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 김응수 통해 본 곽철용 캐릭터 폭발적인 인기의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그 귀하다는 아이언 드래곤을 MBC 예능 <라디오스타>가 움켜쥐었다. 최근 조국 장관을 제외하고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뜨겁게 회자되는 인물은 단연 ‘곽철용’이다. 중견 연기자 김응수는 수많은 굵직한 사극을 비롯해 영화와 예능까지 섭렵하며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지만, 한 달여 전부터 2006년 조연으로 출연한 <타짜>의 곽철용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쉬움 가득한 <타짜3>에 대한 반작용으로 13년 만에 재발굴된 ‘순정 마초’ 곽철용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각종 패러디와 헌사의 주인공으로 큰 사랑을 받으면서 이대 나온 여자(김혜수)와 전설적인 연기 커리어를 시작한 고니 조승우를 재끼고 <타짜>시리즈 최고 스타 자리에 올랐다. 곽철용 전성시대가 열린 이후 첫 예능 나들이인 만큼 <라스>에 모처럼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사내다운 품성이 남다른 신사 곽철용은 달라진 위상만큼이나 새로운 세상이 도래했음을 보여주는 문화 현상이다. 가장 먼저 판의 룰이 바뀌었다. 미디어 생산자와 수용자의 경계가 모호해졌음이 그의 이름 석 자로 증명된다. 곽철용 신드롬은 생산자의 의지나 의도와 무관하게 오롯이 대중에 의해 조명되고 확산됐다. 구글 트렌드를 살펴보면 곽철용이란 키워드는 9월 초부터 급상승한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기폭제가 될 만한 사건을 특정하기가 힘들다. 김희철과 이진호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곽철용의 대사를 읊조리며 불을 지피는데 분명 일조했지만, 직접적인 발화원인으로 지목하기엔 시점이 맞지 않다.



그런데 어디선가 피워 오른 불이 한 달 동안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더니 급기야 김응수는 대중매체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지상파 예능에 13년 전 캐릭터로 출연하게 된다. TV나 영화 같은 대중매체가 제공하는 콘텐츠가 아니라 수용자들이 참여하거나 재가공하는 과정의 유희와 그 확산에 동참하는 것까지 소비이자 시청의 범주로 확장됐다. 그러니 오늘날 대중문화 콘텐츠의 성공을 위해서는 인터넷 문화와 어떻게 조우하고 감성의 결을 맞춰갈 것인지가 매우 중요해졌다고 말할 수 있는 사례다.

곽철용의 인기 원인은 단순히 과거의 향수에 기댄 뉴트로나 미군과 마주앉은 협상테이블에서 ‘4달라’만 외친 결과 16년 뒤 햄버거 광고를 찍게 된 김영철의 사정과는 다르다. 이 신드롬의 핵심에는 김응수가 녹여낸 캐릭터가 있다. 사실 곽철용은 김응수가 연기한 다른 굵직한 배역과 비교해볼 때 그의 필모그래피를 대표하는 캐릭터는 아니다. <타짜>에서도 그보다 큰 비중과 사랑을 받은 인물이 즐비하고, 정리해보면 대사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주옥같은 경구가 되었고, 그가 출연한 장면들은 하나하나 예술 작품처럼 표구됐다.



곽철용은 불법도박장을 관장하는 조폭두목이다. 17세부터 그 세계에 들어가서 밑바닥에서 꼭대기까지 올라간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도박판에서도 신사다움을 찾는 만큼, 주먹을 함부로 쓰기보다는 늘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화란(이수경)에겐 자신의 파워가 아니라 적금도 붓고 보험도 들고 있는 성실함으로 어필하며 순정으로 다가간다.

하는 일이 불법도박이고 거대 조폭 조직을 거느린 힘이 있지만, 최소한 이를 부당하게 사용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순이 꽤나 매력적이다. 고니에게 큰돈을 잃고 부하들 앞에서 놀림을 받아도, 흠모하는 여자를 빼앗겨도 판을 뒤엎거나 해코지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수하로 품으려는 품성과 사업가이자 어른다운 통 큰 결단을 보여주고 앞뒤 말 바꾸는 법이 없다. 물론, 상남자다. 담배는 손가락에 찔러 넣는 것이고, 길을 묻는 질문에 즉각적인 대안 제시는 거칠다. 낭만의 시대에서나 볼법한 이런 리더십에는 비열함과 잔인함이 내면화된 조폭 캐릭터와는 다른 진정한 사나이의 멋이 있다. 너무나 노골적이라 난처하고 현실을 들여다볼수록 초라함이 커지는 전직 조폭 관련 인터넷 방송이나 싸움 관련 콘텐츠들과는 격이 다르다.



바로 이 모순과 남성성이 곽철용이란 캐릭터를 변주하는 재미이자 로망이며, <타짜>, <해바라기> 류의 영화에 푹 빠진 인터넷감성, 인터넷문화를 이끄는 남자들의 연대의식의 발로다. 이런 유희는 대중문화의 주소비층에서 밀려난 남성 소비자들의 존재를 드러낸 변방의 북소리이자 페미니즘의 시대에 유쾌한 농담이다.

실제로 김응수는 굉장히 박식하고 자기철학이 뚜렷하면서 젊게 살려고 노력하는 재밌게 살려는 사람이다. <라스>에서 인디씬에서 활약하는 랩퍼 뱃사공을 치하하는 태도나, 누굴 눈치보냐며 시청률 떨어진 이유 있다고 타박하는 거칠 것 없는 언사로 종횡무진 활약한다. 인터넷에서 흔히 쓰는 ‘no빠꾸’의 직선적인 캐릭터인데 무례함보단 유쾌함과 인간미가 가득하다. 곽철용은 여기에 품격을 갖추고 낭만의 시대라는 분위기를 덧입고 있는 셈이다.



곽철용은 단순히 웃기는 인물이 아니라 남성성의 퇴화가 일반화된 오늘날의 시대상 속에서 재발견되어진 남성성의 홀로그램과 같다. 이것이 유튜브를 만나 더욱 커진 인터넷문화란 놀이판 위에 펼쳐지면서 13년 전 조연이 추앙받는 스타가 됐다. 그런 만큼 곽철용의 캐릭터부터 그가 이 시대에 재발견되어 주인공으로 갑자기 우뚝 서게 된 과정까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웃음 그 이상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영화 <타짜>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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