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이’를 켰을 때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

2019-04-11 10:11:18



깜빡이를 많이 사용하는 만큼 도로는 안전해진다

[이완의 독한(獨韓) 이야기] ‘모든 차의 운전자는 좌회전, 우회전, 횡단, 유턴, 서행, 정지 또는 후진을 하거나 같은 방향으로 진행하면서 진로를 바꾸려고 하는 경우에는 손이나 방향지시기 또는 등화로써 그 행위가 끝날 때까지 신호를 하여야 한다. (도로교통법 제38조 제1항)’

우리가 흔히 깜빡이라고 부르는 방향지시등은 정상적(?)인 운전을 할 경우 주행 중 가장 많이, 자주 사용하게 되는 장치다. 3차로에서 2차로로 차선을 변경하거나 앞지르기를 할 때, 또 좌우회전이나 유턴 시, 도로변에 주정차한 상태에서 출발해야 할 때도 방향지시등을 사용해야 한다.

이륜차나 자전거의 경우 수신호로 방향을 알릴 수도 있지만 자동차는 다르다. 깜빡이는 보행자나 다른 운전자들에게 내 차가 지금 어디로 갈 것인지를 알려주는 거의 유일한 장치라는 점에서 중요성은 두 말이 필요 없다. 그래서 제때 사용하지 않으면 3만 원의 범칙금을 물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미사용 범칙금을 내는 경우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운전자들은 이 방향지시등을 얼마나 잘 사용하고 있을까?

방향지시등 사용률에 대한 통계는 조사 기관에 따라 조금씩, 아니 제법 많은 차이를 보인다. 경찰청 자료라며 점등률이 60%를 넘긴다고 소개한 곳이 있는가 하면, 두 차례 현장 조사를 한 도로교통공단은 50~57% 정도의 운전자가 차선 변경과 좌우회전 시 방향지시등을 사용한다고 했다. 하지만 국토교통부 조사에서는 30%만이 방향지시등을 사용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어떤 조사가 현실에 가까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깜빡이 사용이 생각보다 인색하다는 게 개인적 판단이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다. 방향지시등을 켰을 때다. 깜빡거리며 차선을 변경하려고 시도할 때 공간 확보가 의외로 잘 안 된다. 한마디로 끼어들기가 어렵다는 얘기. 방향지시등과 관련해 지인이 독일에서 진땀을 뺀 일이 있다.



◆ 깜빡이를 켜고 눈치를 왜 보나?

얼마 전 잘 알고 지내는 지인이 독일을 찾았다. 일 때문에 찾은 유럽이었지만 일정도 길고 해서 온 김에 아우토반을 경험해보겠다며 국제운전면허증까지 새로 발급을 받아 왔다. 차를 한 대 빌린 그와 함께 왕복 400km 정도 거리의 아우토반을 달리게 됐다. 출발 전 몇 가지 주의할 부분을 알려줬다. 하지만 역시 직접 운전을 해봐야 확실하게 느낌이 오는 법. 비교적 한적한 지방도로를 지나 곧바로 아우토반에 진입했다.

1차로는 추월을 하지 않는 이상 이용하지 않는다는 규칙을 잘 따랐다. 그 점은 미리 숙지를 하고 온 듯했다. 하지만 저속으로 주행할 때는 우측차로를 이용해야 한다는 점, 또 가장 우측 차로가 비어 있으면 그쪽이 기본 정속 주행 차로가 된다는 점은 익숙하지 않은 듯 보였다.

또 생각보다 차들 주행 속도가 빨라 전체적인 흐름에 익숙해지는 데에도 애를 먹었다. 굳이 쌩쌩 달리는 차들 속에 같이 섞일 필요 없으니 느긋하게 맨 오른쪽 차로를 이용해 달리자고 권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적응이 되었는지 차선 변경을 시도하며 추월차로까지 들어갔다. 그런데 차선을 변경할 때마다 당황해하는 것이었다.

