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이·김숙 콤비에 대한 열광적 반응이 의미하는 것

2015-09-18 13:03:56



예능PD들이여, ‘비밀보장’의 인기 폭발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제7강. 여성 예능인 [女性+藝能人]

[명사]
1. 코미디, 버라이어티, 희극 등 대중 연예에 종사하는 여성.
2. 요즘 TV에선 보기 힘든 거.


[엔터미디어=이승한의 TV키워드사전] “요새 예능 판에 여자 예능인이 설 자리가 없어요.” 최근 가장 활발하게 활동 중인 여성 연예인 중 한 명을 담당하는 모 매니지먼트사 직원은 한숨 쉬듯 이야기했다. 눈코 뜰새 없이 바쁘게 활동하는 사람의 매니저인데 무슨 엄살이냐고? 물론 당장에야 그가 크게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활발하게 성장하는 시장에서 선두를 달려야 전망이 밝은 거지, 시장 자체가 점차 위축되는 가운데 몇 안 되는 생존자로 남아봐야 그게 뭐 그리 희망찬 일이겠는가. 그는 불과 몇 년 전 지상파 방송사 연예대상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던 중년의 여성 예능인을 언급하며 말했다. “OOO 누나도 지금 프로그램 하나 하고 있어요. 한번 세어 보세요. 요즘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여자 진행자가 몇이나 있나.”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여자 예능인이 몇이나 있는지를 세는 것보다 자취를 감춘 사람을 세는 게 더 빠르다. KBS는 <인간의 조건> 시즌1에서 2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남성 편보다 더 열성적인 팬들을 거느렸던 여성 편을 별다른 설명 없이 폐지해 버렸고, 박미선과 신봉선으로 여성 MC의 지분을 마련해두었던 KBS <해피투게더3>는 신봉선이 빠진 자리에 김신영과 조세호를 묶어 넣음으로써 박미선을 보좌해 줄 자리를 비워놓더니, 1년여 만에 박미선과 김신영을 하차시키는 대신 전현무를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JTBC는 <냉장고를 부탁해>의 보조 진행자로 참여하던 정가은의 자리를 치워버렸고, <마녀사냥>은 스트레이트 남자들만의 성 담론으로 빠지지 않게 균형을 잡아주던 2부 출연진 곽정은, 한혜진, 홍석천 등을 개편과 함께 하차시킨 뒤 그 자리에 컬투를 투입했다. 과거 MBC <놀러와>에선 김원희와 함께 호흡을 맞췄던 유재석은, KBS <나는 남자다>에 이어 SBS <동상이몽>,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을 찾아서>까지 남자 파트너들과만 호흡을 맞추고 있다. O’live의 <올리브쇼 2015> 또한 김지호와 홍진호 2MC 체제를 개편과 함께 성시경, 박준우, 조세호 체제로 바꿨다. 점점 TV에서 여성의 시각을 대변할 여성 연예인의 자리가 사라져 가고 있다.



지난 3월, JTBC <썰전>은 예능에서 여성 예능인들이 자취를 감춘 이유를 분석하며 각 방송사 PD들에게 견해를 물었다. 개중 한 PD는 이렇게 답했다. “남성은 망가지는 상황도 코믹하게 표현이 가능하지만 여성은 자기 이미지로 웃음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방어적이다. 신체, 프라이버시 노출이 어려워 프로그램에 제약이 있다.” 그러나 정작 적극적으로 망가지는 걸 감수하는 여성 예능인들조차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는 걸 생각하면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SBS <일요일이 좋다-영웅호걸>은 당대 인기 여성 연예인들을 모아 놓고도 ‘인기 순위를 정한다’는 콘셉트를 포기하지 못하고 망설이다 폐지되었고, KBS <청춘불패> 또한 시즌 2에 들어서는 지역 주민들과의 교류가 큰 흐름이었던 시즌 1의 유산을 이어가는 대신 가학적인 게임 위주로 방향을 바꾸다가 시청률을 잃고 폐지되었다. MBC every1의 장수 프로그램이자 대표 프로그램이었던 <무한걸스>는 2013년 말엽 3기의 막이 내린 이후 지금까지 4기 제작 소식이 없다. KBS <인간의 조건> 여성편의 폐지 또한 “화학제품 없이 살아가기” 같은 극한의 미션에 도전해가며 망가지길 주저하지 않은 멤버들과는 무관하게 일어난 일이다.

