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펀딩’, 시청률을 넘어서 직접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가치’의 힘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과연 이게 예능이 될까. <무한도전> 종영 이후 잠시간의 휴식을 가진 김태호 PD는, 쉽사리 예능이 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아이템들을 들고 돌아왔다. 카메라의 주도권을 제작진에게서 출연자들에게 넘겨준 뒤 그 광경을 지켜보는 <놀면 뭐하니?>나, 크라우드 펀딩의 스토리텔링을 예능의 문법 안으로 끌고 온 <같이 펀딩> 모두 아이템마다 반응이 천차만별 다를 수밖에 없는 포맷인 것이다. <무한도전>이라는 압도적인 성공작 이후에 가장 실험적인 형태의 예능 두 개를 선보이는 과감함을 보인 김태호나, 그걸 또 주말 프라임타임 예능으로 전진 배치시킨 MBC나, 만만찮은 수를 뒀다는 평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놀면 뭐하니?>가 ‘유플래쉬’를 기점으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 반면, <같이 펀딩>은 시작부터 광복절 주간과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시점에 ‘태극기함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폭발적인 관심을 모으면서 출발했다. 수치로 잡히는 시청률과 별개로 수많은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증명하며 시작한 것이다. 프로그램이 4회까지 방영된 지금, 태극기함에 몰렸던 초반의 관심이 어떻게 프로그램 자체의 힘으로 자리를 잡았는지 살펴보았다.

정석희 평론가는 재미와 가치를 모두 고민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늘고 있는 최근 방송 트렌드의 연장선상에서 <같이 펀딩>이 지니는 가능성을 높이 샀고, 김선영 평론가는 유인나의 ‘오디오북 프로젝트’가 앞서 선보인 다른 아이템들까지 아우르며 프로그램 전체의 지향을 설명하는데 성공했다고 평했다. 이승한 평론가는 상대적으로 낮은 시청률에도 시청자들이 직접 참여하고 행동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을 증명했기에 프로그램의 생명력이 오래 갈 것으로 내다보았다.



◆ 많은 것을 바꿔 놓을 주말 예능 하나의 작은 날갯짓

헤매던 MBC 주말 예능이 비로소 길을 찾았다. 2014년 <아빠 어디가?> 출시 당시와 흡사한 느낌이다. 길고 긴 터널을 지나 다시 빛을 만난 기분이랄까? MBC 임직원도 아니거늘 왜 이토록 안심이 되는지 원. 예능 프로그램이 태극기의 가치와 의미를 논하는 장면도 반색을 하고 남을 일이었는데 이번엔 시다. 단순히 시 읊기에 그친 것이 아니라 마치 영화 같은 교차 편집으로 자연스레 시에 빠져들게 했다.

숨죽여 유인나와 강하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있자니 오래 전 자주 읊조리던 시가 떠올라 책장을 뒤적였다. 글씨가 작아 읽기 버거워진 책들을 처분하는 과정에 쓸려 나간 모양이다. 그래서 당장 E-BOOK으로 구입했다. 이젠 아무도 찾지 않는 태극기함, 그리고 출판 자체를 꺼린다는 시집. 주말 예능 하나의 작은 날갯짓이 많은 걸 바꿔 놓을 것 같다. 더구나 수익금은 좋은 일에 쓰일 예정이라니 금상첨화가 아닌가.



소란스럽고 무의미한 말장난이며 유해한 설정이 난무해온 예능이 드디어 흐름을 바꾸려나 보다. JTBC <효리네 민박>부터 <캠핑클럽>, tvN <유퀴즈 온더 블록>과 <일로 만난 사이>. 먹방과 여행 없이, 막말과 호통, 허세와 과시 대신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예능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 않나. <같이 펀딩>은 스튜디오 분량도 마음에 든다. 유준상의 진지함과 장도연의 재치, 그리고 유희열의 균형 감각이 어우러진 최상의 조합이다. <같이 펀딩>이 ‘유플래쉬’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시동이 걸린 <놀면 뭐하니?>와 더불어 MBC 예능의 쌍두마차가 되어 제대로 달려주기를.

정석희 방송 칼럼니스트 soyow59@daum.net



◆ 가치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순간

<같이 펀딩> 제작발표회 당시, 이 프로그램의 MC 유희열은 ‘<놀면 뭐하니>가 유재석이라는 대배우를 주연으로 한 독립영화 같다면, <같이 펀딩>은 블록버스터’라 표현했다. 유준상의 ‘태극기함 프로젝트’로 시작한 <같이 펀딩> 첫 회는 과연 ‘블록버스터’급이었다. 진관사에서 설민석 강사와 함께 펼쳐진 역사 강의와 ‘애국’이라는 주제는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희생에 빚진 이 땅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절로 눈시울이 젖어 들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감동적인 순간이었음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의문이 일기도 했다. “우리가 가진 작은 아이디어들이 큰 가치가 되는 현실을 담으려 했다”던 김태호 PD의 기획의도를 떠올려보면 블록버스터라는 비유는 단순한 규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프로그램이 내세우는 ‘가치’가 많은 이들에게 공유되고 널리 퍼지는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일 터이다. 그런데 첫 회부터 굳이 ‘공유’가 필요 없는, 너무나 ‘크고 보편적인 가치’를 내세운 건 아닐까. 실제로 태극기함 제작을 둘러싼 좌충우돌이 구체적으로 그려진 두 번째 편부터는 이야기에 더 입체적인 생기가 돌았다.



