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려고 만드는 사람들은 절대 이해 못 하는 차, XJ220

2019-03-31 11:13:29



재규어 XJ220, 재규어의 마지막 슈퍼카 이야기 (1부)

[변성용의 사라진 차 이야기] SS카 컴퍼니라는 이름의 회사가, 재규어로 이름을 바꾼 것은 2차 대전이 막 끝난 1945년이었다. 전쟁의 흔적은 가능한 깔끔하게 지워져야 했고, 회사 이름은 그 중 첫 번째 대상이었다. 나치라면 몸서리를 치는 사람들에게 나치친위대 SS(슈츠스타펠)을 연상하게 만드는 로고는 꼴도 보기 싫었을 것이다.



전쟁 전 벤틀리의 스타일을 모방한 조립키트를 팔던 회사는 이 때를 기점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차를 선보이며 변하기 시작한다. 전후 3년 만에 내놓은 새 차는 고성능 스포츠카였다. 전후 복구에 허덕이던 세상 어디에 스포츠카를 소비할 여유가 있었을까 싶지만, 시장은 의외로 성업중이었다. 복구과정에서 한몫 잡은 신흥 부유층이 유럽 각국에 출현했으며, 승전국으로 본격적인 고도성장기에 접어든 미국이 있었다. 미국인들의 소비성향은 대단했다. 세상의 좋은 물건은 닥치는 대로 사들이던 나라에게 영국제 신형 스포츠카라고 예외일 리가 없다. 대전기 비약적으로 뛰어오른 엔진기술을 바탕으로 한 신형 직렬 6기통 엔진, XK를 탑재한 차는 테스트 주행에서 시속 120마일 (193km/h)를 넘기며 양산 최고속 차량으로 등극한다. 엔진의 이름에 최고속을 붙이는 간단한 작명법에 따라 차의 이름은 XK120가 된다.



고성능차를 손에 넣은 사람들은 당연한 듯 이들을 모아놓고 성능을 겨뤘다. 재규어는 레이스에서 빠른 차로 이름을 날렸으며 특히 르망에서의 활약은 엄청났다. 고속 레이스를 위해 바디의 형상을 크게 손질해야 했지만, 당대 르망의 최고속 레이스카의 알맹이는 양산형 XK시리즈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레이싱이 각종 규제와 기술로 장벽을 쌓기 전, 이 시대의 레이스카라는 물건은 본질적으로 잘 만들어진 도로용 스포츠카를 그대로 가져다 쓴 것들이었다. 재규어의 걸작 C타입과 D타입이 그렇게 탄생했다. 1957년을 끝으로 르망에서 화려하게 퇴장한 재규어가 다시 복귀하는 것은 1980년대가 되어서다. 재규어의 마지막 슈퍼카 이야기도 이 즈음부터 시작된다.



◆ 토요일 클럽 모집하다

재규어의 슈퍼카, XJ220는 재규어 엔지니어링 치프였던 짐 랜들(Jim Randle)의 망상에서 시작된 차였다. 원래 버밍엄 공대의 공학교수였던 그는 개스터빈 분야에서 명성을 쌓은 권위 있는 학자였지만, 자신의 업적을 뒤로 한 채 재규어에 들어갔다. 입성의 목표는 알루미늄 양산차의 현실화로, 지금의 재규어가 알루미늄 차체의 선구자적 존재가 되는 단초를 제공한다. 하지만 차체 연구 같은 건 좋은 핑계일 뿐, 그는 본질적으로 ‘자동차 덕후’였다. 자동차 개발의 가장 일선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 그는 최신의 그룹C 레이스카가 점점 현실과 동떨어진 ‘머신’이 되는 상황이 못마땅했다. 아무리 성적이 좋게 나온 들, 도로를 달릴 수 없는 자동차라는 게 무슨 의미를 지닐까? 그에게 이상적인 레이스카는 경기를 마친 뒤 그대로 집으로 몰고 오는데 문제가 없어야 했다. 예전의 걸작 C타입과 D타입이 그랬듯이.



