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마마트’, 원작을 본 적 없는 이 – 독자 – 애독자의 온도차 리뷰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계획대로였다면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2013년쯤에는 영상화 되었어야 했을 작품이다. 그 무렵 김종학프로덕션이 영상화 판권을 구매해 시트콤으로 만들어 보려 한 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 제작되었더라면, 원작의 유머가 어디까지 실사판에 반영될 수 있었을까? 온라인 유머의 문법이 본격적으로 TV 시장에 반영되기 시작하던 2010년대 초반과, TV시장을 완전히 장악하다시피 한 2010년대 후반 사이의 갭을 생각하면, 오히려 6년여의 시차가 원작의 매력을 살리기엔 더 좋은 토양을 만들어 준 셈이다.

6년의 세월은 드라마판에 조금 더 유리한 요소를 한 가지 더 추가했다. 원작과의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원작과 실사판을 놓고 얼마나 정교하게 옮겼는가를 따질 만한 사람들이 줄어들었다는 것이 그것이다. 원작의 인기가 한창 높을 때에는 실사판이 원작을 얼마나 정확하게 계승했는지 따져 묻는 열성팬들이 평을 주도하지만, 그 시기를 잘 피하면 원작의 명성은 취하되 실사판만의 새로운 해석을 선보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그래서 [TV삼분지계]는 원작을 본 적 없는 정석희 평론가와, 원작을 보았으되 열성팬은 아니었던 김선영 평론가, 원작의 열성팬이었던 이승한 평론가의 온도차 리뷰를 준비해봤다.



◆ 원작을 본 적 없는 이의 리뷰: 한 치 앞을 알 수 없어 볼 맛 난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짐작도 아니 된다. 만화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듯 무심히 히죽거리며 보다가 미주(김규리)가 등장해 아빠 백수 귀신 만들기 싫다며 취업을 부탁하는 순간, 이건 아니지 싶어졌다. 웃자는 설정인지 감동어린 설정인지 모르겠으나 어린 아이에게 왜 저런 역할을? 했던 것. 일자리 구하던 중에 교통사고로 죽은 아빠도 아빠지만 “아빠에게 다시는 나 찾지 말라고 해.” 하며 집 나가는 엄마, 그걸 말없이 바라보는 미주의 눈빛이 가슴 시렸다.



그러나 정복동(김병철) 사장의 지시로 미주에게 방과 후 서점 관리가 맡겨지고 문석구(이동휘) 점장이 미주 공부를 봐주게 되고, 더 나아가 미주가 참고서 판매에 기여를 하는 장면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이렇게 깊은 뜻이! 하지만 점장의 보고를 받는 정복동 사장의 표정이 클로즈업 되는 순간 ‘이건 또 뭔가요?’ 할 밖에. 도무지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들. 매번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헷갈려 하는 문석구 점장의 심정이 딱 내 심정이다. 대충 살아도 될 놈은 된다는 건지, 아무리 엇나가려 해도 제대로 살 놈은 바른 길로 돌아오기 마련이라는 건지.



캐릭터와 배우가 찰떡처럼 잘 맞아 떨어지는 것도 큰 장점이다. 오히려 어색한 배역을 찾기 어렵지 않을까? 바로 만화 속으로 들이 밀어도, 반대로 만화에서 꺼내 놓아도 얼음 땡 모양 생생히 살아 움직일 역할들이며 배우들이다. 홈페이지에 보니 ‘알바급구 공개 채용’ 게시판이 있었다. 아쉽게도 종료 상태다. 좋은 기회를 놓쳤다! 허나 문석구 같이 창의적이지 못한 인물이 하나 더 필요할 리 있겠는가. 다음 주에는 더 황당무계한 사건들이 펼쳐지려나 보다. KBS2 <동백꽃 필 무렵>과 tvN <쌉니다 천리마 마트>가 공존하는 세상이라니, 드라마 볼 맛이 난다!

정석희 TV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 원작 봤으나 열성팬 아닌 이의 리뷰: 金 밤의 열기, ‘저세상’ 연출의 매력

<쌉니다 천리마마트> 2회에서 문석구(이동휘) 점장은 마트 홍보를 위해 문화행사를 기획한다. 행사를 망치려는 정복동(김병철) 이사는 유명 연예인 대신, 아마추어 밴드를 이끄는 마트 직원 조민달(김호영)을 공연에 내세운다. 무대에 오른 조민달과 그의 그룹 무당스는 부조리한 사회를 향한 증오를 내뿜는 강렬한 데스메탈 사운드로, “가족 단위 고객”을 유치하려던 문석구를 당황시킨다. 회심의 미소를 짓는 정복동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귀를 틀어막는 가운데, 고객만족센터의 오인배(강홍석)가 무대로 난입하고 장르는 순식간에 액션으로 뒤바뀐다. 그리고 고객의 충격과 분노를 대변하는 오인배의 주먹에 관객들이 환호하는 순간, 조민달의 어린 아들이 아빠 앞을 막아서면서 장내는 이내 눈물바다가 된다.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으나 반전을 거듭했던 이 공연은 ‘왕 vs 무당스’라는 제목의 뮤지컬로 재탄생해 천리마마트의 명물이 된다.

