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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 이 거친 히어로에게 우리가 이렇게까지 열광한다는 건
기사입력 :[ 2019-10-06 14:47 ]


‘조커’, 가진 자들의 웃음과 못 가진 자들의 웃음

[엔터미디어=정덕현의 그래서 우리는]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조커>의 흥행이 심상찮다. 우리에게는 배트맨의 적수로 알고 있는 조커라는 캐릭터의 탄생과정을 담은 영화지만, 이 영화는 결코 슈퍼히어로물의 단순명쾌한 선악대결을 담지 않는다. 또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둡다. 그건 조커라는 안티히어로가 되어가는 아서 플렉스(호아킨 피닉스)의 고통스런 삶이 전편에 공기처럼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단 4일 만에 170만 관객을 돌파했을 정도로 놀라운 파괴력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높은 화제성과 평점을 통한 입소문이 급속도로 퍼져나가며 흥행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도대체 이 DC의 안티히어로를 다룬 영화에 어째서 우리네 관객들이 이토록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걸까.

먼저 이 영화는 슈퍼히어로물에서 캐릭터를 가져왔고 배트맨의 배경이 되는 가상의 도시 고담시를 소재로 쓰고 있지만 오히려 지극히 현실을 환기시키는 작품이다. 어린 시절부터 ‘해피’라 불리며 세상에 늘 기쁨과 웃음을 주는 존재로 키워졌고 그래서 코미디언을 꿈꾸지만 그의 조크는 세상 사람들을 웃기지 못한다. 정신 질환과 우울증으로 정신과 상담과 약물에 의존해 살아가는 아서라는 인물. 여기서 슈퍼히어로물의 비현실적 판타지를 찾기는 어렵다.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며 웃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서의 모습은 그가 처한 현실을 상징화한다.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조크를 던지고 함께 웃음으로 공감하고 싶지만 웃음보다는 배려와 예의 없는 편견어린 시선과 심지어 아이들까지 조롱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세상에서 눈물을 웃음으로 애써 감추고 있다. 우울감을 약에 의지해 버텨내며 애써 웃는 그 모습은 그만의 현실이 아니었을 게다. 가진 자들은 우아하게 살아가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은 복지예산 삭감으로 정신과 상담도 받지 못하고 거리로 내쳐지는 게 고담시의 현실이니 말이다.

그런 아서의 유일한 낙은 피곤한 하루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머레이 프랭클린(로버트 드니로)의 TV코미디쇼를 보는 것이다. 그 쇼에 낄낄 대며 웃던 아서는 그러나 어느 날 자신이 어눌하게 클럽에서 했던 조크를 담은 동영상이 그 쇼에 소개되는 걸 보며 묘한 감정을 갖게 된다. 그건 사실 머레이가 웃기지 못하는 아서를 비웃고 모욕하는 것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이었지만, 아서는 그렇게라도 자신의 존재감이 드러난 것에 놀라워한다.



늘 모욕당하면서도 그럭저럭 순응해가며 살아가지만 그가 우연히 저지른 살인사건은 그를 각성시킨다. 광대 분장을 했던 아서의 살인은 고담시에 커다란 화제가 되고 가난해 핍박받아온 이들은 조금씩 그를 영웅시하기 시작한다. 아서가 쏜 총은 그래서 자신만 각성시킨 게 아니라 그와 비슷한 처지를 살아가는 못 가진 자들을 각성시킨 게 되었다.

아서는 드디어 깨닫게 된다. 왜 자신의 조크에 저들이 웃지 않고 비웃었는지를. 그는 “당신은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로 자신의 세계와 저들의 세계가 유리되어 있다는 걸 말해준다. 머레이의 쇼는 저들의 세계의 웃음을 던지며 저들 세계만이 세상의 모습이라 그려내고 있지만, 아서는 그 세계에 편입될 수 없다. 그는 매일같이 노트에 자신의 일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조크를 적어 놓고 들려주지만 저들은 그 조크는 이해하지 못한다.

저들과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이유로, 또 저들의 삶이 마치 진정한 삶이고 정상적인 삶이라 주장된다는 이유로 그 반대편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비정상으로 치부되고 모욕 받아 마땅한 삶으로 처분되는 것에 아서는 반기를 든다. 세상은 그를 비정상으로 취급하지만 그는 이제 거꾸로 세상을 비정상으로 취급하려 한다. 당신은 제정신이 아니라며 먹이던 약물들을 끊어버린 아서는 제정신이 아닌 세상에 총알을 먹이기 시작한다.



<조커>는 사실 앞부분 내내 답답하고 무거운 감정을 지워낼 수가 없다. 하지만 중반 이후부터 아서가 조커 분장을 하며 각성하기 시작하고 말미에 세상을 향해 총구를 들이대는 장면에서 놀라운 해방감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가진 자들의 세상만이 정상으로 취급되는 현실에 못 가진 자들은 결코 정상적인 인물이 될 수 없다. 노력해도 그건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거리로 나온다.

여기서 저들의 시선으로 폭동이라 불리는 반사회적 행동들은 조커의 시선으로 보면 억압된 삶으로부터의 탈출로 그려진다. 이 부분은 아마도 이 이국의 낯선 영화가 우리를 열광하게 만드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가진 자들만의 웃음 속에 못 가진 자 조커의 거친 웃음이 만들어내는 카타르시스랄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조커>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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