<썰전>이 인용한 다른 PD는 주 시청자 층이 여성이기 때문에 남성 예능인을 쓸 수밖에 없다고도 이야기했다. 언뜻 일리가 있는 지적으로 보이지만,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남성 시청자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알려진 뉴스/보도 프로그램의 메인 앵커는 왜 늘 남성인지 설명하기 궁색해진다. 게다가 최근 한국 아이튠즈 스토어 팟캐스트 코미디 부문 1위를 좀처럼 내주지 않는 <송은이&김숙의 비밀보장>의 열광적인 인기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들어오는 사연을 뜯어봐도 주 청취자 층이 여성인데, 지상파 예능에서처럼 ‘40대 비혼 여성’이라는 것을 이유로 조롱하고 조롱 당하는 것을 웃음의 도구로 삼는 대신 그저 자신들의 시각으로 타인의 고민을 해결해주기 위해 노력했을 뿐인데. <송은이&김숙의 비밀보장>은 방송시작 3개월이 채 안 돼 센세이션이 됐고 5개월이 지난 지금은 아예 법인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기사로 나온다. (“최신 팟캐스트 트랜드 변화 송은이·김숙에게 있다” <미디어오늘> 김유리 기자. 2015년 08월 27일) 이상한 일 아닌가? 언제는 팟캐스트의 주 청취자 층이, 해당 프로그램의 주된 팬층이 남성이기라도 했단 말인가.

“솔직히 김숙씨나 나나, 너나 나나, 우리 여자 개그우먼으로서, 진짜 요즘 뭐 방송 설 데도 없고.” <송은이&김숙의 비밀보장>에서, 송은이는 게스트로 출연한 이영자를 소개하다 말고 여성 예능인에게만 척박한 최근의 환경을 토로했다. 흔들림 없이 예능계에서 굳건히 버티는 독보적인 개그우먼 이영자의 위상을 강조하기 위한 멘트였지만, 그의 말이 맞다. 여성 예능인이 설 수 있는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애초에 남성들의 영역인 것처럼 여겨지던 뉴스/보도 프로그램의 메인앵커 자리는 MBN으로 이적한 김주하 정도를 제외하면 여전히 남성들만의 영역으로 굳건히 남아있고, 고리타분하게나마 여성들만의 영역으로 남아있었던 요리 프로그램 또한 이제 남성 셰프들과 남성 예능인들의 영역이 되어버렸다. 연예인은 본디 선택을 받아야 하는 직업이라지만, 이제 선택을 기다리다간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진다. 여성 예능인이 남성의 시선에 종속되지 않은 채 여성의 시선으로 농담을 하고 자신들의 건재함을 증거하려면, 이렇게 자신들의 창구를 직접 개척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마무리 인사를 하며 이영자는 말했다. “진짜 우리 후배들, 너무 멋있고, 이게 (팟캐스트 순위에서) 1등 하고. 제가 하는 프로그램의 PD들이 지금 난리가 났어요. 너무 재미있다고, 이거 가지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겠다고. 기획해 보겠다고. 그런데 편성이 안 나온다고. (폭소)” 어쩌면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남기 위해, 잘 되는 트렌드를 좇아 중박 정도를 노릴 뿐 더 이상 새로운 모험을 하려 하지 않는 보수화된 방송 환경 탓인지도 모르겠다.



남성 예능인 위주의 시장에선 남성 예능인들이 더 쉽게 검증 받고, 그렇게 검증 받은 이들이 다시 제 자리를 공고히 하는 악순환. 그렇게 남자 위주로 프로그램들이 재편되는 동안, 이미 오래 전에 검증이 끝난 박미선, 이영자, 송은이, 김숙, 김신영 등과 같은 여성 예능인들조차 설 수 있는 무대를 잃어간다. 여성 예능인이 설 무대가 사라지니, 자연스레 여성은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만 호명된다. 적어도 양성 평등의 면에서만 보면, 지금 TV는 세월을 거슬러 퇴행 중이다. 배연정이나 이경실과 같은 걸출한 여성 예능인들이 등장하기 전으로, TV에 나와 사람들을 웃게 만들던 예능인이라곤 죄다 남자 뿐이던 시절로.

미디어란 단어는 라틴어 ‘medium’의 복수형으로, ‘가운데’라는 의미와 ‘수단, 매체, 소재, 도구’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해석하자면 정보 제공자와 수용자를, 사회 곳곳의 사람과 사람을 중간 자리에서 이어주는 매개체란 뜻이다. TV에 여성 예능인이 좀 덜 나와도 당분간 시청률에 큰 지장이 생기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TV가 세상의 절반을 이해하고 조망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는 건 별로 좋은 신호가 아니다. 중간에 서 있어야 할 미디어가 어느 한 쪽 끝에만 무게를 실어주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순간, 그 미디어는 쇠락하기 시작한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비밀보장>, KBS, JTBC,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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