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거’, 유관순의 비장한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건

2019-03-09 13:32:12



‘항거’, 이승만 탓에 운동으로 바뀐 혁명을 되돌려 놓을 수 있기를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초등학교 때 새 학년이 되면, 가장 먼저 3.1절에 대해 배웠다. 나는 늘 의문이었다. 일제의 총칼에 맞서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다니, 너무 무모한 것 아닌가. 그렇게 한다고 독립이 될 것도 아닌데,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새로운 담임선생님들께 매번 질문해보았지만, 순국선열의 희생을 깎아내린다고 꾸지람을 듣기 일쑤였다.

그때 내가 삼일운동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때까지 ‘데모’가 무엇인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1987년 승리를 지켜보았고, 대학에서 ‘데모’에 참가한 후에야 나는 3.1 운동이 무엇인지, 제주 4.3 사건이 무엇인지, 4.19가 무엇인지, 광주항쟁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왜 이런 사담을 늘어놓느냐고? 3.1운동은 국가권력에 맞서는 ‘데모’의 직간접적 경험 없이, 단지 애국애족이나 일제의 잔학성을 강조하는 것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사건임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항거 : 유관순 이야기>는 어린 시절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3.1운동의 본질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단지 대의를 위해 죽는 순국열사의 영웅적인 일대기를 그리는 영화가 아니라, 자유를 갈구하는 숭고한 개인이 불의하고 야만적인 폭력 앞에서 자신이 믿는 가치를 저버릴 수 없기에 계속 저항을 이어가는 실존적인 과정을 군더더기 없이 드러낸다.



◆ 수많은 ‘무명의 유관순들’ 중 하나

<항거>는 유관순의 일대기가 아닌 죽기 전 1년간의 옥중투쟁에 집중한다. 혹자는 왜 유관순이라는 위인의 전기를 만들면서, 그의 영웅적인 업적이 아니라 감옥에서 고문당하며 버티는 이야기를 만들었냐며 불만을 표한다. 하지만 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 <헝거>, <잔다르크의 수난> 등에서도 인물의 업적보다 옥중투쟁이 집중적으로 다루어졌지만, 이를 문제 삼는 이는 없으며 오히려 명작으로 손꼽힌다.

영화는 투옥되기 전의 유관순의 행적은 회상장면이나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압축적으로 전달하며, 유관순이 어떤 마음으로 옥중투쟁을 이어갔는지를 보여준다. 사실 유관순의 경우 “옥 속에 갇혀서도 만세 부르다, 푸른 하늘 그리며 숨이 졌대요~”라는 가사가 말해주듯, 그의 전 생애에서 옥중투쟁의 의미가 크다. 3.1운동 당시 전국에서 약 두 달간 1,500회가 넘는 만세 시위가 이어졌다.

일상화되고 전국화 된 만세운동에서 참여인원이 당시 인구의 약 10%에 해당되는 200만 명에 달한다. 7500명 이상이 죽었고, 5만 명이 검거되었다. 그 중 검거된 여학생의 수가 200여명에 이르렀는데, 이는 당시 여학생의 수가 남학생 수의 1%밖에 되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남학생에 비해 10배나 많은 수이다. 여학생들이 역사의 전면에 나선 만세운동에서 수많은 ‘무명의 유관순들’이 있었는데, 그 중 유독 유관순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옥 속에 갇혀서도 만세 부르다 숨이 졌다’는 옥중투쟁과 순국의 키워드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해방 후 유관순은 ‘순국처녀’로 불리기도 했다.



영화 <항거>는 유관순의 옥중투쟁과 순국을 그리지만, 그가 얼마나 영웅적이었고 얼마나 끔찍한 고문을 겪었는지에 방점을 찍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가 내면적 성찰을 통해 조금씩 스스로의 한계를 넓혀나고 동료들과 신뢰와 감응의 관계를 맺어나가는 것에 주목한다. 영화에는 불가피하게 잔혹한 고문장면이 담기지만, 흑백의 화면이나 적절한 앵글과 컷을 활용하여 선정적으로 보이지 않게끔 각별한 유의를 기울였다.

영화 초반 가장 놀라운 장면은 유관순이 감방에 들어설 때, 수많은 여죄수들이 방안에 한가득 서 있는 것이다. 유관순이 이렇게 많은 ‘만세꾼’ 들 중 하나로 수감이 되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하지만 유관순에게는 특별한 면이 있다. 처음 유관순이 이감되어 왔을 때, 교도소장은 대략 6개월에서 1년 형을 받은 흔한 여학생일 거라며 심드렁하게 대꾸하다가 3년형을 받았다고 하니 이유를 묻는다. 유관순이 유죄를 인정치 않고 재판정에서 판사를 모독하였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그의 특별한 점은 만세운동을 했다는 것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제의 사법적 질서에 정면으로 ‘항거’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항거’는 감옥 안에서도 일관성 있게 유지된다. 이후 전개될 상황에 대한 암시인 것이다.



