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자 선생님, 시상식에서까지 울리시면 어떡합니까

2019-05-02 11:03:56



‘백상예술대상’ 만장일치 대상의 품격 보여준 김혜자의 수상소감

[엔터미디어=정덕현] 김혜자의 말대로 지금은 “위로가 필요한 시대”가 맞는 것 같다.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받은 김혜자가 수상 소감으로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 따뜻해진 가슴들은 얼었던 무언가를 녹여내며 건조했던 눈을 촉촉하게 적셨다. 시상식을 보며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될 줄이야...

수상 소감은 소탈했지만 그 소탈함에 더해진 진정성은 묵직했다. 그것은 지금껏 오래도록 해온 연기자로서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기에 느껴지는 묵직함이었다. <눈이 부시게>라는 인생작을 만들어준 김석윤 감독과 이남규, 김수진 작가에 대한 고마움을 전한 김혜자는 혹여나 상을 받을지 몰라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다 드라마 엔딩에 나왔던 내레이션 대사를 다시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다시 외우고 외워도 자꾸 잊어먹는다며 대본을 찢어왔다는 김혜자는 대사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건 드라마 속 대사였지만 어쩌면 연기자 김혜자가 진심으로 지금의 대중들에게 전하고픈 이야기이기도 했을 게다. 그래서 수상 소감에서 다시 듣는 <눈이 부시게> 엔딩의 대사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인생의 선배인 김혜자가 대중들에게 직접 전하는 위로.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 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은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드라마 속 대사가 그대로 김혜자라는 인생선배의 위로로 들리는 그 순간, 후배 연기자들의 눈은 촉촉이 젖어들었다. 그것은 어쩌면 그들 또한 가야할 길을 얘기하는 것이고, 그것이 결코 쉽지 않으며 또 후회와 불안으로 채워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누구나 ‘눈이 부시게’ 오늘을 살아갈 자격이 충분하다고 김혜자는 전하고 있었다. 그건 또한 후배 연기자들만이 아니라, 이 시상식을 바라보는 관객과 시청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의 위로로 다가왔다.

김혜자의 수상소감은 그가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걸 그대로 입증했다. 진정한 연기의 끝은 그가 배역인지 배역이 그인지 알 수 없는 그 경지가 아니던가. 그러고 보면 김석윤 감독이 <눈이 부시게>에 굳이 주인공 이름을 김혜자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그건 배역이긴 하지만 김혜자라는 연기자 그 자체를 담고 있는 배역이었으니. 수상 소감 간간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며 찢어온 대본을 보는 모습까지 <눈이 부시게>의 김혜자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거의 공로상급의 대상 수상이었지만, 결코 이 대상은 공로상이 아니라 그의 연기가 지금도 많은 이들을 울리고 웃기는 ‘현재진행형’ 연기자라는 데서 결정된 대상이었다. 이것이 필자도 참여했던 심사에서 심사위원들이 일찌감치 김혜자의 대상을 ‘이견 없는 만장일치’로 정한 이유였다. 김혜자는 충분히 대상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여전히 오늘을 살아가며 ‘눈이 부신’ 연기로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고 있으니.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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