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쇼가 재미없는 건가? 재미없는 게임쇼였던 걸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코미디가 위기라고 한다. 맞다. 간판 KBS <개그콘서트>는 점점 더 난바다로 표류하는 중이며 연예대상급인 박나래를 비롯해 양세형, 양세찬, 문세윤, 황제성 등 현재 가장 잘나가는 코미디언들이 모인 게임버라이어티쇼 tvN <뭐든지 프렌즈>는 지난 4일 저조한 성적과 낮은 관심 속에 8회 만에 종영했다. 이와 함께 tvN은 지난 3월에 편성한 또 다른 복고 예능 <호구들의 감빵생활>의 문도 같이 닫았다.

유재석은 새 예능 tvN <일로 만난 사이>에서 어린 시절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코미디언 후배들이 설 곳이 없는 현실을 염려했다. 이를 듣던 이상순은 예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코미디, 게임쇼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뉴트로’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빌려 <미추리>, <도레미마켓>, <뭐든지 프렌즈>, <호구들의 감빵생활>, <찰떡콤비> 등의 게임쇼와 집단 버라이어티가 결합된 복고 코드 예능이 적잖게 편성된 바 있다. 단지 잘 안 됐을 뿐이다. 수요도 분명히 있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유튜브 등에서 올드스쿨 콘텐츠 서비스사업은 호황을 이루며 ‘탑골가요’ 라는 유행어도 만들어낼 정도다.

최근 복고 예능들은 복고라기보다 가장 익숙한 지름길을 택하는 관성에 가깝게 보인다. 예능 다양성의 보루이자 블루오션일 줄 알았으나 원초적 웃음 추구는 완성도의 문제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십 수년째 활약하거나 인기 많은 예능 선수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오고, 예전부터 해온 몸개그를 위한 게임을 나열하면서 출연자의 재능에 모든 걸 맡기는 모양새다. 그러면서 오늘날 트렌드와의 접목이나 그 시절 색깔을 만드는데 핵심이었던 웃음을 조율하고 출연진의 캐릭터를 잡아주는 메인 MC 발탁, 색다른 캐스팅 같은 어려운 과정들은 모두 덜어냈다.



<뭐든지 프렌즈>도 이 비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대환장 사비 탕진 버라이어티’라는 부제를 걸고 매회 다른 주제로 진행된 앙케이트 순위 TOP5를 유추하거나 준비된 음식 중 실제로 판매되는 음식을 맞추는 게임들이 진행된다. 틀리면 출연진이 해당 물건을 사비로 사는 게 벌칙이다. 리얼리티를 강화해 벌칙의 강도를 높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설정보다도 많은 관심을 끈 건 예능 시장으로 진출해 활발히 활동하는 <코빅> 베테랑들을 모아서 만든 리얼버라이어티에 대한 기대다.

하지만 기획의도나 주제에 맞춰서 출연자를 캐스팅했다기보다 일단 인지도 있는 코미디언들을 모으고 설정은 그 뒤에 만들어 붙이다보니 10년 지기 친구 겸 동료 코미디언들이 만드는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별다른 매력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프로그램만의 새로움과 신선한 캐릭터를 잃는 계기가 됐다. 익숙하게 봐온 박나래와 양세형을 또 한 번 만날 뿐이다.

‘외국 쇼핑몰에서 인기 있는 한류 아이템’ ‘3040 세대가 좋아하는 센스 있는 신혼집들이 선물 TOP5’, ‘여름철 내비게이션 어플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피서지 TOP3’ 등의 문제도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끌 정보도 아니거니와 사비를 쓴다는 장치가 긴장을 만들어 내지도 못한다. 그러자 6회부터는 ‘사비 탕진’ 콘셉트를 신입사원 콘셉트로 바꿔서 노래 제목 맞히기, 다른 곡이 입혀진 뮤직비디오의 원곡과 가수를 맞추기, 몸으로 말해요, 복불복의 게임 등 익숙한 게임을 대거 등장시키고 출연자들에게 웃겨주길 바란다. 콘셉트를 버리고 게임 종목을 바꿀 수 있다는 점 자체가 출연자의 ‘폼’만 믿고 설계를 적당히 했다는 방증이다.



함께 종영을 맞이한 <호구들의 감빵생활>의 사정도 엇비슷하다. 서사의 축으로 삼은 마피아게임도 신선한 건지 모르겠지만 실제 방송은 <동거동락>, <연애편지>, <엑스맨>, <패밀리가 떴다> 등을 연상시키는 게임의 연속이다. 캐스팅도 이수근, 정형돈, 김종민 등의 예능 선수와 <런닝맨>에서 반전매력을 보인 배우들, 그리고 아이돌의 조합이란 흔한 공식으로 꾸렸다. 긴 방송시간 동안 이야기 진행은 매우 단순하고 짧은데 어디서 본듯한 그림은 수없이 반복된다. 다양한 추억의 게임과 토크를 즐긴다는 <찰떡콤비>도 프로그램 제목은 생소하지만 내용은 새롭지 않다. 이수근, 은지원, 정형돈, 데프콘이란 익숙한 조합이 중심을 잡고 침묵의 007, 눈치게임, 끝말잇기를 연신 하는데 얼굴낙서나 방귀가 웃음 포인트다.

<뭐든지 프렌즈> 제작발표회에서 제작진은 “방송가에는 ‘개그맨들만 모이면 잘 안 된다’는 속설이 있다. 그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이미 잘 된 사례도 있다. <맛있는 녀석들>은 마찬가지로 개그맨들이 뭉쳤지만 출연자의 공통된 특성과 기획 의도가 맞아떨어져 ‘먹방’을 선보이며 확실한 캐릭터 구축에 성공해 장수하고 있다. 김준현, 문세윤 등은 이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캐릭터를 잡으면서 활동 반경을 넓혔다. 과거 <개콘> 멤버들로 만든 관찰예능 <인간의 조건>도 <개콘> 무대 밖의 코미디언들의 인간적인 면모와 돈독한 동료애를 엿볼 수 있어서 흥미를 끌고, 관찰예능의 시대의 문을 열었다.

그러나 최근 ‘뉴트로’를 배경으로 한 복고 예능은 새로움을 창출하기보다 가져오는 데 급급하다. 안 그래도 익숙하고 의미 없는 게임을 지난 수년간 봤던 캐릭터플레이로 풀어내면서 식상하게 만든다. 오늘날 예능에서 재미란 사람을 알아가는 것 같은 정서적 가치와 정보라 할 수 있는 자기계발적 콘텐츠다. 게임 버라이어티쇼라고 여기서 크게 벗어날 순 없다. 과거의 답습이 통하지 않는 이유다. 이런 흐름을 바탕으로 게임쇼를 시대에 맞게 변형시키거나 새로운 캐릭터를 창출해야 하는데 복고예능의 가장 큰 특징은 캐릭터도 설정도 여기저기서 빌려와 쉽게 가려고 한다. 그 결과, 속설을 깨겠다는 야심과 달리 속설의 이론화를 돕는 참조목록이 한 줄 더 길어졌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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