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C 그룹B, 미치광이들의 전성시대

2017-02-23 16:52:27



WRC, 광기의 시대 그 정점에 서다

[황욱익의 플랫아웃] 1970년대만 해도 레이스 드라이버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속도에 모든 것을 건 사나이들의 진검승부라 불리기도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레이스란 그저 ‘목숨을 내건 정신 나간 사람들의 무모한 경쟁’ 정도로 치부되었다. 모터스포츠 역사 상 최악의 사망사고는 1955년 르망에서 있었다. 추돌한 경주차가 그대로 관람석을 덮치며 드라이버 포함 80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의 부상자를 내 이 사고 이후 유럽에서는 잠정적으로(안전시설 확보 이후) 모터스포츠를 금지 하는 국가가 늘어났다.

그런 와중에도 자동차의 기술 발달과 함께 무모함을 즐기는 인구가 늘면서 모터스포츠의 인기는 날로 높아졌고 대규모 주류 회사와 담배 회사들이 대형 스폰서로 참여하면서 차츰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F1을 시작으로 모터스포츠 TV 중계권료와 경주차에 부착하는 스폰서 데칼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기 시작한 시점은 1970년대 중반부터다. 모터스포츠가 하나의 큰 광고판이 되면서 드라이버들의 몸값도 높아졌다. 드라이버에 대한 인식도 조금은 나아지긴 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스피드에 중독된 비정상적인 남자들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F1에서는 매년 드라이버들이 죽어나갔다. 한 시즌에 공식적으로 최소 2명 이상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고, 안전에 대한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WRC 마찬가지였다. F1과 달리 양산차를 기반으로 경기를 치르는 WRC는 생각보다 덜(?) 위험한 것처럼 인식되었지만 경기가 펼쳐지는 구간이 대부분 임도나 국도였고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구간이었던 만큼 관람객의 통제가 어려웠다. 여기에 황금기와 흑역사를 동시에 달성한 그룹B가 시작되면서 WRC는 F1 못지않은 광기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사륜구동과 터보 엔진, 연간 200대만 만들면 되는 생산 규정, 제한 없는 출력을 골자로 하는 그룹B 경주차들은 1985년에 이미 500마력을 돌파했다. 사륜구동이 출력을 버티긴 했지만 여전히 불안정했고 각 메이커들의 출력 경쟁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그룹B가 시작된 이후 드라이버들은 이런 문제점들을 지적했고 안전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메이커들은 더 빠르고, 더 과격하고, 더 새로운 기술을 그룹B를 통해 선보였다.

아우디를 필두로 란치아와 푸조의 경쟁이 한창이던 이 시절의 가장 큰 문제점은 경주차의 성능에 비해 컨트롤할 수 있는 드라이버가 절대 부족했다는 점이다. 1986년 그룹B 경주차의 출력은 평균 600마력. 공차 중량은 890kg~1,100kg 정도였다. 지금이야 500마력대 세단도 어렵게 볼 수 있지만 당시 한국에서 팔리던 국산 승용차의 출력이 80마력 내외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대단한 수치이다. 여기에 무게당 출력비(1마력이 감당하는 무게로 공차 중량 나누기 출력)가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1,100마력을 내는 부가티 베이롱 정도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무모함 그 자체였다. 말 그대로 부가티 베이롱 같은 극한을 달리는 차들이 국도에서 경쟁을 펼쳤다는 의미이다.



WRC for boys. Group B was for men.

이 말은 그룹B부터 2000년대 중반 월드 랠리카 시절까지 활동하며 4회 WRC 챔피언을 지낸 WRC의 전설 유하 칸쿠넨이 남긴 말이다. 캐블라와 카본으로 짠 보디 패널과 스페이스 프레임으로 만들어진 그룹B 경주차들은 불안정한 상태가 대부분이었고 똑바로 가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사륜구동의 등장으로 좀 나아졌다고 하지만 ‘목숨 걸고 똑바로 가장 멀리 선수가 우승한다’ 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은 드라이버들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속도가 높아짐에 따라 대부분의 드라이버들은 터널 현상(속도가 높아질수록 급격하게 시야가 급격하게 좁아지는 현상)에 시달려야 했으며 메이커들은 더 높은 출력의 엔진을 개발했다.

실제 1985년 간헐적으로 투입된 란치아 델타 S4는 공식적으로 650마력의 출력을 냈지만 연구소에서 개발할 때 기록한 최고 출력은 5바에서(과급 엔진의 과급 압력으로 21세기에 등장한 양산형 트윈 스크롤 터보 엔진이 대략 1바 정도) 1,500마력에 육박했다. 그러나 이 출력은 어디까지나 추정치이다. 당시만 해도 제대로 된 계측장비가 없어 엔지니어들의 계산과 엔진 다아나모에 의해 기록된 수치지만 대부분의 메이커들이 출력을 하향 발표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과장된 것은 아니다.

실제 델타 S4는 모나코 F1 경기 때 데모 주행을 진행했는데 이 때 기록이 F1 그리드의 6번째에 랭크될 정도로 빠른 경주차였다. 그에 반해 드라이버 안전 장비는 크게 부족했다. 헬멧과 수트, 글러브, 발라클라바가 전부였으며 드라이버를 보호 하는 안전장구 개발과 규정 개정에 대해서는 경주차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 했다.

경주차 뿐이 아니었다. 랠리 특성 상 별도의 관람석이 없었다는 점도 안전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관람객들은 질주하는 경주차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보려고 코스 안까지 장사진을 이루며 들어오는 경우도 많았고, 일부는 달리는 차에 거의 뛰어 들다 시피 했다. 축구의 훌리건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일이다. 이런 여파로 WRC에서는 매년 크고 작은 사고가 끈이질 않았으며 관람객이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쉽게 설명해 자동차 메이커, 드라이버, 관람객 등 WRC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스피드에 중독된 나머지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시기가 바로 그룹B 시절이다.

자동차 메이커들은 WRC와 그룹B의 인기가 높아지자 앞다퉈 그룹B 출전을 타진했다. 포르쉐 959와 페라리 288GTO 같은 슈퍼카들도 그룹B 호몰로게이션(인증)을 마치고 준비 중이었으나 아쉽게도 1986년 그룹B의 폐지로 이들이 WRC 무대에서 뛰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황욱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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