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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희 연기를 롤모델 삼다니, 무척 흥미로운 김선아의 변신
기사입력 :[ 2019-10-23 17:16 ]


‘시크릿 부티크’ 김선아·박희본에게 장미희·송옥숙이 느껴진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SBS 수목드라마 <시크릿 부티크>에서 남자들은 그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는다. <시크릿 부티크>의 남자들은 폭력적인 건달, 여주인을 짝사랑하는 꽃미남, 냉혹하지만 상대의 수족이 되어주는 불륜남, 마음이 비단결인 동성애자 남편 등으로 등장하면서 주변부의 서사를 만들 따름이다. 마치 느와르 장르의 주변부 여성 캐릭터들처럼 말이다.

<시크릿 부티크>는 여성 느와르를 표방한 작품답게 철저하게 여성끼리의 경쟁구도 속에서 그녀들의 성공을 위한 욕망을 다룬다. 그리고 여기에는 질투와 미움, 동경, 그리고 우정도 애정도 아닌 모호한 감정들이 혼재되어 있다.

그 주축을 이루는 것은 아무래도 제니장(김선아), 김여옥(장미희), 위예남(박희본)의 관계일 것이다. 김여옥은 데오그룹의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 어린 제니장의 운명을 훔친 야망가다. 제니장은 운명이 뒤바뀐 후 부모를 잃고 가난한 고아로 자란다. 후에 김여옥의 하녀로 입안에 사탕처럼 굴지만, 복수를 꿈꾸며 조금씩 김여옥의 목을 조르기 위해 다가간다. 위예남은 본인이 김여옥의 뒤를 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녀는 제니장만큼의 수단이 없고 단순하다.



겉보기에는 미움과 질투로만 얽혀 있을 것 같은 세 캐릭터의 감정선은 조금 복잡하다. 남성 서사의 단순한 서열 순서와 달리 여성 캐릭터끼리의 관계란 원래 은밀하고 복잡하다. 마치 남성 느와르의 무채색 양복과는 전혀 다른 여성 느와르의 패션이 보여주는 화려한 섬세함처럼.

<시크릿 부티크>에서 제니장, 김여옥, 위예남의 관계는 애증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고, 동시에 은연중에 서로를 동경한다. 제니장은 은연중에 김여옥을 롤모델로 삼고, 김여옥은 제니장을 하녀로 보지만 그녀의 탁월한 능력을 은연중에 인정한다. 단순한 위예남 역시 무조건 제니장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은연중에 그녀에게 의지하고 부러워한다.

이 캐릭터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 역시 재미난 포인트가 있다. 아마 중견 여배우 중에서 장미희만큼 본인만의 확고한 컬러로 모든 배역을 커버하는 배우도 많지 않을 것이다. 1980년대 상류층에 박제된 것만 같은 고상한 말투와 애티튜드. 하지만 장미희는 살아 있는 마네킹 같은 포즈를 보여주면서도 어떤 장르의 드라마에서건 긴장감을 살려낸다. <시크릿 부티크>의 김여옥 역시 장미희이기에 가능한 우아한 긴장감이 있다. 그리고 그 우아함 속에 독이 묻은 칼을 숨겼다가, 그녀는 결정적인 순간에 그 칼을 드러낸다.



흥미롭게도 <시크릿 부티크>에서 김선아 연기는 장미희를 롤모델로 삼은 듯 보이는 면이 있다. 이 드라마의 초반 대중들은 김선아의 연기에 당황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연기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친근감이 제니장에게는 없다. MBC <붉은 달 푸른 해>의 차우경으로 보여줬던 우울감은 남아 있지만, 그 주인공에게 느껴졌던 인간미는 없었다. 극 초반 김선아는 김선아가 아닌 것만 같은 차가운 애티튜드만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 이미지는 장미희의 클래식한 애티튜드와도 닮은 면이 있다. 아름다운 것만 보여주되, 결국 속내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기.

하지만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김선아는 종종 본인의 트레이드마크인 어눌한 표정과 말투를 보여주기도 한다. 제니장이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 본인의 솔직한 얼굴을 보여줄 때다. 결국 김선아는 <시크릿 부티크>을 통해 두 개의 다른 인격을 연기하는 셈이다. 사회적인 인격과 진짜 인격 말이다. 하지만 김선아의 제니장 연기는 패션까지 완벽하지만, 말투만은 약간 아쉽다. 치명적인 척, 냉정한 척하는 말투가 이 배우의 입에는 아직 잘 붙지 않는 듯하다. 장미희의 고전적인 여배우처럼 장식적이고 치명적인 말투는 아무래도 복제 불가능의 영역인 걸까?



한편 중견배우 중 장미희처럼 유니크하면서도 연기 스타일이 180도 다른 배우로 송옥숙이 있다. 젊은 시절 배우와 MC를 겸업한 송옥숙은 특유의 쿨하면서 다양한 캐릭터 해석을 보여주는 중견배우다. 그 때문에 송옥숙은 시장 상인부터 재벌가의 안주인, 조폭까지 연기 스펙트럼이 꽤 넓다. 또한 캐릭터의 감정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특유의 또랑또랑하고 시원시원한 연기 스타일 또한 이 배우의 강점이다.

박희본의 위예남 연기 교본은 아마 장미희보다는 장미희의 대척점에 있는 송옥숙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 많은 로맨스물에서 주인공, 혹은 주인공의 친구 역을 소화한 박희본에게 <시크릿 부티크>의 위예남은 나름 변신이었다. 이 드라마에서 위예남은 거침없고, 다혈질이고, 그러면서도 수많은 감정을 재빠르게 넘어야 한다. 아무래도 장미희 스타일보다는 송옥숙 스타일의 연기가 이 캐릭터에 맞다. 극 초반 박희본은 종종 본인의 역할이 버거워 보일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극 중반 박희본의 본인의 자리도 찾고, 본인의 캐릭터에 적합한 분위기도 익혀가는 듯하다. 무엇보다 때로는 너무 숨막히는 장미희와 김선아의 연기 대결에 박희본의 청량한 위예남 캐릭터는 무언가 숨쉴 틈을 주기도 한다.



사실 <시크릿 부티크>은 이야기 자체는 기대보다 흥미진진하지는 않다. 재벌, 이권, 탐욕의 서사가 모두 예상가능한 선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미희, 김선아, 박희본은 물론 많은 조연 여성 캐릭터들의 개성 넘치는 연기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1시간쯤 금방 지나가 버린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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