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가’, 뻔한 이야기로 어떻게 대성공을 거뒀나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MBN 역대 드라마 중 최대 성공작이 나왔다. 바로 MBN과 드라마맥스에서 동시 방영되는 <우아한 가>다. <우아한 가>는 MC그룹 일가의 우아하지 못한 속내를 까발리는 이야기다. 어마어마한 몸값의 한류스타도 없고, 최고의 시청률을 올린 스타작가도 없는 <우아한 가>의 시작은 사실 그렇게 대단하지 않았다. 더구나 재벌 이야기는 한국 드라마에서 지극히 진부한 소재였다. 한국 사람이라면 재벌로는 못 살아도 재벌이 등장하는 이야기쯤 뚝딱 쓸 수 있을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이 불리한 조건의 <우아한 가>는 회가 거듭될수록 입소문을 타고 시청자를 끌어 모으며 지상파 드라마보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우아한 가>의 성공요인은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다. <우아한 가>는 최근 케이블과 지상파의 드라마들처럼 어마어마한 투자비용을 들여 스펙터클하고 예술적인 화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거 감상하기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계속 보다보면 좀 지루하다. 이야기 전개는 따분하거나 빤한데, 화면만 그럴 듯한 드라마들이 얼마나 많았나?



뿐만 아니라 <우아한 가>는 이야기 전개에 특별한 힘을 주거나 멋있는 척을 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도덕적인 교훈도 없다. <우아한 가>의 인물들은 욕망에 충실할 뿐 폼을 잡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우아한 가>가 재벌이란 소재를 메인으로 택한 것은 탁월해 보인다. 눈치 보지 않고 욕망에 충실해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지금 한국에서는 재벌이나 되어야 가능한 일이니까.

<우아한 가>는 이 욕망에 충실한 재벌가 인물들을 끌고서 그저 직진하는 이야기에 몸을 싣는다. 대사는 직설적이고, 자잘한 사건은 답답하게 꼬지 않는다. 하지만 영리하게도 모석희(임수향) 어머니 살인사건이라는 큰 서사에 대한 미스터리의 패는 끝까지 보여주지 않는다.

또한 다루고 있는 소재 역시 최근 뉴스에 종종 등장하는 재벌가 자제들의 사생활이나 검찰과 재벌가의 은밀한 커넥션을 다루고 있다. 드라마의 스토리가 촘촘한 것은 아니지만, 그 빈 여백을 현실의 뉴스들이 전하는 현실감의 배경으로 메워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우아한 가>는 과거 KBS <사랑과 전쟁>처럼 보는 이를 끌어당기는 마력을 발휘한다. 물론 부부사이의 전쟁이 아니라 엄마가 다른 재벌가 자제들 사이의 아귀다툼을 보여준다. 형제끼리의 전쟁이라, 이것 역시 어디서 많이 본 코드 아닌가? 바로 중장년층이 특히 좋아하는 사극 왕가의 자제들 다툼과도 비슷하다. 과장될 정도로 웅장한 배경음악 역시 최근 트렌드는 아니지만, 이 드라마와는 꽤 잘 어울린다.

이처럼 <우아한 가>에는 꽤 많은 재미요소들이 가득하다. 여기에 재벌가를 관리하는 한제국(배종옥)의 탑팀이라는 신선한 설정까지 들어가 있다. 재벌가의 집사나 비리 관련 잔반처리반 정도로 등장하던 캐릭터가 사이버군단이 모여 있는 요새에 앉아 재벌가를 쥐고 흔드는 인물로 변신한 것이다.



<우아한 가>에서 배종옥의 한제국은 오히려 재벌가 사람들보다 더 강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배종옥 특유의 말투와 한제국 캐릭터가 어우러지면서 배종옥은 악역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입술 파르르 떨고, 눈 부라리는 악역이 아니라 조곤조곤한 말투로 상대를 짓밟는 악역이다. 무표정하게 MC그룹에 대항하는 인물들을 처리하는 악역이다. 아마 배종옥의 한제국이 아니었다면, <우아한 가>는 재미는 있더라도 특별한 드라마는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배종옥의 한제국 덕에 <우아한 가>는 이성적이고 냉철한 여성 악역 캐릭터의 역사를 시작한 작품으로도 기억될 것이다.

아울러 배종옥뿐 아니라 <우아한 가>의 배우들은 빈틈없이 본인의 역할을 충실히 소화한다. 드라마의 중심이 되는 모석희의 임수향은 그녀의 전작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의 강미래와는 180도 다른 캐릭터를 천연덕스럽게 소화한다. 오랜만에 드라마에 복귀한 모철희 회장 역의 정원중이나 허윤도(이장우)의 아버지 허장수 역의 박상면도 반갑다. 이 중견배우들은 그들이 등장하는 몇 컷의 장면들을 본인들 것으로 만들 줄 아는 능력자다. 이 외에도 <우아한 가>에는 꽤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배우들은 본인들이 연기하는 캐릭터의 개성을 살려 자신만의 존재감을 발휘한다.



결국 <우아한 가>는 스타파워나 물량공세 없는 드라마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흥미로운 이야기, 신선한 설정, 배우들의 몰입도 높은 연기면 넷플릭스와 유튜브에 방송이 밀리는 시대에도 시청자는 채널 고정할 아량이 있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M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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