해 연기하고 싶습니다”

2012-12-16 15:26:17



- 연극 <크레이브:갈망> 배우 장지아 [인터뷰]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돌직구 인터뷰] “제가 하는 작품이 사람의 영혼에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인간관계의 풀리지 않는 숙제는 결국은 ‘사랑’의 부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극장에 찾아와 주신 관객이 공연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래 못 봤던 친구나 가족에게 연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만으로 이 작품을 올리는 이유가 충분할 것 같아요. 본인의 사소한 옹졸함으로 헤어진 뒤 연락 안했던 친구, 매번 얼굴 마주치지만 투명 인간처럼 대하는 가족이 떠올라 문득 전화를 걸고 싶어지는 작품이 됐으면 합니다. 이렇게 함께 살아가지만 잊고 지냈던 사람들과 소통하고 숨을 나눠 갖는 연극으로 다가 왔음 해요. 저 또한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

극단여행자가 오는 17일부터 28일까지 서강대학교 메리홀 소극장에서 올리는 연극 <크레이브(CRAVE) : 갈망>의 ‘C’로 돌아온 배우 장지아를 만났다. 최근 명동예술극장에서 올려진 쿠리야마 타미야 연출의 <밤으로의 긴 여로>에서 감옥 같은 침묵의 공간인 티론가의 집에서 유일하게 사람 온기를 느끼게 하는 하녀 ‘캐슬린’ 역을 완벽히 소화해내 호평을 받은 배우이다.

연극 <크레이브>는 ‘사랑의 역설 그리고 힐링’ 프로젝트로 진행된다. 한 무대에서 두 작품을 순차적으로 만날 수 있는 프로젝트로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모티브로 한 조최효정 연출의 <나의 검은 날개>와 동시에 공연된다.

■ “배우란, 자기와의 싸움을 지탱해야 하는 것”

예술을 하는 사람이든 회사원이든 자기와의 싸움을 누가 얼만 큼 지탱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자기를 다스리지 못하면 어떤 인생이든 힘들어지는 게 바로 그 증거다. 장지아 배우는 본인의 20대를 돌아보며 “배우란, 자기와의 싸움을 지탱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978년, 종로구 동숭동에서 태어난 이래 줄곧 대학로에서 자라온 배우 장지아는 2001년 조광화 연출의 연극 <박쥐>로 연극무대에 정식 데뷔했다. 이후 <생존도시>, <남자충동>, <리어>, <겟팅아웃>, <에쿠우스>, <마리화나> 등으로 얼굴을 알렸다. 그리고 2008년 올려진 이항나 연출의 <그녀의 방>을 끝으로 3년간 공백기간이 생겼다. 그 뒤 2011년 명동예술극장이 선보인 <우어 파우스트>의 ‘그레트헨’으로 복귀했다. 2012년 한 해, 행운은 계속 찾아들어 <아마데우스>, <거리의 사자>, <국립극단 단막극연작- 방문>, <밤으로의 긴 여로>등 무대에 연달아 올랐다.

3년간의 공백 기간 동안 장지아는 많은 일들을 겪었다. 2007년 노모의 암수술과 본인의 난소종양수술 이후로 병원비 마련과 생계유지가 우선이라 연극무대로의 복귀가 늦어졌다. 인터뷰를 하기로 한 날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바로 ‘2012 히서연극상’ 기대되는 연극인상을 수상하게 된 것. 문삼화 연출의 <게팅아웃>으로 2005년 제 26회 서울연극제 신인연기상을 받은 것에 이은 두 번째 상이다.

“다시 연극무대로 돌아오게 만든 <우어 파우스트>가 하늘이 주신 선물이었다면, ‘히서연극상’소식은 올해 정초부터 병원 입퇴원을 반복하시는 노모의 부양과 뜨거운 여름 식당과 수퍼에서의 파트타임 잡으로 지쳐있던 저에게 삶의 활력과 희망을 주는 생명수 같아요. ”



■ “사람들을 위해 연기하고 싶습니다”

장지아는 시련을 겪고 난 뒤 연기에 대한 방향성이 바뀐다. 이전엔 ‘자신을 위해 연기했다면’ 현재는 ‘사람들을 위해 연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20대는 연극에 미쳐있는 상태에서 오로지 열정으로만 작업을 해왔던 것 같습니다. 실은 연극을 하면서 늘 동료들과 만나 제 외로운 상처들을 씻고 치유 받아 왔던 것 같아요. 단순히 제가 가진 마음의 쓴 뿌리를 뽑는 통로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제 연기의 목적이 제가 아닌 사람들을 향해 있어요. 무대에 서면서 사람들의 가슴에 사랑을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장지아는 ‘선한 영향력을 주는 배우가 되길 원한다’고 했다. “유년시절부터 20대까지 물질적으로 갖지 못한 것에 대해 불평을 했었던 것 같아요. 이 악물고 1등만 하려는 독종 같은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했을 것 같아요. 내려놓는 연습을 많이 하고 있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제 욕심을 발견하곤 해요. 연극은 같이 살아가는 사람과 뭔가를 나눌 수 있어야 하는 거 같아요. 그것이 정확히 어떤 모양새인지는 모르지만 제가 선한 기운으로 살아갈 때 관객에게 그 기운을 전해줄 수 있는 거 같습니다.

