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뽑아낸 지도 모르는 생수를 왜 마시나

2013-06-02 15:43:37



저도 수돗물을 그냥 마셔요

[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개인적으로 오래된 관심사였는데, 지난 5년 동안 저 표지를 알아채지 못했다니. 싱크대 수도꼭지 뒤편 타일에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수질 (검) 적합. 안전한 서울시 수돗물. 아리수.’ 검사 시점을 적은 글씨는 희미해졌는데, 2008년으로 보인다.

기사를 찾아보니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는 2008년부터 각 가정을 방문해 가정집 수도꼭지에서 받은 물이 마실 물로 적합한지 검사해 기준을 통과하면 위와 같은 적합필증 스티커를 부착해줬다.

이 사업은 서울 수돗물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기 위해, 구체적으로는 상수도사업본부가 취수해서 보내는 수돗물은 서울시 주장대로 깨끗하더라도 수질이 상수도관을 지나면서 떨어진다는 오해를 씻어내기 위해 추진됐다. 서울시는 이미 2001년부터 원수에서 수도꼭지까지 아리수 수질정보를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시스템도 운영해왔지만, 불신이 가시지 않아 이 적합필증 사업을 추가로 벌였다.

서울 수돗물 아리수는 2009년에는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마시는 물 수질 기준을 충족했고, 2010년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병물 기준에 적합한 수질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서울 수돗물은 서울 사람들 사이에서는 아직 신뢰를 얻지 못한 채 마실 물로는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불신에는 돈이 든다. 아리수의 수질을 끌어올리는 투자에 5000억 원이 들었다고 한다. 그 결과 아리수의 품질이 세계적인 수준이 됐는데도 아리수를 마시지 않으니, 우선 5000억 원이 허비됐다. 게다가 서울시민의 다수가 주로 씻고 세탁하는 데 쓰는 수돗물의 품질을 계속 마시기에 좋은 수준으로 관리하는 데에도 지속적으로 예산이 투입되니, 이 예산 가운데 상당 부분도 낭비된다. 개별 가정에서는 수돗물을 끓이고 생수를 구입하고 정수기를 사들여 운영하는 비용을 치른다.

돈 말고도 따져야 할 부분이 있다. 환경이다. 이 이슈는 ‘생수에 대한 불편한 진실(The Story of Bottled Water)’이라는 이름의 교육 영상에서 살펴볼 수 있다.

나는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를 믿는다. 서울 수돗물이 병에 담겨 판매되는 생수 못지 않다고 여긴다. 그래서 늘 그러지는 않지만 가끔 수돗물을 그냥 마신다. 물론 탈은 나지 않았다.

내가 수돗물을 마시게 된 데에는 정문술 전 미래산업 고문의 영향이 컸다. 그는 에세이집 ‘아름다운 경영’(2004)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수돗물을 마신다. 서울로 이사온 뒤 30여 년간 줄곧 수돗물을 마시고 있다. 만에 하나 내가 수돗물을 먹다가 몹쓸 병에라도 걸려 죽게 된다면 ‘이 땅의 신뢰 회복을 위한 순교’라고 생각하고 명예롭게 여길 것이다.”

몇 년 전 나는 아리수 품질과 관련해 환경부 수도정책과 조병옥 과장에게 문의했다. 조 과장은 “어디서 뽑아낸 지도 모르는 생수를 왜 마시느냐”고 말했다. 그는 “나는 당연히 수돗물을 마신다”고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취임 초기에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아리수를 마시는 모습을 보여줬다. 수돗물에 대한 불신을 씻어내는 데 더 많은 사람이 힘을 보태고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

칼럼니스트 백우진 <안티이코노믹스><글은 논리다> 저자 smitten@naver.com

[사진=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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