◆ 항일운동을 뛰어넘는 내부혁명

유관순이 감방에 들어서자, 그를 아는 고향 아주머니가 비난을 퍼붓는다. 공부하라고 서울에 보내 놓으니 고향에 와서 만세운동을 일으키는 바람에, 고향 사람들이 죽고 투옥되었다며 원망과 탄식을 늘어놓는다. 이런 비난에 유관순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다. 대신 김향화(김새벽)가 “누가 시켜서 만세 불렀습니까?”라고 하자, 아주머니는 “내가 천한 기생 년과 한 방에서 있다니”라며 낙후된 의식을 드러낸다.

이 장면은 함축적으로 만세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는다. 3.1운동은 3.1혁명으로 부르는 것이 더 합당한데, 그 이유는 3.1운동이 외세의 침략에 저항한 운동이었을 뿐 아니라, 조선 내부의 체제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분기점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3.1운동 이후 군주제나 신분제는 힘을 잃었으며, 이전까지 소수 엘리트들 사이에서만 지지되었던 민주공화제가 다수의 지지를 얻게 되었다. 남녀노소, 지식인, 학생, 노동자, 농민, 상인, 백정, 기생, 동학교도(천도교)와 기독교인, 유림, 북부지방을 포함한 전국 도시와 농촌에서 조선인들이 다 함께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는데, 이를 통해 오래된 신분질서가 급격히 무너진 것이다. 특히 여학생과 기생 등 여성들이 공적인 무대에서 활약한 것은 유교적인 관념에서 보았을 때 획기적인 일이었다.



요컨대 3.1 운동은 단지 반외세 운동에 그친 것이 아니라, 자유, 평등, 평화, 공화주의, 민주주의, 국제연대 등 근대적인 사상과 가치가 들끓으며 급속도로 대중들에게 흡수되었던 혁명의 공간이었다. 중앙의 지도부가 없는 가운데, 누구든 조직하고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만세운동이 이어졌다. 일제는 혹독한 탄압으로 응수했는데, 탄압이 거셀수록 조선인들은 각성과 저항의 주체로 거듭났다. 마침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으로 민주공화정으로 체제를 바꾸었는데, 이로써 (대한제국의 신민이나 황국의 신민이 아닌) 공화국의 시민으로 자주독립의 의지를 다지며 민주적인 사회체제를 구상해나갔다.

영화는 이러한 3.1 혁명의 의미를 유관순과 감방동료들을 통해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즉 3.1 혁명을 통해 주체가 어떻게 변하고, 그것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여감방 8호실이라는 축소된 무대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 영웅이 아닌 스스로를 곱씹는 ‘학출’의 운동권

만원 전철처럼 빽빽한 여감방 8호실에는 실로 다양한 여성들이 수감되어 있다. 유관순과 권애라 같은 학생도 있고, 김향화 같은 기생과 이옥이 같은 북부지역의 다방여급도 있다. 만삭의 임신부도 있고, ‘반가의 여자’라는 자의식을 지닌 아주머니도 있다. 영화에는 유관순이 이들을 지도하거나 선동하거나 연설하는 장면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영화는 유관순을 이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소녀로 그리되, 그가 고민과 성찰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담는다. 그리고 동료들과의 대화를 통해 3.1 혁명의 의의가 저절로 드러나게 한다.

예컨대 옥중투쟁의 첫 모티브가 되었던 개구리 이야기도 유관순이 지사적인 의연함으로 진지하게 발화한 게 아니다. 오히려 젊고 발랄한 성정으로 내뱉은 농담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개구리가 아니다.” 라는 말은 살아서 나가겠다는 일념으로 모멸을 견디던 동료들에게 기이한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발적인 저항의 몸짓이 이어진다. 이후 유관순의 사소한 저항은 참혹한 고문으로 이어진다. 초죽음이 되어 감방으로 돌아오는 유관순에 의해 동료들이 그의 용기와 저항에 감응된다.



유관순은 아주머니의 원망을 곱씹으며 “내가 만세를 부른 것이 잘못이었을까” 회의한다. 김향화와 이옥이는 자신들이 기생으로서, 다방 여급으로서 만세를 부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들려준다. 이들의 사연에 유관순은 여학생으로 누려왔던 제한된 경험과 인식을 통렬히 반성한다. 이 장면은 유관순만 만세운동의 주역이 아니었으며, 기생이나 여급도 똑같은 만세운동의 주역이었음을 드러낸다. 이는 오직 유관순만을 ‘순결하게 고통 받으며 죽어간 애국처녀’의 자리에 올려놓고 만세운동이 지닌 의미를 축소시키고 애국주의적인 의미로만 고착시켜왔던 과거의 기획과 영화가 궤를 달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엘리트주의를 반성하는 ‘학출’ 유관순은 일제의 억압을 통해 점점 강해진다. 고문실에 그가 처음 끌려갔을 때와 두 번째 끌려갔을 때의 태도가 사뭇 다르다. 그도 자신이 겪을 고통이 두렵다. 그러나 자신의 옳음을 굽힐 수 없기에 한끝의 용기를 더 내는 것이다. 일제가 고통을 가할수록 그의 저항과 용기가 조금씩 늘어난다. 즉 탄압이 모질수록 그것을 이겨내는 자신을 발견해 나간다. 이는 김영랑의 시 <춘향>에 나오는 “큰칼 쓰고 옥에 든 춘향이는 제 마음이 그리도 독했던가 놀래었다”고 말한 대목과 일치한다. 또한 이후 수많은 ‘만세꾼’, 독립투사, ‘빨갱이’, 조작간첩, 비전향 장기수, 민주투사, ‘전문 시위꾼’ 들이 서대문 형무소, 중앙정보부, 보안사, 안기부, 남영동 대공 분실 등에서 신념으로 인해 고초를 겪으며 스스로의 용기와 의지로 초극해나갔던 상황과 일치한다.



