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C:더 벙커’의 고약한 상상, 한국인으로서 모멸감 느낀 까닭

2019-01-02 14:30:57



‘PMC:더 벙커’ 핵전쟁과 코리아 패싱, 누가 이런 끔찍한 상상을 달가워하랴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반(反)▲.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PMC : 더 벙커’는 <더 테러 라이브>에서 콤비 플레이를 보여주었던 김병우 감독과 하정우가 6년 만에 다시 만나 찍은 영화이다. 전작의 특징이었던 한정된 시공간에서 펼쳐지는 긴장감 높은 드라마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공간을 군사분계선 아래 비밀 벙커로 옮긴다. 그리고 민간인 사제폭탄 보다 화력을 훨씬 키워 군사작전을 펼쳐 보인다.

영화 초반 설정이 다소 정신없이 제시되지만, 액션의 질감이나 스케일은 나쁘지 않다. 특히 캠을 통해 보여주는 화면 등은 ‘워 게임’을 즐기거나 ‘밀리터리 덕후’들에게는 신선한 재미를 선사할 만도 하다. 하지만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어 흥행을 하기에는 결정적인 문제점을 지닌다.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는 바가 무엇이며, 누구를 향해 말하고 있는지를 깊이 숙고하지 못한 점이다. 황당하게도 영화를 관통하는 두 개의 키워드는 ‘코리아 패싱’과 ‘원격의료’다.



◆ 군사분계선 아래 지하 벙커에서는 무슨 일이

PMC는 ‘민간군사회사’의 약자이다. 코드 명 ‘에이 헵’(하정우)는 블랙리저드라는 PMC에서 랩터16이라는 부대를 이끄는 캡틴이다. 그를 비롯한 12명의 단원들은 여러 나라에서 미국으로 넘어온 불법이민자들이다. ‘에이 헵’은 한국군의 특수부대에서 근무하다 낙하산 사고로 다리를 다친 후 블랙리저드 소속의 용병이 되었으며, CIA의 신망을 받는 실력자다.

2024년 미국 대통령의 지지율이 북핵 리스크에 발목이 잡혀 곤두박질친다. 미국은 과거 빈 라덴이나 후세인에게 그리했듯이 북한의 최고지도자 ‘킹’에게 거액의 현상금을 내건다. 이대로는 재선 승리가 어렵다고 판단한 CIA는 공작에 나선다. ‘에이 헵’에게 북·미간 비밀회담 도중에 북한의 인민무력부장을 납치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CIA가 용병을 쓰는 이유는 일이 잘못되었을 때 발뺌을 하기 위해서다.



작전에 투입된 ‘에이 헵’은 시작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차린다. 작전 장소가 서울시내 호텔이 아니라, 군사분계선 바로 아래 땅굴을 개조한 지하벙커라는 것도 현장에 와서야 알았다. 또한 인민무력부장을 납치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의 미국 망명을 돕는 일이며, 그와 CIA 사이에 짬짜미가 있다는 사실도 작전개시 직전에야 듣는다. 서울 상공에 북한이 스커드 미사일을 쏘고 그걸 미국이 요격하는 쇼를 통해 군사작전의 명분을 확보하고, 그가 북한의 핵무기 격납고의 위치를 알려주면 미국이 그곳을 무장해제 시켜 북한을 접수한다는 시나리오이다.

여기까지 들은 ‘에이 헵’은 애초 듣던 것보다 훨씬 위험한 작전임을 알고 철수하려 한다. 그런데 회담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인민무력부장이 아닌 ‘킹’이다! 이 상황은 CIA도 예상치 못한 것임을 안 ‘에이 헵’은 재빨리 머리를 굴려 작전에 돌입한다. 거액의 현상금을 독차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랩터16 부대는 북한 경비병들을 순식간에 사살하고 ‘킹’을 납치한다. 그런데 뒤이은 상황들이 이상하게 꼬여간다. 현장에서 잡은 포로들이 도망치면서 ‘킹’이 총을 맞은 데다, CIA 지원군이 아닌 중국에서 보낸 다른 PMC의 용병들이 들이닥친다. 더구나 CIA에선 그곳을 폭파하여 증거를 인멸하려 한다. ‘에이 헵’이 살기 위해서는 ‘킹’을 살려 그와 함께 나가야 한다.



