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필 무렵’, 캐릭터·세계관·장르에 대한 칭찬과 우려 사이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방송 2주 만에 시청률 10%. 두 자릿수 시청률이 귀해진 시대에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 기록한 성취는 결코 작지 않다. 혹자는 안방극장에서 단 한번도 실패해 본 적 없는 공효진의 힘을 이야기하고, 또 누군가는 <쌈, 마이웨이>에 이은 임상춘 작가 특유의 인간미 넘치는 세계관을 이야기한다. 상찬이 쏟아지는 와중에 생각해본다. 과연 2주 만에 이렇게 극찬으로만 일색해도 괜찮은 걸까? 그래서 [TV삼분지계]가 좀 다양한 자리에서 드라마를 뜯어보았다.

정석희 평론가는 <동백꽃 필 무렵>의 캐릭터들에 주목했다. 군더더기 없이 직진하는 주인공 동백 역의 공효진부터 ‘미워할 수 없는’ 주변인물들의 관계성까지, 작품 전체의 개연성에 힘을 실어주는 캐릭터들의 매력과 배우의 조화를 높게 평가했다. 이승한 평론가는 임상춘 작가의 전작 KBS <백희가 돌아왔다>(2016)과의 비교를 통해, 임상춘 작가가 반복해서 그리는 ‘폭력적인 세계를 이겨내는 개인의 선의’라는 테마를 짚어냈다. 나이브한 세계관이라는 평에서는 비판적인 거리가 느껴지지만, ‘아직까지는’이라는 조건부로 그 낙천주의가 유효하다는 평이다. 한편 김선영 평론가는 로맨스와 스릴러를 결합한 <동백꽃 필 무렵>의 장르적 선택이 여성혐오적 공포와 불안을 로맨스의 구원 서사로 봉합해 온 전례들을 따를까 우려했다. 캐릭터에서 장르까지, 극찬에서 우려까지. 다음은 [TV삼분지계]가 바라본 옹산마을의 풍경이다.



◆ 캐릭터와 배우 – 귀엽고 명료해서 궁금한 사람들

“초등학생이면 암만 어려도 나이가 대충?” 필구(김강훈) 친부 종열(김지석)이 더듬거리며 묻자 필구 엄마 동백(공효진)이 칼 같이 답한다. “어, 맞아. 네 아들. 적확히 네 아들.” 여느 드라마면 10회 이상 우려먹고도 남을, 아니 어쩌면 마지막 회에 이르러서야 겨우 밝혀질 일이 아닌가. 주인공 용식(강하늘)의 소신이 ‘신중보다는 전념’이라더니 이토록 군더더기 없이 단순명료할 데가 있나.

범인 ‘까불이’ 말고는 누구 하나 보기 싫은 인물이 없는 것도 장점이다. 특히 김선영, 김미화, 백현주 배우가 주도하는 옹산 게장 골목 터줏대감들. 우리의 사랑스런 주인공 동백이에게 시도 때도 없이 시비를 걸곤 하지만 도무지 미워할 수가 없다. 용식의 직진 고백을 모친 덕순(고두심)이 들을까 두려워 전전긍긍하는 장면에서는 어찌 그리 다들 귀엽던지. 벌써부터 정이 담뿍 들었다. 앞으로 등장할 골목 식구들도 기대가 된다.



공효진, 강하늘, 김지석. 환상의 조합이다. 멀리는 공유, 장혁, 이선균, 차승원, 가까이는 소지섭, 조인성, 조정석까지, 무수히 많은 이들에게 대표작을 선사한 공효진 배우. 그 못지않게 여러 작품에서 라이벌 역할로 주인공을 빛내준 김지석 배우. ‘용식’이라는 맞춤 캐릭터에 서포터 양대 산맥까지 더했으니 강하늘 배우는 이제 날아오를 일만 남았다. 동백과 덕순이 ‘베프’ 사이를 유지할 수 있을지, 종열과 필구가 어떤 부자지간이 될지 궁금하고, 감초 캐릭터 규태(오정세)와 향미(손담비), 그리고 규태의 아내이자 변호사인 자영(염혜란)의 앞날도 궁금하다. <동백꽃 필 무렵>, 이렇게 기대되고 이렇게 궁금한 것이 많은 KBS 드라마, 오랜만이다.

정석희 TV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 임상춘의 세계관 – 충청도판 <주홍글씨> 속 나이브한 낙관의 세계

<동백꽃 필 무렵>은 여러모로 임상춘 작가의 전작인 KBS <백희가 돌아왔다>(2016)를 닮았다. 인구는 적고 사이는 가까운 탓에 서로의 사생활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관심을 가지는 폐쇄적인 농어촌 공동체를 배경으로, 소위 ‘팔자 센’ 여성 주인공을 배치하고는 음습한 호기심과 소문이 어떤 식으로 폭력이 되는지를 탐구하는 스토리라인은 <동백꽃 필 무렵>이 <백희가 돌아왔다>의 문제의식을 물려받은 작품임을 증명한다.

