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우리가 물망초 손담비에게 이토록 몰입했던 건

[엔터미디어=정덕현] “내가 아주 죽을 자리를 찾아가는 구나.” 동백(공효진)이 강종렬(김지석)로부터 받았다 돌려주려 했던 3천만 원을 갖고 도망치려던 향미(손담비)는 결국 다시 터덜터덜 동백의 가게 까멜리아로 돌아온다. 그 발걸음은 아마도 어린 시절 자신의 집이었지만 들어가기 꺼려졌던 엄마의 술집 물망초로 향하던 그 마음의 무게만큼 무거웠을 게다.

그 누구도 향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그렇게 몸까지 험하게 굴리고 심지어 사기와 협박을 해서까지 번 돈으로 유학에 생활비, 병원비까지 대왔던 코펜하겐에 있는 동생이지만 그 동생은 향미가 그 곳으로 오는 걸 꺼려했다. 동생은 향미가 무슨 짓을 해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다 알고 있다며 여기선 그렇게 살지 못한다고 했다. 아마도 집에 들어가지 못해 바깥을 맴돌던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어린 동생의 손을 잡고 물망초로 들어가곤 했던 향미였다. 가족이라고 있는 동생까지 이토록 편견의 시선으로 대하는데 타인들은 오죽할까.

향미의 생이 끝나게 된 마지막 날,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살의를 보냈다. 협박하기 위해 찾아간 강종렬은 향미를 보고 “죽여버릴까”라고 했고, 제시카(지이수) 역시 향미의 당당한 도발에 살의를 드러냈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다. 향미는 그렇게 그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유일하게 단 한 사람 동백만이 갈 곳 없는 그를 받아줬다. 도망치듯 까멜리아를 나왔던 향미가 그래도 갈 곳이 그 곳밖에 없다는 사실은 그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잘 말해준다.

그는 잊혀진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주목받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한 삶에 남는 건 막연한 편견어린 시선뿐이었다. 편견이란 결국 자세히 살피지 않는 그 무관심과 소외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동백 또한 고아에 미혼모라는 편견 속에 살아왔지만, 향미는 다방에서 일하다 옹산이라는 곳까지 흘러들어오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그가 어떤 사연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조차 던져지지 않았다.



동백이 향미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고 편견어린 시선 또한 던지지 않으며 믿어주고 받아들여줬던 건 자신 또한 그 편견 속에 외롭게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밤늦게 오삼불고기 1인분을 배달 나가는 동백에게 향미가 앞으로 1인분은 배달하지 말라고 했을 때, 동백이 “그럼 혼자 사는 사람은 오삼불고기 못 먹게?”하고 되묻는 대목은 그래서 남다른 울림으로 다가온다. 동백은 그렇게 항상 누군가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향미는 그게 짜증나게 가슴을 울린다. “언니가 지금 남의 오삼 걱정할 처지에요?” 그 무표정하기만 했던 향미의 눈에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묻지도 않고 다시 받아주는 동백 앞에서 향미는 울컥해진다. “너나 나나 인생 바닥인 건 쌤쌤인데 왜 너만.. 너만 그렇게.. 지가 부모사랑을 받아봤어 세상 대접을 받아봤어. 사랑받아본 적도 없는 년이 뭘 그렇게 다 퍼줘? 왜 맨날 다 품어?” 문득 동백은 향미가 차고 있는 자신의 팔찌를 보고는 돈도 안되는 그걸 왜 가져갔냐고 묻는다. 그런데 향미의 말이 너무나 슬프다. “널 기억하려구. 그 놈의 동백이 까먹고 살기 싫어서 가져갔다 왜.”

“너 가게 이름 드럽게 잘 졌어. 동백꽃 꽃말 덕에 니 팔자는 필 거야.” 꽃말이야 다 좋은 거 아니냐는 동백의 말에 향미는 드럽게 박복한 꽃말도 있다며 물망초의 꽃말을 알려준다. “나를 잊지 말아요. 너도 나 잊지마. 엄마니 동생이니 다 나를 제끼고 잘 사는데 너 하나는 나 좀 기억해줘라. 그래야 나도 세상에 살다온 거 같지.”

많은 이들이 이 대사에 깊이 공감했을 게다. 무수히 많은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고 살다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심지어 누군가의 지독한 편견 속에서 고통만 받다가. <동백꽃 필 무렵>의 임상춘 작가는 아마도 이렇게 잊혀져간 사람들에 대한 깊은 헌사를 담으려 했던 것 같다. 그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함이 오롯이 느껴진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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