어디서도 본적 없는 ‘저세상 드라마’라는 평가를 받는 <쌉니다 천리마마트>의 장르를 설명할 때, 2회의 이 공연 신은 작품의 핵심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으로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말하자면 액션, 가족, 멜로, 판타지, 코미디 등 드라마의 온갖 요소와 춤, 노래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발리우드 뮤지컬에 가장 가깝다. 지금까지 웹툰, 그것도 판타지적 성격을 띤 원작의 실사화에서 많은 작품이 CG 등을 동원해 원작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급급했다면,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웹툰의 초일상적 요소를 더 과장된 발리우드 문법으로 ‘초월 연출’하여 색다른 드라마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다큐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를 시작으로, [SNL코리아], <배우학교>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활약해온 연출자의 장점이 잘 발휘된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이 같은 뮤지컬 문법은 단순히 형식의 재미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 작품의 주요 배경인 천리마마트는 한국 사회에서 잉여 혹은 배제된 존재들이 모여든 곳이다. 정리해고당한 노동자, 난민에 이어 3회에 가세한 ‘백수 유령’ 직원은 그러한 성격을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등장인물이다. 가장 발언권이 적은 비루한 존재들이 어우러져 한목소리를 내는 데는 뮤지컬만한 장르가 또 없다. 7년의 시차가 존재함에도 원작의 인종차별적, 여성배제적 설정 등을 수정하지 않은 한계도 분명하지만, 웹툰의 실사화에서 무시할 수 없는 성취를 보여준 작품인 것만은 분명하다.

김선영 칼럼니스트 herland@naver.com



◆ 원작 열성팬의 리뷰: 원작의 짧고 독한 풍자가 아쉽다

“이 원작을 가지고 어떻게 TV 드라마를 만들어?”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났다. 김규삼의 동명 웹툰을 원작 삼은 tvN 드라마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TV로 옮기기에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원작의 설정들을 뻔뻔스레 밀어붙인다. 부족 단위로 신들린 세일즈 실력을 보유한 빠야족이나, 해바라기 탈을 뒤집어쓴 정복동(김병철), 노조위원장 자리를 놓고 사투를 벌이는 오인배(강홍석)와 피엘레꾸(최광제) 등 원작 연재 시 수많은 독자들을 경악케 했던 김규삼의 유머들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것만으로도,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전에 본 적 없는 B급 코미디 드라마라는 호평을 사는 중이다.

이처럼 개별 장면들만 놓고 보면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원작의 유머를 충실하게 계승하는 중이지만, 전체 호흡을 놓고 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훨씬 더 건조하고 냉소적인 톤의 유머를 구사했던 원작과 달리, TV판은 원작의 감동 코드를 가지고 와서 더 부풀려 활용한다. 조민달(김호영)이 천리마마트 문화행사에서 선보인 무대의 끝은 원작과는 달리 조민달의 아들이 눈물을 흘리며 무대로 난입하는 뮤지컬로 끝나고, 원작에선 대놓고 대마그룹의 비자금 세탁소로만 존재했던 천리마마트에는 김대마 회장(이순재)의 회고를 통해 ‘어릴 때부터 유난히도 슈퍼마켓을 좋아하던, 지금은 세상을 떠난 아들의 꿈이 집약되어 있는 마트’라는 사연이 붙는다. 정서로 승부를 보는 장면이 늘어나면서, 풍자적이었던 원작의 톤은 희망을 떠먹이려는 듯한 1990년대 풍의 메인 테마곡과 함께 동화적인 톤으로 슬그머니 둔갑한다.



아마 웹툰 특유의 블랙유머를 드라마의 문법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정서적인 당위성을 확보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농담을 짧게 끊어 치는 리듬을 잃지 않았던 원작과 달리, 감동 코드의 비중을 부쩍 늘린 탓에 TV판 <쌉니다 천리마마트>의 리듬은 다소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그 성긴 리듬을 극복하기 위해서인지 회차마다 뮤지컬 시퀀스를 삽입하며 영상매체만이 구사할 수 있는 유머를 추가하기도 하지만, 글쎄, 원작의 코어 팬들까지 설득하기엔 작품이 조금 많이 양순하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영상·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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