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변호사’, 뺀질이 이선균의 얄밉도록 매끈한 질감

2015-10-14 12:59:57



‘성난 변호사’, 매끈한 캐릭터로 살린 장르의 묘미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성난 변호사>는 변호사가 주인공인 영화이긴 하지만, 단순한 법정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액션과 추리가 절묘하게 배합된 범죄물에 가깝다. 사건의 규모나 성격이 만만치 않지만,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캐릭터이다. 영화는 변호성이라는 지적이고 세련되며 자신만만한 인물을 내세워, 법정 안팎을 가로지르며 사건을 해결하는 호쾌한 과정을 유려하게 보여준다. <베테랑>이나 <공공의 적>이 투박한 형사가 선사하는 좌충우돌의 매력을 맛보는 영화였다면, <성난 변호사>는 뺀질거리는 변호사의 얄밉도록 매끈한 질감을 맛보는 영화이다.

◆ 잘난 변호사, 제대로 뒤통수 맞다.

국민 참여 재판에서 제약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낸 원고는 신약의 부작용으로 암에 걸렸다고 주장한다. 배심원들 사이에 원고에 대한 동정적 여론이 굳어갈 즈음, 변호사는 쇼맨십이 가미된 능란한 언변으로 원고의 암 발병과 신약이 무관함을 설득해낸다. 자본의 편에 선 변호사로서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한 그는 누구인가. 대검중수부 출신으로 로펌의 에이스로 인정받는 변호성(이선균)이다.

제약회사 문회장에게 인사를 하러간 자리에서 변호성은 새로운 사건을 맡는다. 시체 없는 살인사건인 ‘신촌 여대생 피살사건’에서 용의자로 몰린 자가 문회장의 운전기사란다. 시체 없는 살인사건은 영화 <의뢰인>에서 다루었듯이 까다로운 문제를 지닌다. 하지만 민완한 변호성은 몇 가지 단서를 찾아내 김기사의 무죄를 설득해낸다. 직속후배였던 담당검사(김고은)에게 변호성이 막 물을 먹이려는 찰나, 아뿔싸 뜬금없이 용의자가 법정에서 자백을 해버린다! 더구나 변호성이 꿰어 맞춘 증언이 위증교사로 인정되어 변호사자격도 박탈당할 위기에 몰린다.

변호성은 사무장(임원희)과 함께 통화기록 등을 탐문하여 사건의 진상을 알아내려 분투한다. 마침내 여대생 피살사건과 신약부작용 사건이 연관되어 있음을 알아 낸 변호성이 쾌재를 부르는 순간, 옴짝할 수 없는 덫에 걸려든다. 모든 경력을 잃고 목숨까지 위협당하는 위기에서 그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 선악은 모호하게, 캐릭터는 분명하게

<성난 변호사>는 쌔끈하고 반질거리는 변호성이란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재현한다. 변호성은 영화 <의뢰인>에서 하정우가 맡았던 캐릭터와 비견될 수도 있지만, 그보다 까다롭고 예민한 인물이다. 그는 배려심이 없다. 사무장(임원희)에게 무리한 일을 시키고는 그의 고생을 눈앞에서 무시해버린다. 그는 외제차를 사랑하는 속물이며, 잘난 척이 몸에 밴 엘리트이다. 몸 쓰는 일에 능숙하지 않아 주먹을 날리진 못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민첩하게 빠져나간다. 우직하고 투박한 ‘개’과 성격을 좋아하는 한국 관객들에게 ‘고양이’처럼 매끈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 상당한 모험일 수 있겠다. 감정이입이 되어야 그의 사건 해결을 응원하며 볼 수 있을 텐데, 과연 뺀질이 같은 인물에게 감정이입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영화는 그에게 무조건적인 감정이입을 유도하지 않는다. <성난 변호사>는 후반부에 변호성의 선택을 관객들이 의심하도록 내버려두는데, 그것이 더 좋은 반전의 효과를 낸다. <성난 변호사>는 그가 정의로운 영웅인지 악마의 변호사인지 모호하게 만들면서, 선악의 점이지대를 확보한다. 일견 속물변호사인 그가 무엇 때문에 자본에 맞서는 위험을 감수할까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가령 “변호사의 자존심이 그렇게 대단하더냐” <씨네21> 이용철의 20자평) 그러나 영화는 선악의 경계가 본디 뚜렷하지 않으며, 원래 정의롭지 않은 인물이라 할지라도 어떤 ‘빡침’의 상태에서 자신의 존엄을 위해 뜻밖의 선택을 할 수도 있음을 열어둔다.

