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석 씨·조관우 씨, 합주 한 번 어떠세요?

2011-09-02 13:12:26



- ‘우리 것’이 예능과 만났을 때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지지부진한 행보의 MBC <넌 내게 반했어>가 못내 아쉬웠던 건 개연성 없는 전개라든가 등장인물들의 애매모호한 감정선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야금을 전공하는 주인공 이규원(박신혜)의 등장으로 모처럼 대중의 관심이 국악으로 향하나 싶었으나 주목을 받기는커녕 판 한 번 본격적으로 펼쳐 보이지 못한 채 끝이 난 셈인지라, 바로 그 점이 아쉬운 것이다.

TV가, 특히나 주요 시간대에는 좀처럼 국악과 우리 문화에 시간을 할애할 생각을 않는 요즈음이 아니던가. 따라서 규원과 친구들로 이루어진 국악과 밴드 ‘바람꽃’의 활약상을 기대했건만 규원은 급기야 가야금을 버리고 노래로 마음을 돌리기까지 하지 않았나. 물론 본인이 원해 택한 길이 아니라 무형문화재인 할아버지 이동진(신구) 명창의 강압으로 걷게 된 국악인의 길이라지만, 어렵사리 맥을 이어온 전통을 그처럼 포기해버릴 줄이야. 한때는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는 구호의 광고가 크나큰 호응을 얻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 것이 좋다는 걸 까맣게 잊고 살아가는 우리네 삶인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 목마름을 해갈시켜줄, 짧게나마 우리 가락과 우리 문화를 만날 기회가 요 며칠 연이어 있었으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월요일에는 KBS2 <해피 선데이>‘1박 2일’에 출연하여 인기를 모았던 명품 조연 고창석 씨가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초대되어 대학시절 탈춤 동아리 활동으로 익힌 장구 실력을 발휘했는가하면, 화요일에는 KBS2 <승승장구>에 출연한 조관우 씨가 가야금 연주를 선보이며 남들은 3년이나 걸리는 과정을 일주 일만에 독파했다는 국악신동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했으니 말이다.

두 분 모두 십여 년 만에 시도하는 연주였다는데 그럼에도 우리 가슴 밑바닥에 잠겨 있던 정서와 감흥을 찰나에 일깨우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절로 어깨 짓이 나오는 장구며 가야금 가락에 매료되어 한번쯤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시청자들 아마 꽤 있었으리라.

그리고 다음 날, MBC <황금어장>‘무릎팍 도사’에서는 90년 대 전국적으로 답사 신드롬을 일으키며 인문서 최초의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바 있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이자 전 문화재청장인 유홍준 씨가 지난주에 이어 또 다시 심금을 울리는 얘기들을 들려주었다.

“한국의 건축은 그 자리에 건물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건물이 자연 속으로 들어가 또 다른 풍광을 만들어내는 드높은 미학을 갖고 있습니다.”라는 프랑스 건축가 협회 회장의 극찬을 인용하며 선조들이 남겨준 깊이 있고 아름다운 가치를 잊고 사는 우리들을 반성하게 했으며 경복궁 근정전 마당에 깔려있는 박석의 오묘한 배치라든지, 문화재청장 취임 후 초도순시 당시 경복궁 관리소장에게 들었다는 비오는 날 경사진 박석들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의 아름다움에 관한 설명들은 지금 당장에라도 경복궁으로 달려가고 싶게 만들었으니까.






MC 강호동 씨 역시 그에 질세라 천 년 전에 만들어진 부석사 무량수전을 오르는 계단의 착시 현상을 예로 들어가며 ‘1박 2일’을 통해 만난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기에 나섰는데 유홍준 씨는 그 얘기에 최순우 선생의 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한 구절을 보태 우리 전통건축의 위대함을 곤고히 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처럼 주거니 받거니 우리 문화에 대한 칭송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장면을 보게 되다니.

그리고 이어진 상처와 아픔이 함께 해온 경복궁 수난의 역사에 대한 회고는 한 순간 좌중을 숙연케 했다. 어찌하여 우리는 그 귀한 문화유산들을 제대로 간직도 못해온 것일까. 힘없어 갖은 외세에 의해 처참히 유린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전통 문화가 새삼 가슴 아프고 안타깝게 다가오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뿌듯함도 있다. 아무리 웃고 즐기기가 임무요, 책임인 심야 예능 프로그램이라지만 이렇게 뜻 깊은 한 마당을 가져보는 것도 얼마나 좋은가. 한동안 어린 아이돌들의 섹시 댄스며 재롱들, 폭로와 호통, 헐뜯기로만 가득했던 예능 프로그램들이 자정을 거쳐 진일보한 느낌이다. 어찌나 반가운지 모르겠다. 그리고 마지막 당부 하나, 고창석 씨와 조관우 씨가 다시 악기를 손에 잡은 김에 계속해서 대중에게 우리 가락의 흥겨움을 알리는 데에 앞장서주시길 바라본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그림 정덕주


[사진=KBS, MBC,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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