1987년 크리스마스 휴가시즌. 남들은 푹 쉬는 기간에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 못한 일 중독자 치프는 결국 “현시대에 C타입이나 D타입과 같은 차를 만든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라는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한다. 휴가 기간 동안 골판지로 4분의 1 규모의 섀시 모형을 만든 뒤, 그걸 들고 재규어 디자이너 키스 헬펫(Keith Helfet)를 찾아가 자신의 구상을 설명한다. 그룹C 차량에 르망-재규어의 마지막 연결고리 XJ13의 이미지를 투영한 렌더링이 나오자 그는 사내에 ‘자원봉사’ 공고를 낸다. 그렇게 모인 호기심 가득한 열두 명의 엔지니어에게 치프는 말한다.

“이거 정식프로젝트 아니다. 업무가 아니니까 방과 후에만 해야 되고 당분간 토요일에 계속 나와야 된다. 야근 수당 당연히 없다. 그래도 할 사람?”

엔지니어들이 대답했다.

“할래요. 재미있을 거 같아요.”

훗날 ‘토요일 클럽’이라 불리게 되는 사내 자동차 덕후 그룹이 결성되었다.



◆ 재미있으면 하는 거다

일반도로 주행이 가능한 르망 레이서라는 목표를 위해서는 당연히 FIA의 규정을 충족하야만 했다. FIA그룹 B규정의 범위 내에서 기획된 탓에 XJ220의 형태는 동시대의 슈퍼카들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제법 있었다.

- 엔진이 가운데에 위치한 미드십
- 벌집모양 알루미늄 구조물 섀시
- 출입영역을 줄이고 강성도 확보하기 위한 전동식 시저(scissor) 도어
- 재규어의 레이스용 V12인 XJ엔진의 탑재
- 돌출 에어로파츠의 금지. 공력특성의 조절이 가능한 가변 스포일러.
- 4륜구동, 4륜 조향 시스템
- 최고시속 220마일(354km/h) - 그러므로 차 이름은 XJ220



인력 외에 들어가는 개발자원은 클럽 멤버들이 발품을 팔아 해결했다. 엔진은 재규어 레이싱이 7리터 급으로 올라가면서 필요 없게 된 6.2리터 사양을 지원받았고, 부품 대부분은 업무 관계로 알고 지내던 협력업체에서 샘플을 받아 해결했다. 하지만 4륜구동 시스템만큼은 이런 식으로 융통할 수가 없었다. 재규어는 한번도 4륜구동을 만들어 본 적이 없는 회사였으며, 미드십용 4륜구동 액슬과 변속기 같은 게 기성품으로 나와 있을 리도 만무했다. 하지만 이 문제도 생각보다 쉽게 풀린다. 클럽의 젊은 엔지니어, Stuart Rolt를 바라보던 랜들은 문득 떠오른 질문을 던진다.

“너 성이 Rolt라고? 혹시 Tony Rolt 랑 무슨 관계냐?”
“저희 아버지인데요?”
“와우 이런...아버님 좀 뵙자고 말씀드려라”

토니 롤트(Tony Rolt)는 현대적인 4륜구동 트랙터 시스템을 만든 퍼거슨 리서치(Ferguson Research)의 기술 총괄 책임자이면서 레이스용 4륜구동 변속기 개발사인 FF디벨롭먼트(Ferguson Formula Development)의 설립자였다. 영국에서 슈퍼카용 4륜 구동 시스템을 제대로 만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 팀원의 아버지라는, 이 말도 안되는 행운을 놓칠 수는 없는 일. 토니 롤트를 만난 랜들은 분명 엄청난 게 나올 테니 ‘공짜’로 개발해 달라는 얼토당토않은 부탁을 한다. 토니 롤트는 흔쾌히 수락한다. 다른 것도 아니고 C타입의 계승자를 만들겠다는데 당연히 팔을 걷어붙여야 할 판이었다. 1953년 르망, 재규어 C타입을 몰고 우승한 드라이버는 바로 토니 자신이었으니.