변호성의 선택은 할리우드 영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가 보여주었던 도덕적 판단의 범위를 넘지 않는다. 즉 속물에다 정의로움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라 할지라도, 자신을 위기로 몰아넣는 자에게 무조건 굴종하지 않고 두뇌게임을 통해 ‘빅엿’을 먹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는 선악의 경계는 흐릿하게 하면서 캐릭터의 개성은 선명하게 살린다. 이러한 원칙은 변호성 뿐 아니라 다른 인물을 통해서도 관철된다. 사무장은 특전사 출신으로 범상치 않은 호신술과 결정적인 순간에 기지를 발휘하는 능력을 지녔다. 그는 변호성의 조력자지만, 무조건 돕지 않는다. 그는 어느 순간 옳고 그름에 대한 독자적인 판단에 의해 행동한다. 따라서 그의 도움을 얻기 위해 변호성은 그를 설득해야 한다.

김기사는 전과자인데다 철거용역에서 일했고 문회장 밑에서 온갖 더러운 일을 떠맡아 온 인물이지만 살인교사의 명령 앞에서 나름의 도덕적인 판단을 내린다. 그는 작전을 짜고 감옥에서 독자적인 두뇌 플레이를 벌인다. 살해된 여대생 역시 무력한 희생자가 아니다. 그는 자신도 살고 남도 살리기 위해 나름대로 작전을 수행하는 능동성을 보인다. 하다못해 김기사의 동료였던 ‘덤 앤 더머’도 나름 입체적인 캐릭터이다. 처음에는 그냥 멍청해 보였지만, 속을 알 수 없으며 갈수록 그들의 욕망이 무섭게 느껴진다.



◆ 대단히 사악한 자본의 본질

영화 <성난 변호사> 속 어느 누구도 자신의 생각 없이 그저 시키는 대로 살지 않으며, 만만한 상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인간관을 바탕으로 하기에, 여러 번 등장하는 ‘뒤통수치기’가 이상하지 않다. 누구나 꼼수를 부릴 수 있고, 누구나 뒤통수를 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문회장이다. 첫 등장에서 그는 점잖고 온화한 말투에 고상한 인격의 소유자로 보인다. 특히 자기 직원을 신실하게 챙기는 자상함이야말로 인격의 백미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는 “거슬린다”는 말 한마디로 무서운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자이며, “돈 받아 놓고 주인을 물려한다”며 사람을 완전히 개 취급하며 ‘짖지 못하게’ 하는 인물이다. 그는 갑자기 폭력성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영화는 그의 악마적인 속성을 상당히 절제하며 보여준다. 이러한 절제는 그의 오만함과 사악함이 단지 개인의 성격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자본의 본질로 보이도록 하는 효과를 낳는다.



영화 <성난 변호사>의 클라이맥스는 ‘성공한 CEO' 문회장의 대학 강연 장면이다. 영화는 문회장의 진실을 드라마틱하게 까발리는데, 이때 폭로되는 것은 “99명에게 이익이 된다면, 나머지 한명은 희생되어도 된다”는 그의 발언이다. 혹시라도 그의 공리주의적인 철학에 동의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극단적인 공리주의가 자본의 끔찍한 폭력을 가능케 한 근간임을 정당하게 짚어낸다. 99명에게 이익이 되더라도, 한 사람에게 치명적인 것은 결코 허용될 수 없으며, 이것이 인간의 존엄에 바탕을 둔 사고이다.

영화는 제약회사의 임상시험 부작용이라는 쉽지 않은 소재를 다루며 자본의 본질을 짚어낸다. 하지만 결코 무겁지 않은데, 이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플롯에 입체적인 캐릭터가 더해진 결과이다. 매끈한 캐릭터의 주인공을 비롯해 녹록치 않은 여러 인물들이, 다소 복잡해 보이는 스릴러의 뼈대를 풍성한 질감으로 채워주었다. 재미와 더불어 곱씹을 의미가 많은 흥미로운 영화이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성난 변호사>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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