반대로, 두 번째 주자인 노홍철의 ‘소모임 프로젝트’는 너무 소소한 인상이었다. 이 역시 ‘규모’의 의미가 아니라, 아직은 노홍철의 ‘사모임’ 같은 느낌 때문에 그 가치를 공유할 만큼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의미다. ‘미드나잇 탈탈전’이라는 이름만 내세운 ‘샘플전’이라는 한계가 있었기에, 주제가 정해진 다음 편부터가 이 프로젝트의 가치에 공감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 하면 세 번째 주자 유인나의 오디오북 프로젝트는 <같이 펀딩>의 가능성에 좀 더 희망을 가지게 만든 기획이었다. 책이라는 친숙한 소재를 ‘함께 들을 수 있는’ 오디오북의 장점과 결합한, 너무 사적이지도 공적이지도 않은 주제부터가 딱 적절했다. 여기에 대형서점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가치들을 담고 있는 독립서점 투어도 <같이 펀딩>의 기획의도에 가장 충실한 출발을 보여줬다. 더 흥미로웠던 점은 이전 프로젝트들의 의미까지도 새삼 되새겨보는 기회를 주었다는 점이다. 태극기함도, 소모임도 요즘 시대에 우리가 서서히 잃어가는 가치들을 담은 이야기라는 점을. 가치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순간, 이 프로그램의 몰입도도 더 높아졌다.

김선영 칼럼니스트 herland@naver.com



◆ 시청률의 한계를 넘어, 보는 이를 움직이게 만드는 힘을 증명하다

사실은 처음 유준상이 ‘태극기함’이란 아이템을 들고 나왔을 때 조금 걱정이 됐다. 초반 아이템의 폭발적인 반응이 역설적으로 자칫 프로그램 자체의 잠재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게 막는 역할을 하진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3.1운동·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에, 누구나 일상적으로 아낄 수 있는 태극기함을 새로 만들자는 제안만큼 보편적인 호응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아이템도 또 없다. 그러니 아이템마다 그 의의와 톤이 휙휙 바뀌는 크라우드 펀딩의 특징을 시청자들에게 얼마나 설득해냈는가를 가늠하는 첫 타자로 삼기엔 다소 위험할 수도 있는 아이템이 아닌가.

그래도 노홍철의 ‘소모임 특별전’을 거쳐 유인나의 ‘오디오북 프로젝트’까지 공개된 지금, 프로그램의 지향과 특징을 설명하는데 어느 정도는 성공한 듯 보인다. 태극기함이라는 거대한 아이템 바로 뒤에 소모임 특별전이라는 가장 막연하고 소소한 아이템을 붙여서 보여주고, 그 뒤에 다시 오디오북 프로젝트라는 중간 규모의 아이템을 발제한 덕분이다. 아이템마다 각기 다른 목표와 접근방식을 자연스레 설명하면서, 그것을 예능이라는 장르 문법 안에 담아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비록 태극기함 프로젝트가 한참 진행되던 초반에 비해 시청률이 소폭 빠지긴 했지만, 프로그램 전체의 특징을 이해시키기 위해 한번은 감수했어야 했을 일을 비교적 무난히 넘긴 셈이다.



<같이 펀딩>이 한 가지 더 탁월한 것은, 수치로 잡히는 시청률 말고도 프로그램의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는 수단을 강구했다는 점이다. 프로그램이 제시한 아이템에 대한 관심을 시청자들이 직접 펀딩 사이트에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은, 당장 낮은 시청률에도 <같이 펀딩>만이 지니는 가치와 경쟁력을 증명하는데 도움이 된다. 펀딩 사이트에서 태극기함이 압도적인 기록을 세운 것뿐 아니라, 생면부지의 타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는 노홍철의 ‘소모임 특별전’에 1,000명의 참가자 신청이 몰리고, 유인나의 ‘오디오북 프로젝트’에서 소개된 책들이 방송 직후 온라인 서점에서 실시간 클릭 상위권을 휩쓴 것은 프로그램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가 된다.

단순히 보고 즐기는 것에 지나는 게 아니라, 보는 이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힘을 지닌 프로그램이란 물증이니까. 아직 동시간대 경쟁작들에 비해 한참 낮은 시청률이지만, 프로그램의 생명력을 낙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이유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영상·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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