◆ 어, 일이 커진다

XJ220은 슈퍼카로는 이례적인 수준의 대형차였다. 대형엔진과 복잡한 파워트레인이 차의 가운데에 들어간 덕분에 휠베이스가 2,845mm에 달했으며, 전체길이는 5,140mm나 됐다. 항력 계수를 낮추기 위해 앞뒤 오버행이 길어진 탓이었다. 도로주행 때문에 공력 성능을 위한 추가 파츠를 덧대기 어려웠던 탓에 바디패널의 기능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했으며, 결과적으로는 군더더기 없이 매끈한 유선형의 차로 만들어진다. 유일한 돌출부는 속도에 따라 움직이는 가변스포일러 뿐이었다.

본격적인 실물모형 제작도, 대형 윈드터널을 빌릴 예산도 없었기 때문에 1/4 스케일 목업의 풍동테스트로 만족해야 했지만, 공력성능에 심혈을 기울인 차는 시속 320km/h에서 1400kg의 다운포스를 만드는 뛰어난 성능을 입증한다. 캐나다 알칸(Alcan) 사와 공동개발한 알미늄 접착 기술을 활용한 섀시에 탑재된 것은 500마력 V12 엔진과 6단 수동변속기에 연결된 퍼거슨사의 4륜구동 시스템. V12 엔진을 우회해 앞바퀴에 구동력을 보내는 방법으로 토니 롤트가 취한 방법은 기발했다. 전륜구동용 샤프트가 엔진의 V뱅크 사이를 지나도록 만든 것이다. 4륜 조향 시스템은 신속한 방향 전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뒷부분이 좌우로 흔들리는 요(yaw) 상태를 빨리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토요일 클럽의 결과물이 기대를 뛰어넘는 모습을 갖추어 나가자, 관망만 하던 경영진도 점점 진지해졌다. 10월의 영국 국제 모터쇼에 프로토타입을 전시하고 싶다는 랜들의 요청이 통과되고, 늦었지만 회사 차원의 지원도 시작된다. 10월 18일 새벽 3시, 전시회가 열리던 당일 새벽에서야 가까스로 마무리된 차는 모터쇼 개장 직전에 부스에 올려진다. 랜들이 스케치를 한 지 불과 10개월 만에 벌어진 일.

쇼의 최대 피해자는 원래 프리미어로 예정되어 있던 페라리 F40이였다. 아무도 이 페라리의 걸작이 ‘영국 최초’로 베일을 벗는 모습에 신경 쓰지 않았다. XJ220을 보기 위해 9만 명이 추가로 모터쇼에 몰려들었다. 백지수표를 흔들며 대기라인 맨 앞줄을 요구하는 부자들의 행렬도 이어진다. 재규어는 이 차를 ‘220대’만 만들겠다는 선언을 즉흥적으로 철회한 뒤 일단 주문은 다 받기로 한다. 차량의 예상가격은 29만 파운드 (2019년 물가로 환산 시 약 11억원)에 양산차가 나오는 1991년까지 5만 파운드(약 1.9억원)나 되는 계약금을 내고 기다리는 조건이었지만, 이 한정판 슈퍼카를 손에 넣기 위한 경쟁은 치열했다. 계약금을 완납한 사람만 1,400명이 넘었다.

XJ220은 엄청난 대박을 쳤다.

@IMG10@

(2부에서 계속됩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변성용

변성용 칼럼니스트 :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13년간 객원기자로 글을 썼다. 파워트레인과 전장, 애프터마켓까지 자동차의 다양한 분야에서 업무를 수행하며 자동차를 보는 시각을 넓혔다. 현재 온오프라인 매체에 자동차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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