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본드’, 고스란히 드러난 스타 캐스팅의 명과 암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자이언트>, <샐러리맨 초한지>, <돈의 화신> 등을 작업한 유인식 PD와 장영철·정경순 작가의 6년만의 재회. 4년의 기획과 1년의 사전제작, 제작비 250억원의 미스터리 첩보 멜로. SBS 드라마 <배가본드>를 둘러싼 화려한 키워드들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건, 이 거대 프로젝트의 성공을 어깨에 짊어진 두 주연배우의 이름이다. 이승기와 배수지. 안방극장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청춘스타의 자리를 지키며 준수한 흥행성적을 기록해 온 두 배우의 이름은 방영 시작 전부터 <배가본드>에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킨 가장 큰 요인이었다. 그리고 지난 20일 마침내 첫 화를 방영한 <배가본드>에서 두 사람이 발휘한 스타파워는, 양날의 검이었다.

정석희 평론가는 <배가본드>의 기본적인 설정은 마음에 든다면서도 ‘청춘 멜로물에 나올 법한 톤’의 연기를 우려했고, 이승한 평론가는 정형화된 장르 연기나 감정의 콘트라스트가 센 장면은 연기를 준수하게 해내는데 정작 평범한 일상연기에서 집중력을 잃는 두 주연의 연기를 지적하며 차라리 ‘빨리 본격 미스터리 첩보물로 진입해 전력 질주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평했다. 반면 김선영 평론가는 이승기와 배수지가 다양한 장면을 연기해 보이는 것을 배우가 지닌 만능 엔터테이너 스타로서의 아우라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하는 제작진의 전략으로 평가하며 성공적이었다고 평했다. 다음은 [TV삼분지계] 세 평론가가 판단한 스타캐스팅의 명과 암에 대해 탐구한 감상평이다.



◆ 괜찮은 설정, 불안한 연기

SBS <배가본드>. 서울 발 모로코 행 비행기가 추락했다. 스물다섯 명의 어린이 태권도 시범단을 포함해 211명의 무고한 이들이 목숨을 잃었단다. 애도의 뜻이 담긴 성명 발표를 앞두고 화장이 덜 마무리됐다며 세상 느긋한 대통령 정국표(백윤식).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지금 몸을 가누기조차 힘이 듭니다.” 기시감이 드는 쇼 한 판, 표리부동한 모습에 애써 잊었던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그 놈의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자괴감’, 누가 대통령 담화문 금지어로 정했으면 좋겠다.

숨은 킹메이커 국무총리 홍순조(문성근)는 대통령에게 추락한 비행기가 ‘다이나믹 시스템’의 최신 기종이다, 기체 결함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한다. 예상대로 차세대 전투기 사업권을 따내기 위한 테러였던 것. 10조원이 오가는 사업권을 위해 수백 명이 탑승한 민간 여객기를 추락시키다니, 너무 무모하지 않나? 의아하긴 해도 드라마는 그냥 드라마로 보는 것으로 이해하기로. 어쨌거나 정부며 언론, 어느 하나 책임을 다하지 않는 마당에 슈퍼맨 같은 주인공이 끈질기게 진실을 파헤친다는 설정은 마음에 든다. 드라마에서라도 돈과 권력을 향한 저열한 야욕들이 낱낱이 밝혀지기를.

첫 회만 봤을 뿐이지만 <배가본드>의 성패가 차달건(이승기)과 고해리(베수지), 두 주인공에게 달렸음은 불을 보듯 빤한 일이다. 그러나 2화 예고의 “너 땜에 나까지 다 죽게 생겼다고 이 자식아.” 청춘 멜로물에 나올 법한 톤이 아닌가. 부디 기우였으면.

정석희 TV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 안방 블록버스터가 스타 캐스팅을 활용하는 법

북아프리카 키리아 왕국을 배경으로 한 짧은 프롤로그 이후, <배가본드>는 주인공 차달건(이승기)의 오디션 장면으로 본격적인 이야기의 문을 연다. 오디션 영상으로 보이는 화면 안에서 차달건은 액션과 코미디는 물론이고 어린 조카와의 애틋한 가족애까지 보여준다. 이 ‘TV 밖의 TV’ 프레임은 차달건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이승기의 스타로서의 아우라를 한껏 두드러지게 하는 전략이다. 극 중의 차달건은 초라한 단역 스턴트 배우지만, 시청자가 감상하는 것은 차달건 역할을 맡은 이승기가 액션, 코미디, 멜로 등의 극적 요소를 자유롭게 오가며 한껏 발산하는 스타로서의 매력이다.

