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 김은숙 작가의 현란한 말장난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

2016-03-29 16:06:27



‘태후’, 멜로도 애국심도 결국 김은숙 작가 손아귀에 있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2016년 발칸반도 남단에 자리한 아름다운 나라 우르크. 우르크의 작은 마을 블랙키에서 멀지 않은 한 절벽 끝에 멈춰선 붉은 지프, 그 안에서 한 여성이 울부짖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여성의 목소리는 아랍어도 영어도 아닌 바로 한국어였다.

“아, 어떡해. 아, 어떡해.” (강모연)

이 여성은 한국에서 온 의료봉사단 팀장인 흉부외과 의사 강모연(송혜교)으로 블랙키 마을을 방문했다 돌아오던 길에 달려오던 트럭을 피하려다 그만 도로를 이탈,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때 강모연의 스마트폰으로 빅보스라는 의문의 남자가 전화를 걸어오는데.

“내 목소리 들려요? 내가 빨리 갈게요.”(빅보스)

카페라테 같은 부드러운 저음의 목소리를 지닌 의문의 남자 빅보스. 하지만 강모연이 운전하는 차는 계속해서 절벽 아래로 움직이고, 결국 강모연은 스마트폰으로 마지막 유언 메시지를 녹음한다. 그때 지프차 뒷문으로 갑자기 군복을 입은 한 남자가 들어온다. 빅보스의 정체는 우르크의 뜨거운 햇볕에도 우윳빛 피부를 사수한 특전사 알파팀의 유시진(송중기) 대위로 사랑하는 여인 강모연을 구하기 위해 달려온 것. 그런데 유시진 대위는 위기일발의 상황에서 강모연을 ‘심쿵’하게 만드는 결정적 한 마디를 그녀에게 속삭인다.

“난 이 차를 떨어뜨릴 겁니다.” (유시진)

유시진 대위의 말대로 곧바로 붉은 지프차는 우르크의 푸른 바다 깊은 곳으로 추락하고 마는데……

절벽에서 우르크의 깊은 바다로 떨어지고도 태양처럼 살아나온 두 남녀, 군인 유시진과 의사 강모연을 두고 사람들은 <태양의 후예>라 불렀다.



언빌리블 스토리, 서프라이즈! 신비한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시청률 30%대를 넘어선 흔치 않은 초히트작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KBS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대작이나 걸작이라 부를 만큼 탄탄한 서사를 갖고 있는 작품은 아니다. 다만 언제나 일요일 오전 시청자를 텔레비전 앞에 잡아두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처럼 흥미롭고(헬리콥터가 병원 옥상에 착륙하거나), 미스터리하며(대한민국 군인이라지만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특전사 알파팀), 극적인 휴머니즘(우르크 지진)과 우스꽝스러운 사건(다이아몬드 삼키기)이 함께 맞물리며 흘러간다.

난감한 고증과 외국인 재연배우들의 어설퍼서 귀여운 연기 또한 <서프라이즈>를 닮았다. 특히 우르크 소녀 파티마를 구하기 위해 권총을 든 여러 명의 외국인과 유시진 대위가 벌이는 격투신, 그리고 자동차를 몰고 들이닥쳐 이들을 구하는 강모연의 모습은 서프라이즈에 가까운 순간이었던 것.

“우와, 대박. 완전 신나. 따라오는 사람 없겠죠? 우리가 해냈어요. 흥분이 가시질 않네. 내가 적을 무찔렀다.” (강모연)



그런데 <태양의 후예>에는 <서프라이즈>에서는 보기 힘든 충격적인 사건이 등장한다. 바로 군인이 남자주인공이기에 상상조차하지 못한 로맨스 장면들이 등장하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우연히 실수로 지뢰밭에 들어선 강모연과 유시진, 이들은 대인지뢰를 피해가며 달달한 분위기를 만드는데.

“난 강선생이랑 멜로하고 싶은데 자꾸 블록버스터네.” (유시진)

극적이지만 어설픈 블록버스터와 김은숙 작가 특유의 현란한 말장난 멜로가 만난 <태양의 후예>는 신기할 만큼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가는 드라마인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거기에 세상에 없는 아름다운 풍경의 가상국가 우르크와 세상에 없을 것 같은 꽃미남 특전사 대위가 남자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이니 현실일탈의 서프라이즈한 재미가 충분했던 것.

“내가 재벌2세였으면 우린 좀 쉬웠습니까?” (유시진)

“아니, 그건 너무 평범해서.” (강모연)

물론 이 특유의 재미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태양의 후예>는 손발을 뚝뚝 꺾어 오그라트리는 고문 같은 드라마일 수도 있다. 혹은 어떤 이들에겐 정작 손발은 오그라들지만 찌릿찌릿한 즐거움이 느껴지는 괴상한 드라마일 수도 있는 것.

그런데 <태양의 후예>가 인기를 끌자 현직 대통령은 “<태양의 후예>가 젊은이들에게 애국심을 고취하고 국가관을 확립하는 데에도 교육적인 효과가 있다고 강조”하는데.



하지만 과연 멋있는 군인이 등장한다는 이유만으로 <태양의 후예>가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국가관을 확립하는 데 효과적이라 할 수 있을까?

“애국심이 뭔데요?” (유시진)

“나라를 사랑하고 조국과 민족에 충성을 다하고……” (강모연)

“강선생이 말하는 애국심이 뭔지 모르겠지만 아이와 노인과 미인은 보호해야 한다는 믿음.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고딩들을 보면 무섭지만 한 소리 할 수 있는 용기. 관자놀이에 총구가 들어와도 아닌 건 아닌 상식. 그래서 지켜지는 군인의 명예. 내가 생각하는 애국심은 그런 겁니다.” (유시진)

그리고 유시진은 재난의 현장에서 사람을 구하는 대신 애국심을 발휘해 중요서류부터 빨리 찾아달라는 한 남자에게 자신의 국가관에 대해 이렇게 말을 한다.

“국가, 국가가 뭔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게 국가야. (중략)군인인 나한테 생명보다 우선하라고 국가가 준 임무는 없으니까.”

신비한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과연 유시진과 강모연의 연애담에 손발이 자연스레 오그라들지만 찌릿찌릿한 일탈의 재미를 주는 서프라이즈한 드라마인 걸까? 아니면 애국심이 뭔지 진정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분들을 위한, 하지만 그분들께 그리 큰 효과는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안타까운 드라마인 것일까?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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