◆ 노골적인 코리아 패싱

영화 ‘PMC : 더 벙커’는 노골적으로 ‘코리아 패싱’을 보여준다. 한반도에 핵전쟁이 나느냐 마느냐의 상황에서 한반도의 운명을 쥔 것은 미국 정부다. 그것도 국제정세에 따라 미국이 전쟁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미국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한반도에서 ‘워 게임’을 벌인다. 그런 미국의 군사행동에 조금이나마 견제를 가하는 것은 중국이다. 미국은 북핵문제를 두고 중국에 압력을 가하다가 무역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어쩌면 미중간의 대립이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북한은 ‘가라앉는 배’로 묘사되며, 미국과 중국이 북한을 흡수하기 위해 경쟁하는 구도의 먹잇감으로 존재한다. 북한의 ‘킹’이 왜 회담장에 나왔는지, 정말 그도 망명할 생각이었는지는 한마디도 들을 수 없다. 그는 나오자마자 포획되었고, 곧바로 총에 맞는다. 벙커 안에서 흘러나오는 미국뉴스에는 그 흔한 조선중앙TV 아나운서의 논평 장면도 일절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아예 존재자체가 없다. 대한민국이란 국가가 존재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완전히 ‘패싱’된다. 서울 상공에 북한의 스커드 미사일이 날아오고 그것을 미군이 요격하는 장면에서, 그 아래 천 만 명의 시민이 살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곳은 주권국가의 영토라기보다 미군의 작전 지역처럼 느껴질 뿐이다. (“지금 동해상에 7함대가 있고...”) 심지어 마지막 장면에는 멀리 버섯구름이 보이지만, 그래서 한반도에 핵전쟁이 났다는 것인지도 명확히 언급되지 않는다.

실로 끔찍한 상상이다.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난다는 것도 끔찍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고, 완전히 무시된다는 점이 더 끔찍하다. <태풍><강철비> 등 그 동안 남북관계의 갈등과 화해를 다룬 수많은 영화들은 모두 7.4 공동성명부터 6.15 공동선언까지 이어져 온 ‘자주적이고, 평화적이고, 민족대단결을 지향한다’는 통일의 원칙을 전제로 하였다. 즉 적어도 ‘조선반도의 운명은 조선민족에 의해 결정한다’는 원칙에 입각하여 서사를 풀어나갔다.



그런데 ‘PMC : 더 벙커’에서 한반도의 운명을 쥔 것은 미국의 대통령이고, 그런 작전을 알고 대응하는 것도 중국뿐이다. 북한과 남한은 아무런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 물론 그런 상상도 해볼 수 있고, 그런 영화도 만들 수는 있다. 미국 제작진이 미국관객을 대상으로 만든 영화라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런 영화가 한국에서 만들어져, 한국 관객을 대상으로 개봉되었다는 점은 정말 기이한 일이다.

만약 동일한 내용의 영화가 미국에서 만들어졌다면, 한국에서 개봉될 수 있었을까. 가령 CIA가 고용한 용병이 북한의 최고지도자를 납치하고 한반도에서는 핵전쟁이 일어나는데, 대한민국의 존재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 영화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개봉 전부터 미국인의 오만한 시선에 한국인으로서 모멸감을 느낀다는 여론이 들끓지 않았을까. 그런 영화에 출연한 한국인 배우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여론이 일었을지 모른다.



◆ 원격 의료를 통해 싹튼 동료애?

영화 ‘PMC : 더 벙커’는 외부적인 설정 뿐 아니라, 내부적인 갈등구도도 미국영화를 보는 것 같다. ‘에이 헵’은 용병이자 불법체류자로서 미국에서의 삶이 중요할 뿐, 한반도의 운명에 대해서는 한 순간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과 대원들이 미국에서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에 관심이 있다. 의료보험도 없고, 불법체류 신분이 발각되면 가족이 모두 추방되는 삶을 개선하기 위해 큰돈을 벌어야 하고, 이를 위해 위험한 작전에 투입되었다는 것이 그가 가진 인식의 전부다.

영화에는 ‘에이 헵’의 낙하산 사고가 여러 번 언급된다. 그는 동료를 버리지 못해, 동료도 죽고 자기 다리도 부러진 트라우마가 있다. (‘에이 헵’이라는 코드명도 백경에게 다리를 잃고 의족에 의지하게 된 <모비딕>의 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다.) 즉 그의 낙하산 사고에 대한 언급에는 ‘동료를 살리기 위해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의 질문이 담겨있으며, 영화는 비슷한 상황을 변주시키면서 동료애를 되묻는다.