<배가본드>는 고해리(배수지)의 등장 신에서도 같은 전략을 쓴다. 오픈카를 운전하면서 멋지게 나타난 국정원 블랙 요원 고해리는 다음 신에서는 주 모로코 한국대사관 계약직 인턴으로 위장한다. 실수 연발 인턴인 척하던 고해리는 회의가 끝나자마자 영사의 비리 증거를 찾기 위해 블랙 요원으로서의 모습을 드러낸다. 스타킹을 찢어 위기를 모면하는 첩보물의 고전 클리셰까지 굳이 끌어온 고해리 캐릭터 소개 신을 보는 동안, 시청자들은 ‘허당 인턴을 연기하는 블랙 요원 고해리를 연기’하는 스타 배수지의 다채로운 매력을 감상하게 된다.



두 주인공의 캐릭터 소개 신이 끝난 뒤에는 드라마의 핵심 플롯으로 곧장 들어간다. 국방부 예산 11조 원이 걸린 차세대 전투기 사업을 둘러싼 음모와 테러가 전개되고, 두 주인공은 그 극적인 무대 속으로 뛰어 들어간다. 그리하여 서울에서 택시를 몰던 차달건이 하루 만에 북아프리카 모로코로 날아가 고해리를 만나고 비행기 테러범을 추격하게 되기까지, <배가본드>의 질주에는 주저함이 없다. 불필요하게 복잡한 미스터리를 부여하거나 캐릭터의 사연, 입체적 악역 등을 부각하는 대신, 철저하게 두 주인공이 드넓게 활보할 수 있는 ‘판’을 까는 데 초점을 맞춘 이야기다. 스타 캐스팅을 내세운 수많은 작품이 단순히 스타의 힘에 의존하는 데 머무른다면, <배가본드>는 ‘만능 엔터테이너’ 이승기와 배수지의 매력을 한껏 끌어낼 수 있는 장치와 무대 마련에 집중한다. 적어도 첫 회에서 그 전략은 꽤 성공적으로 보인다.

김선영 칼럼니스트 herland@naver.com



◆ 장르 간 결합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의 정체

첫 회를 공개한 <배가본드>는 좀 독특한 드라마다. “미스터리와 첩보, 멜로와 휴머니즘”을 모두 잡는 복합 장르 드라마를 표방한 작품인데, 잘 만들기 좀처럼 어려운 ‘미스터리와 첩보’ 파트에는 힘이 제대로 실려 있는 반면 평범한 일상을 다룬 장면들은 이상하게 잘 붙지 않는다. 탕헤르를 배경으로 건물 옥상을 뛰어다니며 <제이슨 본> 시리즈를 연상케 하는 필사의 액션을 선보이는 차달건(이승기)은 근사한 볼거리이지만, 생계를 위해 스턴트맨 생활을 포기했다며 친구에게 토로하는 장면이나 조카 훈(문우진)과 다투는 장면의 차달건은 액션씬에서만큼의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 고혜리(배수지) 또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은데, 국정원 블랙 요원으로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모습은 그럴싸하면서도 위장 신분인 ‘덤벙대는 주 모로코 한국대사관 인턴 직원’을 연기하는 순간은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어쩌면 필모그래피 내내 선 굵은 서사 전개에 강점을 보여온 장영철·정경순 콤비(<대조영>, <자이언트>, <몬스터>, <기황후> 등)와, 마찬가지로 장르적인 연출에 강세를 보여온 유인식 PD(<자이언트>, <미세스캅>, <낭만닥터 김사부> 등)가 6년 만에 재회한 작품이라는 점이 그와 같은 톤의 차이에 일조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가와 연출의 문제보다는 배우들의 연기에서 오는 문제가 더 커보인다. 장르적으로 정형화되어 있는 첩보 액션의 장면들이나 감정의 콘트라스트가 강한 장면들은 근사하게 연기하면서, 정해진 답이 없고 감정선 또한 고저가 크지 않은 생활연기를 해야 하는 순간에는 제 힘을 못 쓰고 있는 것이다. 복합 장르물의 매력은 각기 다른 장르 사이를 매끈하게 넘나드는 것에서 나오는데, 장르가 바뀔 때마다 두 주연의 연기 집중력이 달라지는 탓에 높은 문턱을 바퀴로 넘는 것처럼 덜커덩거린다. 시작과 함께 거둔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려면, 빨리 본격 미스터리 첩보물로 진입해 전력 질주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영상·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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