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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를 냉혹한 야심가로, 애매한 ‘나의 나라’의 전략적 선택
기사입력 :[ 2019-10-20 14:32 ]


‘나의 나라’ 각자도생의 난세, 다시 한번 낯설게 바라보다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여말선초는 한국 사극이 유달리 즐겨 그리는 시대다. 특히나 최근 몇 년 간은 SBS <대풍수>, KBS <정도전>, SBS <육룡이 나르샤>, 영화 <해적>, <순수의 시대> 등에서 이성계의 조선 개국과 그를 둘러싼 이들의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그려진 바 있다. 뒤집어서 다시 이야기하자면, 이미 많이 다뤄진 만큼 뭔가를 새롭게 선보여주는 것이 쉽지 않은 시기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JTBC 금토드라마 <나의 나라>는 어떨까? 역사 속 실존인물 이성계(김영철)와 이방원(장혁) 대신, 가상의 인물인 서휘(양세종)와 남선호(우도환), 한희재(김설현)에게 정 중앙의 포커스를 내어준 <나의 나라>의 시도가 아주 새롭다고 하긴 어렵다. 그러나 민초들을 역사의 중심에 세우는 최근 사극의 흐름 속에서도 <나의 나라>가 차지한 위치는 다소 남다르다.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 모두 공히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는 단서를 달며 호평에는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그럼에도 <나의 나라>가 흥미로운 지점들을 짚어보았다. 김선영 평론가는 당대의 정치적 환멸을 ‘각자도생’이라는 메시지로 담아낸 <나의 나라>의 주제의식적인 측면을, 이승한 평론가는 드라마의 언어적 선택과 캐릭터 직조에서 보여진 스타일적인 측면을 살펴보았다. 정석희 평론가는 이런 새로운 시도를 설득해내는 조역들의 매력을 들여다보았다.



◆ 각각의 신념인가, 각자도생의 합리화인가

근래 사극의 흐름은 역사 속 위인들의 이야기에서 역사가 배제한 수많은 무명씨의 이야기로 바뀌어 가는 추세다. SBS <육룡이 나르샤>는 조선 건국의 역사를 써가는 이야기 안에서 이름 없는 백성들이 정도전(김명민), 이방원(유아인)과 같은 영웅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SBS <녹두꽃>에서는 동학농민혁명을 다루면서 민초들의 이야기를 영웅 전봉준(최무성)에 앞세웠다.

그리고 JTBC <나의 나라>는 이 같은 흐름의 최전선에 위치한다. 여말선초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서 이성계(김영철), 이방원(장혁)과 같은 영웅 캐릭터는 한 발 뒤로 물러서 있다. 정도전은 등장조차 하지 않고 대사로만 언급될 뿐이다. 대신 전면에 나서는 것은 팽형인의 아들 서휘(양세종), 얼자 남선호(우도환), 고아 한희재(김설현) 등 손발 묶인 자들의 이야기다. 심지어 휘와 선호는 역성혁명 과정에서 이용만 당하다가 버림받은, 진작 죽었어야 할 유령과도 같은 존재들이다.



들풀 같은 백성들을 주인공으로 한 사극이라도 주인공들은 ‘대의’를 지니고 앞으로 나아가지만, <나의 나라> 속 인물들은 ‘소의’조차 지닐 여력이 없다. 고려말의 현실을 비판하는 벽서범으로 등장한 희재마저 “힘없는 정의는 그저 무력할 뿐이라는 걸” 절감한다. ‘밥이 곧 내 나라’라 했던 휘의 말은 처음엔 비웃음의 대상이었으나, 이제는 등장인물 모두를 지배한다.

이성계와 방원의 갈등 역시 권력을 사이에 둔 생존 경쟁으로 그려질 뿐이다. “바뀐 것은 나라다. 세상이 아니라”는 방원의 말처럼, 새 나라가 세워졌어도 위계의 질서는 공고하다. 그래서 <나의 나라>는 각자도생이 지배하는 지금의 한국 사회를 너무도 정확히 투영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현실을 환멸하는 데 머무를지, 아예 합리화하는 길을 선택할지, 진짜 또 다른 “각자의 신념”을 제시할 수 있을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김선영 칼럼니스트 herland@naver.com