박수와 환호를 먹고 사는 배우들을 사석에서 보면, 간혹 ‘외로움’의 그늘 아래 놓여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장지아 역시 그런 ‘외로움’의 빛깔이 언뜻 언뜻 묻어나왔다.

“누구나 삶이 완벽하지 못하고 외롭잖아요. 바쁜 삶 속에서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외로움과 상처를 적당히 위로와 격려를 하고 넘어갈 뿐 진정으로 깊게 만져주지는 못한 채 그냥 또 내일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배우의 몫이 이러한 결핍된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 ‘말’로 비를 맞는 느낌, 연극 'CRAVE-갈망'

28세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20세기 마지막 천재 사라케인이 삶의 가장 끝자락에 발표했던 'CRAVE-갈망'은 네 인물들의 성적 사랑, 모성, 착취적 사랑에 관한 파편적인 서사의 조각들을 담고 있다.

특이한 점은 A(김상보),B(안태랑),M(김은희),C(장지아)라는 네 인물의 목소리들이 순차적으로 상대와 대화하는 것이 아니란 점. 각기 과거의 상실, 자신의 욕망, 미래의 심리적 상처에 대해 묻고 있는 연극이다.

'CRAVE-갈망'은 사라케인이 자살 직전 쓴 <4.48 사이코시스> 발표 전에 쓰여진 작품. 장씨는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사라케인이 이 글을 쓰면서 얼마나 외로웠을까’란 생각을 많이 했다고 했다. “<4.48 사이코시스>의 전초작업으로 쓴 작품이라고 알고 있어요. 원본을 읽어보며 한 문장 한 문장 배우와 연출이 모여 각색하는 작업을 하면서 작가의 엄청난 정서적인 불안과 극단의 외로움,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상흔을 배우들과 함께 느꼈어요.”

장지아는 20대가 아닌 30대에 사라케인과 만나게 된 사실에 주목했다. “제가 이 작품을 20대가 아닌 30대에 만난 걸 행운으로 생각해요. 작가가 요절한 나이인 28세에 이 작품을 만났다면, 제가 가진 열정과 세상에 대한 치기어린 적개심으로만 해석해서 연기를 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35세에 이 작품을 만나 제가 20대의 열정만으로 발견하지 못했을 다른 부분을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인 것 같습니다.”

장지아는 ‘세상의 가장 밑바닥을 경험하고 벼랑 끝에 밧줄로 겨우 매달린 사람들의 사랑에 대한 갈망’이라고 이 작품을 설명했다. “작품의 기승전결과 줄거리 자체는 생경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초점은 내용의 전개 아니라 외로움의 극단에 선 사람들이 갈급해 하는 사랑과 자유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요. 이 외로운 네 명의 인물들을 통해 역설적이게도 관객이 가져갈 것들은 외로움의 반대인 ‘희망’이었음 합니다.”



■ 관객과 ‘공유’ 하는 배우 장지아

태어나 처음 읽어 본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속 비프가 박차고 나가고픈 광활한 들판에 무작정 감명을 받은 초등학교 5학년 아이는 연기아카데미를 찾아간다. 이후 안양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학과를 나와 청주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한 배우 장지아는 대학 4년간 바로 서 있고 바로 숨 쉬는 방법에 대해 조금씩 배워 가며 인간 영혼의 진실과 한계를 파헤치는 작업임이 연기임을 깨닫게 된다. 대학 땐 스승인 김방옥 교수의 수업 전체를 녹음기에 다 녹음한 뒤 기숙사로 돌아와 다시 노트필기를 할 정도로 열정적인 학생이었다.

장지아는 스스로의 장점을 ‘노력’으로 꼽았다. “노력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환경적인 여건이 제게 준 기질이라 ‘노력하는 것’을 노력하지 않아도 되니 참 고맙습니다.(웃음) ‘타고난 배우’와 ‘타고나지 않은 배우’가 있다고 했을 때, ‘타고난 배우’가 잘하는 건 당연하지만 ‘타고나지 않은 배우’가 노력을 한다면 그 ‘타고난 배우’를 이기는 것은 시간싸움이지요. 물론 ‘타고 난 배우’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좋은 결과는 늘 노력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게 정당한 것 같아요. 야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야망을 잉태한 시간을 지독히 견뎌 내야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세상과 공유할 수 있는 감동인 것 같습니다.”

그녀는 인터뷰 말미 ‘공유’란 단어에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연기를 사랑해요. 함께 연기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객석과 무대 사이에서 숨죽여 바라보는 관객들을 사랑해요. 제가 지니고 있는 세계를 같이 나누고 ‘공유’하려면 노력해야죠.(웃음)”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장지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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