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기쁨’ 추상미, 소박하지만 단단한 그녀

2014-02-14 16:02:54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지난 7일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개막한 연극 <은밀한 기쁨>(The Secret Rapture)은 부권의 상실 이후 이상주의자 이사벨의 소신과 원칙이 타인에게 끼치는 영향 그리고 성찰에 대해 이야기 하는 작품이다. 가장 뒤통수를 낚아채는 부분은 가족도 연인도 그 어디에서도 이해받지 못하는 여자인 이사벨의 ‘선의’는 교묘하게 취하면서 그 나머지 것은 모든 고통의 원인으로 보고 있는 점.

극작가 데이비드 해어의 <은밀한 기쁨>은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한 한 가족의 갈등과 파국을 그렸다. 둘째 딸 이사벨은 죽은 아버지의 삶의 가치를 인정하며 처치 곤란한 아버지의 후처인 캐서린을 묵묵히 떠안는다. 언니 마리온은 이런 동생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어한다. 아니 이사벨의 선의는 ‘위선’의 또 다른 이름으로 결국 상대에게 고통만을 줄 거라고 재단한다.

두 자매를 둘러싼 인물들의 대비적인 시각도 흥미롭다. 죽은 남편만이 자신의 인간적 가치를 인정해 주었다며 그를 그리워하는 캐서린은 그의 유산을 온전히 자신의 새로운 삶을 위해 탕진하려 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사벨의 약혼자로서 그녀와의 소박한 삶을 꿈꾸었던 어윈은 잠시 가치관이 흔들려 이사벨의 믿음을 배신하고 연인과의 관계 역시 파괴하게 된다.

마리온의 남편이자 자신의 성공과 안정적인 삶은 주님을 영접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유능한 사업가 ‘톰’의 종교적 신념은 과연 믿어도 될까. 자기 주장이 강한 야심가이자 마리온의 보좌관인 론다 역시 이들 인물들에게 ‘카오스’의 바람을 불러온다.

<은밀한 기쁨>은 “자본주의”의 파괴력에 잔인한 현미경을 들이대며 “전통적인 가치와 인간성의 붕괴 혹은 그 회복”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지적인 정통 희곡이다.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양심과 도덕의 해체를 그려내고 있지만, 영국의 경제 몰락과 함께 위기를 맞은 1980년대 대처 정부를 신랄하게 풍자하고자 했던 작가의 정치적 은유 역시 읽혀지는 작품이다.

연극을 본 관객들이 가장 의문을 가지는 점은 ‘과연 ‘이사벨’이란 인물은 우유부단하게 모든 고통을 받아내는 인물인가. 아니면 자신이 깨트릴 수 없는 도덕적 원칙에 기반한 ‘선의’를 행하는 인물인가‘ 이다. 전자의 관점으로 극을 본다면 상당히 속 터지는 연극으로 각인된다. 반면 후자의 관점으로 감상 한다면 ’찌릿 하거나 뜨끔한 속내‘를 들킨 것 같아 본인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될 듯 하다.



이사벨 역을 맡은 배우 추상미는 “자기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 이사벨을 푸시할 때 똑같은 방식으로 대항하지 않고 오히려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가 가진 캐릭터와는 다르다고 느낄 수 있다. 상대와 싸우고 싶어하지 않은 모습에서 수동적인 인물로 비춰 질 수 있지만, 그건 수동적인 성격이 아니라 굉장한 집념이 있어야 가능한거다. 그게 이자벨의 소신이다. 소신 안에 신념이 있는 거로 봤다.”고 말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최고의 가치로 칭송받은 시대에서, 자기 목소리만 내기에 급급한 세상에서, 이사벨의 가치관은 쓸모없는 생각으로 치부 될 소지가 크다. 탐욕의 세상에서 소박한 신념을 지켜내는 게 마치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캐서린과 함께 하며 이사벨이 뿜어내는 하얀 담배 연기가 뿌연 안개 속을 걷는 듯한 기분을 갖게 한다. 하지만 곧 그 하얀 연기가 순결한 연기로 다가왔다. 그 이후 총소리와 함께 다가온 파국이 ‘은밀한 기쁨’을 불러왔다. 추상미가 분한 이사벨의 설득력이다.

김광보 연출은 “<은밀한 기쁨>이란 제목은 아버지의 부재로 가치관이 붕괴되고 상실된 가정과 마지막 이자벨의 죽음 그 접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연극 안에서 이사벨이 가지고 있는 다층적 의미와 나머지 인물들과의 대비의 관점으로 보면 '이사벨‘이란 인물을 잘 이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부재, 이사벨의 부재로부터 ‘은밀한 기쁨’은 다양한 가지를 뻗어나갔다. 이 연극 최소 4번 은 봐야 할 듯 하다. 소박하지만 단단한 이사벨의 입장에서, 뜨겁게 외로운 마리온의 입장에서, 쓸쓸한 캐서린의 입장에서, 폭발하는 어윈의 입장에서 이렇게 4번 말이다. 배우 추상미, 이명행, 유연수, 우현주, 서정연, 조한나의 연기 조합도 탁월하다. 3월 2일까지 서울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공연전문 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극단 맨씨어터, 스토리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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