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닝맨’, 돌아온 정철민 PD의 처방전이 제대로 통하려면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SBS 예능 <런닝맨>이 3주간 편성한 팬미팅 ‘런닝구’ 직후 방송된 ‘휴캉스 레이스’에서 그 흔한 게스트를 한 명도 부르지 않았다. 오로지 멤버들끼리 주고받으며 웃음을 만들고 게임을 진행했다. 게스트가 없지만 허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함께했던 ‘런닝구’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적으로, 또 캐릭터상으로도 시청자들과 출연자들은 물론, 멤버와 멤버 사이의 간격은 보다 촘촘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팬미팅의 여운을 곱씹는 것으로 시작해 지석진과 이광수 두 ‘샌드백’ 투톱의 활약을 중심으로 9년간 이어져온 지극히 <런닝맨>스러운 볼거리가 펼쳐졌다.

대잔치 이후 멤버들만으로 꾸려간 수수한 방송을 보면서 <런닝맨> 제작진의 의중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지난 5월 말 <런닝맨>에 제2의 전성기를 가져다준 정철민 PD가 복귀했다. 시즌2 개편설 이후, 원년멤버 개리가 자진하차하며 시청률이 반토막 나는 등 최악의 상황에서 전소민과 양세찬의 전격 투입과 멤버들이 서로 물고 물리는 캐릭터플레이에 방점을 둔 게임 기획으로 흐름을 완벽히 바꿔놓았던 인물이다. 그가 오자마자 기획한 프로젝트가 바로 콘서트 형식의 ‘런닝구’였다.



지난 몇 달간 <런닝맨>은 슬럼프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 에너지가 떨어져 있었다. 잦은 제작진 교체와 편성 변경, 관찰예능 시대와 동떨어진 게임예능의 한계 같은 큰 틀에서도 그렇고 세부적으로 살펴봐도 매주 달라지는 게스트를 제외하면 거의 변화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고정 캐릭터들이 맺는 관계의 형태나 웃음 포인트가 늘 비슷하게 반복됐다. 더욱 심각한 것은 활약도에 따른 멤버들 간의 비중 차이가 점차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바로 이때 꺼내든 카드가 콘서트 형식의 팬미팅이었다. 10주년을 1년 앞두고 이런 대형 이벤트를 펼친다는 게 이례적이긴 했으나 이해가 된다. <무한도전>이 증명했듯,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예능에서 멤버들이 마련하는 콘서트 무대는 시청자들이 다시금 캐릭터와 프로그램에 애정을 느끼도록 만드는 가장 직접적인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축제나 콘서트는 무에서 유가 만들어지는 성장과정을 응축해서 보여주기 좋은 아이템이다. 연습에서 흘리는 땀과 성실함은 진정성으로 맺어지고, 그렇게 기대와 궁금증 속에서 만들어진 무대 위의 출연자와 무대 뒤의 게스트, 뜨거운 환호성을 내지르는 객석(시청자)은 ‘해냈다’는 공감대를 통해 하나가 된다. 이렇듯 성장스토리를 폭발시키면서 시청자들은 캐릭터와, 프로그램과 더욱 친밀한 정서적 유대가 형성되고, 다시금 가까워질 기회를 갖는다. <런닝맨>으로 다시 돌아온 정철민 PD에게 ‘런닝구’ 같은 제작진과 출연진과 시청자가 함께하는 대형 이벤트가 필요했던 이유다.

실제로 ‘런닝구’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정 PD는 “매주 한두 번 이상 모여서 촬영하는데, ‘우리가 다함께 모여서 뭔가를 만들어 본 적이 있나’라는 생각을 했다”면서, “멤버들이 더 많이 친해졌으면, 더 진솔한 사이가 됐으면 하는 생각에 기획했다”고 말했다. 또한 과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힘도 결국 멤버들 덕분이었다고 밝히면서 “인간 유재석, 송지효, 김종국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고 했다. 이는 10년 전 리얼 버라이어티란 것이 생기고 방송가의 대세로 자리 잡을 당시 <무한도전> 김태호 PD가 주로 했던 이야기와 겹친다. 즉 리얼버라이어티의 핵심이 다른 무엇보다도 진정성 있는 캐릭터에 있음을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런닝맨>이 관찰예능의 시대에서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리얼 버라이어티의 정수인 캐릭터쇼가 꾸준히 높은 출력을 내줘야 한다. 이와 관련해 정 PD도 “한계도 있겠지만 멤버만 유지된다면 여러 모습으로 탈바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직접 언급한 바가 있다. 살아 숨 쉬는 듯한 캐릭터플레이는 관찰예능 시청자들에게도 낯설지 않고, 오랜 시청자를 굳건한 팬덤으로 잡아둘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방송이 아니라 실제로 출연자들이 즐기고 친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처럼 모든 공격과 벌칙이 이광수에게로 몰리고, 몇몇 멤버들이 화면에서 자취를 감추는 도식적인 상황은 해소해야 한다. 그나마 최근 이광수의 부담을 지석진이 적극적으로 덜어주곤 있지만 여전히 전체적으로는 더 끌어올려야 할 필요가 있다.



요즘 예능의 화두이자 무기는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런닝맨>의 궁극적인 목표는 ‘프로그램을 보지 않았던 이들의 관심까지 사로잡는 것’이라고 한다.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캐릭터쇼 살리기 진단은 정확했다. 물론, 오래된 친구로 남을 것인가 너무 오래 본 익숙한 볼거리가 될 것인가의 갈림길만 남았지만 캐릭터쇼의 활성화에 집중한 <런닝맨>이 다시금 힘차게 내달릴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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