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영애’, 이영애 안에 우리들의 얼굴이 있다

2015-09-17 11:28:26



‘막영애’가 꾸준히 마니아들에게 사랑 받는 비결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2005년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주인공 이금자를 연기한 여배우는 이영애다. 이 영화에서 친절하고 순진한 처녀였던 이금자는 복역 이후 아름답지만 냉정한 얼굴로 복수를 감행하는 인물로 돌변한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는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미장센을 보여준다. 그 때문에 이 영화의 섬뜩하고 잔인한 순간들은 아름다운 화면과 아이러니한 대조를 이룬다. 산소 같은 여자이자 장금이였던 배우 이영애는 <친절한 금자씨>에서 자신이 쌓아온 우아하고 친절한 이미지에서 미소만을 지우고 강렬하고 성스러운 악녀로 등장한다.

이 년 후, 2007년 리얼다큐 드라마를 표방한 <막돼먹은 영애씨>가 시작한다.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은 개그우먼 김현숙이 연기하는 직장인 이영애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로 분한 이영애는 우아하게 포장한 잔인한 현실 위를 사뿐히 걷는다. 반면 <막돼먹은 영애씨>의 주인공 이영애는 날것의 현실 위를 뚜벅뚜벅 걷는다.

남자들은 몸집이 크고 성격도 우악스러운 그녀에게 쉽게 반하지 않는다. 오히려 회사의 남자 상사들은 그녀를 막대하기 일쑤다. 이런 현실에서 영애씨는 친절할 수가 없다. 오히려 막돼먹게 구는 것이 그녀의 생존법이다. 목소리도 호탕하게 내고 일부러 강한 척 굴 때도 있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다보면 이렇게 막돼먹은 영애씨의 모습이 어느새 사랑스러워진다.

혼자 있을 때면 여린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며 눈물을 쏟거나 좋아하는 남자 때문에 마음 졸이는 그녀에게서 진짜 리얼한 삶 속에 놓인 우리들의 얼굴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마음을 엿본 잘생긴 남자들과 영애는 회사 안에서 사랑을 만들어가기도 한다.



리얼다큐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는 어느새 케이블계의 <전원일기>라 할 만큼 장수 드라마로 자리 잡았다. tvN의 개국과 맞물려 2007년부터 방송된 이 드라마가 어느새 2015년인 지금은 시즌14에 이르렀다.

영애네 가족과 그녀가 일하는 직장 ‘아름다운 사람들’을 배경으로 시작한 <막돼먹은 영애씨>는 리얼다큐 드라마라는 포맷답게 대사나 상황이 적나라하다. 그런데 그게 얼굴 찌푸려지는 게 아니라 일상사에 배인 깨알 같은 순간들을 포착하는 것 같아 쿡쿡 웃음이 터진다.

늘 서로를 빈정대는 영애 엄마(김정하)와 아빠(송민형)의 관계라던가 자식들에게 쏘아붙이는 영애 엄마나 딸 사랑에 눈먼 영애 아빠의 모습 등이 그러하다. 드라마 안에 포장된 가족의 모습이 아니라 늘 우리 주변에서 봐오던 시끄럽고 또 후줄근한 가족이 <막영애> 안에 있었다.



하지만 역시 <막영애>의 백미는 주인공 영애가 일하는 디자인 회사 ‘아름다운 사람들;에 대한 묘사다. 무언가 비장한 치열함이 흐르는 <미생>의 직장생활과 달리 <막영애>의 직장생활에서는 칠칠맞음과 치사함, 꾀죄죄한 생활의 땟국이 흐른다. 그리고 어쩌면 이쪽이 더 현실적인 직장생활인지도 모른다. 매일 보는 사람들끼리의 친목과 반복, 조금이라도 손해 보지 않으려는 치사하고 좀 ‘찌질한’ 이기심, 뻔뻔한 후배와 진상 맞은 상사와 늘 황당한 일만 만드는 대표에 이르기까지.

<막영애>는 그녀의 회사 ‘아름다운 사람들’을 통해 이처럼 우리가 직장생활의 인간관계에서 겪는 사소한 사건들을 잡아내 보여준다. 하지만 거기에는 빤한 드라마에서 빤하게 그리는 악인과 선인은 없다. 아무리 궁상맞아 보이는 인간이라도 나름 그렇게 구는 사연이 있다. 아무리 이기적인 인간이라도 알고 보면 외로운 삶이 있다. 그렇기에 이 막돼먹어 보이는 드라마는 의도치 않은 듯 의뭉스럽게 휴머니즘의 짠내를 종종 풍겨주곤 한다.

거기에 더해 기업 합병 문제나, 정규직 비정규직, 워킹맘 등 현실 직장생활에서 벌어지는 직장인의 ‘고로움’을 놓치지 않는 것이 바로 <막영애>다.



그런데 <막영애> 시즌14는 지난 시즌들에 비해 흥미로운 지점이 하나 존재한다. 그건 지난 8년간의 시간 동안 주변인물처럼 친숙해진 영애씨의 성숙을 지켜보는 과정이 시즌14이기 때문이다.

시즌14에서 여주인공 영애는 더 이상 직장인이 아니라 스스로 디자인회사를 이끄는 대표로 변신한다. 그리고 새로운 사회생활의 지형도 속에서 자신을 다시 만들어나간다. 회사의 대표로 아랫사람들을 다독이거나 꾸짖는다. 회사 상사나 대표의 비위를 맞추는 법이 아니라 거래처 사람들과 밀고 당기는 관계에 대해 다시 배운다. 더불어 과거 사랑했던 남자 김산호(김산호)의 재등장과 현재 영애를 좋아하는 전사장 이승준(이승준) 사이의 관계에서도 무언가 선택의 기로에 놓일 순간이 오지 않을까 싶다.

나의 생존을 위해 나름 막돼먹은 인간이 되어야했던 8년 전의 영애는 더 복잡하고 넓어진 관계의 그물망에 얽힌 채 주변인과의 공존을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사원들의 월급을 주기 위해 일식집 알바로 일하는 사장 영애의 짠한 모습이라니. 그리고 이 모습 또한 우리, 혹은 우리 주변의 누군가의 현재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영애 씨에게 혹은 우리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시즌14에 이르기까지 <막영애>가 꾸준히 마니아들에게 사랑 받는 힘이기도 하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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