그런데 영화가 화두로 삼는 ‘동료애’가 별로 와닿지 않는다. PMC의 용병이란 조직에서 동료애가 얼마나 중요하게 작동되는지도 모르겠거니와, ‘에이 헵’이 진짜로 동료애가 강한 사람인지도 확신할 수 없다. 처음 호세를 선두에 세울 때 그의 말은 진심처럼 들린다. 그러나 총에 맞은 호세를 버리고 가자는 장면에서 그가 동료애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보다는 오히려 ‘각자도생 해야 한다’는 그의 말이 더 진정성 있게 들린다. 다른 PMC의 소속원은 ‘에이 헵이 돈만 밝히고 동료애가 없다’고 말하는데, 그 말도 완전히 거짓말 같지는 않다. 그가 자신을 믿는 인턴을 구슬려 목에서 피를 뽑고 결국 그를 죽게 만드는 장면에서는 그에게 동료애를 기대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이런 상황에서 “포기하지 말라, 밖에선 아직 너희 동료들이 싸우고 있다”는 북한의사 윤지의(이선균)의 말이 어떤 울림을 지니는지는 알 수 없다. 결국 팀원들을 모두 잃은 ‘에이 헵’이 난데없이 윤지의와 동료애를 나누는 것은 더욱 납득되지 않는다. 이들의 첫 대면은 ‘에이 헵’이 총에 맞은 호세를 놓고 가는 것을 포로인 윤지의가 비난한 것이다. 도망치던 윤지의는 선배의사를 살리려고 끝까지 심폐소생술을 하다가 붙잡히는데, 이 광경을 ‘에이 헵’이 모니터를 통해 보고, 그에게 원격의료를 요청한다. 즉 윤지의가 ‘에이 헵’의 잃어버린 동료애를 각성시키는 역할을 하였고, 두 사람이 원격의료로 ‘킹’을 소생시키는 과정을 통해 동료애를 쌓는다는 설정이다. 그런데 원격의료를 통한 협업이 그토록 우정을 쌓는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둘 사이의 우정이 대체 무슨 상징성을 띄는지도 알 수 없다.



◆ 누구 보라고 만든 영화인지?

<태풍><강철비> 등에서 남북한을 대표하는 두 인물의 만남은 남북한의 화해를 환유한다. 즉 이들의 우정은 남북한의 전쟁을 막는다는 중요한 명분을 지닌다. 하지만 ‘에이 헵’이 윤지의와 우정을 쌓는 것은 전쟁을 막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 ‘에이 헵’이 낙하사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동일한 상황에서 윤지의를 살려 내려온들 그 순간 한반도에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는 상황이라면 이들의 우정이 대체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요컨대 한반도에 사는 사람이라면 ‘에이 헵’이 만삭의 아내를 둔 남편이든 아니든 그가 벙커 에서 살아나가기를 응원하기보다 벙커 밖의 남북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가 더 궁금하다. ‘에이 헵’이 윤지의와 우정의 만리장성을 쌓든 말든, 한반도에 전쟁이 나지 않는 것이 훨씬 관심 사항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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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초반부터 한반도가 전쟁 직전임을 밝히며, 전쟁이 날 수 밖에 없다는 인턴의 전망을 들려준다. 인턴은 마트 앞 총격 사건을 예로 들며, 아무도 그것을 말리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총격 사건이 일어나며, 전쟁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아무도’ 에는 피해 당사자는 들어있지 않다. 영화 속에도 전쟁의 피해 당사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CIA 간부는 ‘에이 헵’에게 “전쟁으로 먹고 사는 너희도 전쟁을 반대하지 않을 것” 이라 말하는데, 사돈 남 말하는 꼴이다. 이들 중 누구도 전쟁의 피해자가 아니며, 당연히 전쟁에 반대하지 않는다. 인턴의 이야기 속 총에 맞은 피해자에 해당되는 것이 바로 남북한 8천만 겨레인데, 영화는 이들의 존재를 완전히 말소한 채 총기 소지자들의 ‘워 게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대체 누구 보라고 만든 영화일까. 과연 누가 영화 속 한반도 상황에서 완전히 자아를 분리한 채, 벙커 속 총격전에 몰입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미국의 패권적 사고에 동일시하거나, 현생의 맥락은 완전히 소거한 채 모든 것을 ‘워 게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 즉 검은 머리의 미국인, ‘워 게임 덕후’, ‘밀리터리 덕후’ 쯤 되어야 한반도 핵전쟁의 상황에서 자신의 존재를 떼어놓은 채 맘 편히 총격전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가뜩이나 북핵문제 해결에 올인 하였지만, 미국의 패권에 막혀 교착상태에 빠진 정권의 행보가 안타깝게 느껴지는 시기에, 이처럼 지독한 냉소를 접하는 것이 즐거울 리 없다. 핵전쟁과 ‘코리아 패싱’이라니, 누가 이런 고약한 상상을 달가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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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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