두 작품 모두에서 임상춘은 마을 사람들 개개인을 대체로 순박하고 정 많은 사람들로 묘사하지만, 그들이 모여 집단이 되었을 때 보여주는 배타성과 폭력을 묘사할 때는 냉정해진다. 임상춘이 그린 ‘팔자 센’ 여성에게 공공연하게 모멸감을 주는 것으로 징벌을 꾀하는 공동체는, 말씨만 충청도일 뿐 그 본질은 내서니엘 호손의 <주홍글씨> 속 뉴잉글랜드에 가깝다.



흥미롭게도 낙천주의를 배격했던 호손과 달리 임상춘은 인간의 선의에 대해 끊임없이 낙관한다. <백희가 돌아왔다>에 고향에 돌아온 백희(강예원)를 감싸주고 지켜내려 했던 범룡(김성오)이 있었던 것처럼, <동백꽃 필 무렵>에는 동백(공효진)의 곁을 굳건하게 지키며 일편단심 직진만을 외치는 용식(강하늘)이 있다. 제 마음을 에둘러 돌려 말할 줄 모르는 이 한 마리 황소 같은 남자는, 한번도 칭찬이나 감사를 받아본 적 없이 고단하게 살던 동백에게 끊임없이 당신은 당신 생각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고 멋진 사람이라 말해준다. 임상춘의 세계는 사람이 만든 지옥에 가깝지만, 그 속에서 빠져나올 길을 알려주는 기적과 구원 또한 사람이 만든다.

고도로 구조화된 폭력과 차별을 개인의 선의와 헌신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투의 세계관은 다소 나이브하고, 그 순진함을 설득하기 위해 많은 부분이 나른한 동화적 색채로 채워진다는 점 또한 약점이라 하겠다. 물론 비관적인 전망으로만 가득한 시대에, 사람의 선의에 대해 이렇게 순진할 정도의 신뢰를 표하는 작가가 한 명 쯤은 있어도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임상춘의 나이브한 낙관의 세계가 선사하는 위안은 유효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아직까지는’이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 장르 – 로맨스와 스릴러의 불길한 공존

제목만 보고 로맨스 장르로 인지한 시청자들에게, <동백꽃 필 무렵>의 첫 장면은 꽤 섬뜩하게 다가온다. 크라임 씬 밖에 몰려든 사람들이 웅성대는 사이, 여성으로 보이는 시신이 들것에 실려 나온다. “옛날에도 여기서 죽였잖여”, “한동안 잠잠하더니 또 시작이네...” 사람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는 이 사건이 연쇄살인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화면은 곧 다른 시공간으로 전환되고, 주인공 동백(공효진)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옹산먹자골목 끝에 위치한 가게로 이사온 동백. 동백이 처음으로 얼굴을 드러내는 장면은 꽤 유머러스하게 연출되지만, 동백을 품평하듯 훑어보는 옹산 주민들의 시선은 꽤 살벌하다. <동백꽃 필 무렵>은 동백과 같은 ‘외지인 여성’에 대한 편견을, 연쇄살인이라는 더 잔혹한 폭력이 둘러싸고 있는 구조다.



명백하게 스릴러 장르로 시작된 드라마는 남주인공 용식(강하늘)이 서점에서 동백을 보고 첫눈에 반하는 순간부터 로맨스 플롯으로 진입한다. 그러나 용식의 ‘투포환급’ 구애 앞에서 동백도, 여성 시청자들도 마음을 열기란 쉽지 않다. 실제로 동백은 처음에 용식을 ‘변태’로 인식한다. 드라마는 동백에게 노골적으로 수작을 거는 노규태(오정세)나 동백을 괴롭히는 기자들 앞에서 동백의 편을 들어주는 용식의 모습을 통해, 그의 행동과 동백을 향한 명시적 폭력을 구분 짓는다.

이러한 구분 짓기는, 경찰인 용식이 연쇄살인범의 낙서를 발견하고 동백을 지켜주겠다고 말하면서 한층 강조된다. 그럼에도 종종 동백을 뒤에서 지켜보는 정체 모를 시선처럼 불편한 느낌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여성혐오적 세계에 대한 공포와 불안의 스릴러로 시작한 이야기가 로맨스의 구원 서사로 봉합되는 사례가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동백꽃 필 무렵>은 과연 이러한 의혹을 벗을 수 있을까. 아직은 신중하게 지켜볼 뿐이다.

김선영 칼럼니스트 herland@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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