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일전자 미쓰리’, 발랄한 코미디인줄 알았는데 짠내 가득

[엔터미디어=정덕현] tvN 수목드라마 <청일전자 미쓰리>는 예고편만 보면 발랄한 코미디처럼 보인다. 일단 그 이야기 설정 자체가 그렇다. 청소기를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청일전자에서 졸지에 말단 경리직원이 사장이 되어 회사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이 아닌가. 그 말단 경리직원 이선심 역할을 맡은 이혜리가 특유의 멍하기도 하고 맹하기도 한 표정으로 그 황당한 상황 앞에 서 있는 장면 자체가 코미디다.

그런데 들여다보면 볼수록 웃음보다는 짠내가 가득하고, 나아가 대기업의 갑질 횡포에 좌지우지되는 중소기업들의 부당한 하도급 현실에 화가 난다. 게다가 이러한 대기업의 갑질 횡포는 중소기업의 재하청을 받는 더 영세한 회사들로 줄줄이 도미노 쓰나미를 겪게 만든다. 대기업은 더 이상 하청을 주지 않겠다고 한 마디를 하는 것이고 또 하청 줄 회사들은 널려 있지만 그 한 마디에 중소기업들은 회사의 명운이 왔다 갔다 한다.



그러니 그 중소기업의 재하청을 받는 더 작은 회사들의 고충은 오죽할까. 청일전자 오만복(김응수) 사장은 갑질하는 TM전자 대기업의 횡포를 참다못해 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자적인 청소기 생산을 해 중국에 납품하려 한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고 있는 TM전자는 청일전자의 목줄을 잡아챈다. 중국 측에 손을 써 선적된 청소기들을 청일전자로 되돌려 보내게 한 것. 청일전자는 하루아침에 부도 위기에 처하고 사장은 잠적해버린다.

함께 일하던 경리부 언니 구지나(엄현경)에게 속아 2억 가까운 돈을 융통해 사주를 사버린 맹하기 그지없는 이선심은 중역들이 모두 달아나버린 청일전자에서 등 떠밀려 바지사장이 된다. 물론 늘 커피 심부름에 잡일만 하던 삶에서 벗어나 좀 더 주체적으로 살고픈 욕망이 선뜻 그로 하여금 사장직을 맡게 하지만 어디 현실이 생각과 같을까.



당장 쌓여진 청소기 재고들을 팔아서 돈을 융통해보려 하지만 망해가는데다 이름도 모를 중소기업의 제품을 사줄 이들이 만무다. 그래서 염치도 없이 그간 청일전자 역시 갑질을 해왔던 하청업체들을 찾아가 사정을 해보지만 욕만 먹는다. 급기야 청일전자 유진욱 부장(김상경)의 압력으로 무리해 기기까지 새로 들여놓았던 하청업체 사장은 비관해 죽음을 맞는다.

이 이야기는 그래서 TM전자와 청일전자라는 양자의 선악 혹은 갑을대결만을 다루지 않는다. 청일전자 역시 더 영세한 회사들의 갑이었고 TM전자처럼 갑질을 해왔다는 상황은 이 이야기가 하청에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우리네 산업의 갑을관계 시스템 그 자체를 겨냥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흥미로운 건 어쩌다 사장이 된 이선심과 어쩔 수 없다고는 해도 그 스스로도 갑질을 해온 유진욱 부장이 서로 손을 잡고 청일전자를 살리기 위한 한 걸음씩을 내딛는다는 사실이다. 당장 돌아올 어음을 막지 않으면 부도가 나게 된 상황에서 그 어음을 연장시키기 위해 유진욱 부장은 이선심의 설득으로 하청업체 사장들 앞에 무릎을 꿇고 사과한다.



아마도 이건 <청일전자 미쓰리>라는 드라마가 꿈꾸려 하는 새로운 상생구조의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물론 저 거대한 대기업 TM전자는 요지부동 변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이런 상황을 이용하려 하지만, 가장 말단 직원으로 있었던 이선심이라는 순수한 인물은 유진욱 부장 같은 노련한 인물과 함께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 생존 시스템을 바꿔나가려 할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 드라마는 말단 경리직원을 사장이라는 자리에 앉혀 놓는 것으로 변화의 계기를 삼게 된 걸까. 그건 아마도 가장 밑바닥에서 일하는 그가 그 누구보다 을의 심정을 이해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청일전자 미쓰리>는 코미디보다는 짠내 가득한 현실을 끌고 오면서도, 이들이 보여줄 을의 반격을 기대하게 만든다. 갑들의 방식과는 또 다른 을의 방식으로.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