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전’, ‘꽃파당’... 달달하긴 한데 허전함 남는 이유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KBS 월화드라마 <조선로코-녹두전(이하 녹두전)>에는 실존 역사적 인물인 광해(정준호)가 등장한다. 하지만 광해의 이야기는 거의 뒤편 배경 정도에 머문다. 대신 전녹두(장동윤)와 동동주(김소현), 차율무(강태오)가 펼치는 청춘 로맨스가 이 드라마의 진짜 정체다.

캐릭터 이름에서부터 <녹두전>은 이 사극이 가진 가벼움을 드러낸다. ‘녹두전’에 ‘동동주’ 게다가 ‘율무차’라니. 어쩌면 작가가 좋아하는 술과 안주 그리고 차를 이름으로 가져온 듯 느껴지는 대목이다. 아무래도 녹두전에는 율무차보다 동동주가 어울린다는 사실은 <녹두전>의 로맨틱 코미디가 전녹두와 동동주의 멜로에 차율무의 짝사랑이 삼각구도로 그려져 있다는 걸 쉽게 짐작하게 한다.



간간히 동동주가 본래 사대부가의 딸이었고, 하루아침 무슨 일인가를 겪어(아마도 역모가 아닐까 싶다) 멸문이 되어 가까스로 살아남게 되었다는 사실이 플래시백으로 보여지지만, 실상 드라마는 과부촌에 여장을 하고 들어오게 된 전녹두와 그와 함께 지내게 된 동동주의 밀고 당기는 멜로에 맞춰져 있다. 양반에게 팔려 갈 위기에 처한 동동주를 전녹두가 수양딸로 삼으면서 두 사람은 다시 한 방에서 모녀 살이를 빙자한 동거에 들어가게 됐다.

<녹두전>은 과거 <성균관 스캔들>이나 <구르미 그린 달빛>이 조선을 배경으로 그려낸 ‘조선로코’를 남자와 여자의 역할을 바꾸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즉 남장여자로 들어오게 된 인물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여장남자로 바꿔 놓은 것. 물론 여기에는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을 뒤집는 도발적인 설정이 들어가 있지만 결국 핵심은 달달한 로맨스 판타지다.



최근 들어 사극이 달달한 로맨스 판타지에 푹 빠졌다. 종영한 MBC <신입사관 구해령>에서도 조선의 첫 여자 사관 구해령(신세경)이라는 새로운 여성관을 내세우긴 했지만 결국 이림(차은우)이라는 왕자와의 로맨스가 전편에 그려졌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JTBC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도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루아침에 왕으로 추대 된 이수(서지훈)와 저자거리에서 알게 되어 사랑에 빠졌던 개똥이(공승연)의 로맨스가 마훈(김민재), 고영수(박지훈) 그리고 도준(변우석)에 의해 혼담이 공작되면서 그려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결국 그 핵심은 로맨스 판타지다.

물론 <성균관 스캔들>이나 <구르미 그린 달빛> 같은 조선을 배경으로 하는 로맨스 판타지가 큰 성공을 거뒀던 전적이 있다. 하지만 이들 드라마들이 성공했던 건 당대에만 해도 새로운 시도로 여겨졌던 면이 있고, 무엇보다 남녀 관계의 역전이나 그 밑바닥에 담겨진 청춘들의 어른들과의 대결구도 같은 것들이 가벼운 로맨스와 긴장감 사이에 균형을 맞춰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워낙 조선판 로맨스 판타지를 담는 사극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서 그런지 달달하긴 해도 어딘지 남는 아쉬움이나 허전함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이런 구도의 이야기가 이제는 새롭지 않다는 게 문제다. 최근 새로 시작한 JTBC <나의 나라>의 묵직한 이야기가 더욱 주목을 끌고 있는 건 이런 로맨스 판타지에 빠져 있는 사극들과 확연히 다르기 때문일 게다.

너무 달달하기만 한 로맨스 판타지에 빠진 사극. 이 드라마들은 그래서 때때로 사극이 아니라 로맨틱 코미디의 또 다른 버전처럼 보인다. 조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을 뿐, 사극의 색채가 아닌 로맨틱 코미디에 더 방점을 찍고 있어서다. 로맨틱 코미디를 즐기는 시청자들이라면 몰입할 수 있겠지만 사극을 즐기는 시청자들로서는 몰입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MBC,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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