◆ 감응이 이어지다

영화 <항거>는 유관순의 용기가 일제의 강고한 억압에 틈을 내고, 감방의 동료들을 감응시키고, 나아가 다른 감방의 죄수들을 거쳐 감옥 밖으로 번져 나가는 것을 보여준다. 옥중시위가 서대문거리로 퍼져나가는 장면은 굉장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감옥에서 만세소리가 울렸다는 말을 듣자 사람들은 장롱 밑에 숨겨둔 태극기를 꺼내들고 거리로 나선다. 일본 교도관의 말처럼 ‘조선인은 말을 듣지 않는 반골’들이며, 언제든 데모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다, 평화적인 민중시위 문화를 창출한 ‘데모의 민족’인 것이다.

영화가 회상 속 만세운동 장면보다 현실 속 만세운동 장면을 생동감 있게 그린 것은 주목할 만하다. 역사 속에 박제된 1919년의 3.1 운동이 아니라, 3.1 운동을 이어받아 오늘의 투쟁으로 삼으려는 1920년의 작은 만세시위를 소중히 다루는 태도가 감지되기 때문이다. 3.1 혁명을 현재화하려는 행위는 실제로 크고 작은 사건들을 낳았다. 일제하 6.10만세 운동은 물론이거니와, 미군정기 제주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 몰려든 대중들이 결국 제주 4.3 사건의 단초가 되었음을 꼽을 수 있다. 제헌헌법 초안에는 ‘3.1 혁명’으로 기재되었다가 당시 국회의장이던 이승만의 반대로 ‘3.1 운동’으로 이름이 바뀐 사실이나, 이후 4.19 혁명부터 최근의 촛불혁명까지 전국적인 민중시위로 헌정사를 갈아치운 것을 떠올려보면, 3.1 혁명을 현재화하려는 태도가 얼마나 전복적인지 알 수 있다.



영화가 유관순의 비장한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그를 면회한 김향화와 오빠로 시선을 옮기며 끝을 맺는 것도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마지막 면회 장면에서 유관순은 김향화에게 “술 한 잔을 같이 마시고 싶다”고 말하고, 김향화는 유관순과 함께 “한 번 더 만세를 불러보고 싶다”고 말한다. 유관순의 오빠가 시종 유약한 모습을 보이던 것과 달리, 김향화는 단단한 심지를 내보이며 만주로 가겠다는 말을 남긴다. 유관순이 목숨과 바꾼 용기가 김향화에게 이어졌음을 간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인데, 이는 3.1 운동이 3.1 혁명으로 불려야할 이유를 뚜렷이 각인시킨다.

즉 신분질서로 억압받던 여성들이 근대적인 주체로 거듭나 역사의 주역이 되었고, 고통의 도가니에서 함께 투쟁하며 신분을 뛰어넘는 시민적 연대를 이루었으며, 마침내 민주공화정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체제를 만들었다는 의미를 상징적으로 담는다. 3.1 혁명의 여파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이외에도 수많은 사회운동의 발흥을 꼽을 수 있다. 시위에 참가했던 학생, 청년, 여성, 노동자, 농민이 각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부문운동의 주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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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혁명의 가치를 돌아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통해 현재의 민주공화정이 해방 후 미국에 의해 이식된 체제가 아니라, 3.1 혁명을 거치면서 조선인들이 스스로 원하고 만든 체제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여성참정권 운동이 없었음에도 미군정의 영향에 의해 1948년에 여성참정권이 거저 주어졌다고 오인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실상은 1919년 4월 11일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선포한 <대한민국임시헌장>에 남녀평등과 여성들의 참정권이 천명되어 있다. 이는 3.1 운동에서 여학생을 비롯한 여성들이 보여준 활약의 결과였다.

영화는 3.1 운동에서 잘 알지 못했던 혁명적인 성격을 유관순과 그의 동료들을 통해 잘 녹여내며, ‘순국처녀’의 이미지에 갇혀 있던 유관순을 혁명과 신념을 고뇌하는 근대적인 주체로 그려내는데 성공하였다. 3.1 혁명 백주년을 맞아, 의미를 곱씹으며 볼만한 영화임에 틀림없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항거 : 유관순 이야기>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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