◆ 익숙한 시대를 다시 낯설게 바라보기

조선 개국과 왕자의 난 시기는 한국 사극이 자주 방문한 단골 배경이라, 웬만한 사극 팬들은 이 시기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 <나의 나라>는 이 익숙한 시기를 다시 낯설고 새롭게 보여주기 위해 몇 가지 흥미로운 선택을 취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되도록 현대 한국어 화자들이 알아듣기 쉽게 대사를 다듬는 최근 사극들의 추세와 달리, <나의 나라>는 오히려 문어체에 가까운 표현이나 한 번에 와 닿지 않는 한자어들을 자막도 없이 밀어붙인다. “입궐하실 때에는 말에서 내려주십시오.” 대신 “입궐 시 하마해주십시오.”라 표현하는 대신,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자막이 아니라 극의 맥락을 통해 설명하는 쪽을 택하는 식이다.

시청자 입장에서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보는 이로 하여금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이런 언어적 선택은 시대배경을 효율적으로 설득하는 의외의 효과가 있다. 현대 한국인들과는 판이하게 달랐을 근세 조선인들의 언어생활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건 무리겠지만, 대사를 예스럽게 다듬는 것으로 시대적 분위기를 보다 그럴듯하게 흉내 내는 건 가능한 것이다.



태조 이성계(김영철)의 성격 묘사도 흥미롭다. 무과 응시를 거절당한 휘(양세종)의 신원을 직접 보증해주며 “서면 그저 땅일 뿐이나 걸으면 길이 된다. 길을 내 보아라.”고 격려해주는 순간의 이성계는 고려의 모순을 직시하는 현명한 정치인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신의 심복인 남전(안내상)이 그 아들 선호(우도환)의 무과 장원급제를 위해 수를 썼다는 투서가 들어오자, 이성계는 심복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지키기 위해 선호에게 시험관을 죽일 것을 명한다.

정권이 교체되기 전에 만들어진 두 편의 사극에서 각각 “거칠지만 순박하고 어진 덕장”(KBS <정도전>, 유동근)이나 “진중하고 태산 같은 덕장”(SBS <육룡이 나르샤>, 천호진)으로 그려진 이성계를, 백성을 걱정하면서도 동시에 “입은 닫아 막는 것이 아니라 죽여 막는 것”이라 말하는 냉혹한 면도 함께 지닌 야심가로 재해석한 것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선택이다. 물론 그 흥미로운 선택을 끝까지 잘 설득할 수 있을지는, 더 봐야 알 일이지만.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 시선을 잡아끄는 조연들의 힘

최근에 풋풋한 젊은 축들이 앞장을 서고 내공 있는 중견들이 뒤를 미는 사극이 여러 편 출시됐다. 얼마 전 종영한 MBC <신입사관 구해령>이며 중반을 넘어선 JTBC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의 경우 조선시대가 배경이라지만 사실상 현대물로 바꿔도 무관한 내용이었다. 왕손인 남자 주인공은 재벌을 비롯한 권력가 자제로, 여자 주인공은 외로워도 슬퍼도 꿋꿋한 캔디형 인물로 그리면 그만이니까.

그런 점에서 지금껏 숱하게 다뤄진 조선 건국을 배경으로 하는 JTBC <나의 나라>는 출발부터가 다르다. 역사에 문외한이라 해도 드라마 좀 본 사람치고 태조 이성계와 이방원, 신덕왕후를 둘러싼 왕자의 난을 모르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따라서 김영철, 장혁, 박예진 등 중견 연기자들이 이끄는 정사에 유세종, 우도환, 설현 중심의 허구가 어떤 식으로 잘 버무려질 것인가가 관건이겠다.



6회가 방송된 현재 관심이 가는 캐릭터들이 있다. 우선 ‘염장이’ 출신 박문복(인교진). 시체 수습 전문가라니, 웬만한 상처는 흔적도 없이 꿰매는 천의무봉의 경지라니 신선하지 뭔가. 게다가 연기자 인교진과 웃음과 눈물이 공존하는 캐릭터가 아주 찰떡궁합이다. 앞으로 여러 면에서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tvN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에서 송가경(전혜진)의 남편 오진우 역으로 눈도장을 확실히 찍은 바 있는 지승현. <나의 나라>에서는 주인공 서휘(양세종)를 돕는 뛰어난 무관이자 전략가 박치도로 등장해 역시 정사와 허구의 교량 역할로 활약 중이다. <나의 나라>, 아직은 성공을 점치기 애매하지만 그래도 눈에 띄는 인물들이 있어 반갑다.

정석희 TV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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