20년 운전 경력이었지만 깜빡이를 켜고 사이드미러와 룸미러를 통해 뒤를 보며 옆 차로 진입을 주저하는 것이 면허를 갓 딴 초보 운전자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시내에 진입해서 그런 모습은 극에 달했다. 방향지시등을 켰으면 바로 차선을 변경해야 한다고 수차례 말했지만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처음 독일에 와 운전할 때 내 모습이 오버랩 되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한국에서는 방향지시등을 켜고 차선 변경을 시도할 때 뒤차의 반응을 살피는 게 습관이었다. 상대가 순순히 끼어들게 해줄지 눈치 아닌 눈치를 봐야 했다. 그런데 독일은 반대였다. 깜빡이를 켜면 뒤차는 신경 쓰지 않고 즉각적으로 차선 변경을 해야 한다. 일단 방향지시등을 켜면 뒤차들은 브레이크 페달을 밟거나 차가 들어올 수 있도록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는 등, 당연히 앞차가 내 앞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여기고 공간을 만든다.

오히려 방향지시등을 켜고 주저하면 ‘뭐가 문제야?’ ‘알았으니까 빨리 끼어들라고’라는 식의 짜증 난 뒤차 운전자의 표정을 보게 된다. 공간이 아우토반만큼 여유롭지 못한 시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단 방향지시등이 깜빡이면 웬만큼 무리한 차선 변경 시도가 아닌 이상 대부분 끼어들 수 있도록 양보를 해준다. 그러니 눈치 볼 필요 없이 바로 차선 변경을 해야 한다.

처음 독일에 왔을 때 두 가지 도로 문화가 인상적이었다. 하나는 방금 말한 것처럼 방향지시등을 켜면 다른 차 신경 안 쓰고 끼어드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보행자들이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차들 신경 안 쓰고 그냥 가로질러 걸어가는 모습이었다. 차들이 알아서 일단 멈출 것이라고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저러다 사고 나면 어쩌려고...’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그들의 뻔뻔함(?)에 나도 익숙해졌다.



◆ 방향지시등 사용 원칙 3가지

물론 방향지시등을 사용한다고 모든 게 용납되는 건 아니다. 차간 거리 충분히 안 두고 끼어드는 자동차도 있고, 아예 깜빡이를 안 켜고 급하게 차선 변경을 하는 사악한(?) 독일 운전자들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주행 흐름을 최대한 유지하고, 룰에 의해 약속된 운전을 서로 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아우토반에서 진출로를 통해 빠져나갈 때도 최소 300m 전부터 깜빡이를 켜라고 운전학원에서 귀에 딱지가 붙도록 배운다.

방향지시등을 적절한 시점에 사용할 줄 알아야 내가 방향지시등을 켰을 때 잘 양보 받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많은 도로 주행 과정을 통해 이런 세세한 부분들까지 배우는 독일의 운전 교육 환경이 있기에 마음 편히(?) 깜빡이를 사용하고 끼어들기를 할 수 있다. 정리를 해보자면, 우선 깜빡이 사용에 인색하지 말자. 손가락만 뻗으면 쓸 수 있도록 운전대 바로 뒤에 달아 놓은 게 방향지시등 레버다.

깜빡이를 많이 사용하는 만큼 그에 비례해 도로는 안전해진다. 별 것 아닌 거 귀찮아하다 사고 나면 그것만큼 후회되는 일도 없다. 두 번째는 방향지시등을 켠 차가 내 앞으로 끼어들려고 할 때 웬만한 경우 아니면 양보해주도록 하자. 그게 우리 사회가 정한 룰이다. 양보하면 뿌듯하다. 세 번째, ‘방향지시등’을 잘못 이해하고 전가의 보도처럼 멋대로 사용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다른 차들이 여유를 갖고 대응할 수 있도록 미리미리 깜빡이 켜주는 것 잊지 말아야겠다. 이것만 잘 지켜져도 우리나라 도로, 지금보다 훨씬 쾌적해질 것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

이완 칼럼니스트 : <모터그래프> 등에 칼럼을 쓰고 있으며 ‘이완의 카폐인’이라는 자동차 동영상 콘텐츠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다. 현재 독일에 살고 있으며, 독일의 자동차 문화와 산업계 소식을 공유하는 일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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