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여자에서 여장남자로, ‘녹두전’의 파격 역할 바꾸기

[엔터미디어=정덕현] 한때 드라마에서 남장여자는 하나의 인기 코드로서 등장한 바 있다. MBC <커피 프린스 1호점>이 그렇고, SBS <바람의 화원>이 그랬으며, KBS <성균관 스캔들> 그리고 KBS <구르미 그린 달빛>이 그랬다. 남장여자 캐릭터가 등장하는 드라마들이 모두 멜로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이 성 역할 바꾸기가 여러 가지 상징들을 담게 만들었다. 동성애 코드도 들어가게 되었고, 남성과 여성 간의 성 역할 고정관념을 깨는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새로 시작한 KBS <조선로코-녹두전(이하 녹두전)>은 남장여자가 아닌 여장남자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것은 성 역할 바꾸기의 관전 포인트를 바꿔 놓기 때문이다. 즉 남장여자는 (주로 사극에서는) 여성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들을 뛰어넘기 위해 여성이 남자행세를 하는 것이지만, 여장남자는 그런 방향성과는 상관없기 때문이다. 대신 여장남자는 여자들의 세계에 들어가 그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억압과 핍박을 경험하고 공유한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녹두전>에서 전녹두(장동윤)가 여장남자가 되는 이유는 자신의 가족을 습격한 괴한들의 뒤를 추격하게 되면서다. 전녹두는 그 괴한이 복면을 한 여성들이었다는 사실과 그들이 과부촌에서 살아가는 이들이라는 것 또한 알게 된다. 그래서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여장을 한 채 과부촌에 잠입해 들어간다는 설정이다.

주목되는 건 이 과부촌과 거기 붙어 있는 기방이라는 공간이 가진 당대 여성들의 삶이다. 과부가 되어 따라죽으라는 가문의 강권을 물리치고 그 곳에 모여 서로 의지해 살다보니 하나의 촌락을 이뤘다는 과부촌이 그렇고 양반들에게 술과 웃음을 파는 기방이 그렇다. 이들은 당대 여성들이 가진 차별적 세상에서 밀려나 있지만 그 곳에서 함께 모여 그 세상과 맞서 살아가는 중이다.

여기서 여장남자로 과부촌에 들어와 지내게 된 전녹두와 기방에 살고 있는 동동주(김소현)가 한 방에서 동거하게 되는, 어찌 보면 남장여자 코드의 ‘조선로코’에 빠지지 않는 상황이 재현된다. <성균관 스캔들>에서도 그랬지만, 남녀가 유별한 조선시대 설정에 성 역할을 숨기고 들어와 한 방에서 같이 지내는 상황은 이른바 ‘조선로코’의 중요한 드라마 코드 중 하나다.



예비 기생 중 최고령자로 있는 동동주는 까칠하고 괄괄한 성격으로 기생과는 어울리지 않는 여성이고, 오히려 여장을 한 전녹두는 조신한 면모를 연기한다. 그러니 그 상황에서 보여지는 성 역할을 뒤집는 모습들이 웃음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성 역할 바꾸기는 두 사람이 결국은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성 역할이 남녀 관계에 있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걸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조선로코’가 그러하듯이.

그런데 이 ‘조선로코’는 광해라는 실존 역사의 인물까지 등장하고 있고, 과부촌의 비밀무사단체인 무월단이나 자경단에 해당하는 열녀단 같은 예사롭지 않은 단체들이 등장하면서 단순한 로코에만 머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 될 수 있다고 했던가. <녹두전>의 여장남자 콘셉트는 여성들이 겪는 억압을 남성의 시선으로 체감한다는 차원에서 그 자체로도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남녀 간의 작은 사랑조차 쉽게 허용하지 않는 세상의 권력과 재물 같은 욕망들이 병치된다는 점은 이 로코가 가진 사회적 함의를 훨씬 크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할 것이다.

무엇보다 여장남자라는 쉽지 않은 역할을 너무나 잘 연기해내고 있는 장동윤이라는 배우의 공적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땐뽀걸즈>에서 순박한 청년 권승찬 역할로 매력적인 연기를 선보였던 그는 이번 <녹두전>을 통해 여자라고 해도 믿을 법한 ‘고운 선’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점은 이 드라마의 근간이랄 수 있는 여장남자 캐릭터를 수용하게 만든 그의 연기 지분이 절대적이라는 걸 말해준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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