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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는 더 이상 눈치 보는 ‘패스트 팔로워’가 아니다
기사입력 :[ 2019-10-28 11:24 ]
현대차그룹, 세계 전기차 시장의 중심에 서다 (2)

[나윤석의 독차(讀車)법] 지난주에 이어 현대차그룹이 2019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얼마나 선전했는가에 대한 정리를 이어가겠습니다. 지난편이 이미 판매중인 전기차 라인업을 중심으로 한 현재의 위상을 주로 다루었다면 오늘은 미래를 향한 현대차의 포석과 전략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는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갈 예정입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완성차 제작사들은 물론 부품 제작사들까지 한 목소리를 냈던 2019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현대차그룹이 돋보였다는 것은 상당히 큰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 현대차 넥쏘, 미래를 향한 새로운 접근

현대차 라인업에서 넥쏘의 존재는 대단히 강력한 의미를 갖습니다. 수소연료전지차(HFCEV), 즉 수소차는 전기차의 한 부류로 인식되기 시작한, 하지만 배터리 전기차(BEV)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만큼 대중화는 이루어지지 않은 근미래의 라인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대차는 이미 넥쏘를 통하여 미래를 현실로 가져온 겁니다. 현대차는 넥쏘의 독자 섹션을 차려 수소전기차의 영향력과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제시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유럽은 수소전기차도 전기차의 한 가지로 봅니다. 여러가지 전기차 통계에서도 BEV와 PHEV, 그리고 HFCEV는 모두 전기차로 분류됩니다. 다만 기술적인 발전 속도, 용도, 에너지의 공급 특성에 따라 지역별 나라별로 보급률이 다를 뿐이며 가장 효율적인 솔루션을 선택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전기는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원래 저장이 불가능한 에너지입니다. 하지만 요즘 에너지 저장 장치(ESS)라는 개념의 대두로 저장할 수도 있는 에너지로 변신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전기자동차의 배터리 팩과 같은 2차 전지를 대표적 ESS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수소는 전기 에너지를 화학적으로 저장하는 화학적 에너지 저장 장치(ESS)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청정에너지가 풍부한 북유럽을 중심으로 수소전기차의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또한 운송 분야에선 배터리 전기차보다 수소전기차가 더 매력적입니다. 무거운 배터리 무게로부터 자유로운 연료전지 트럭은 그만큼 더 많은 화물을 실을 수 있고 충전 속도도 빠르기 때문에 효율적, 즉 수익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청정 지역, 혹은 차량의 수요가 많지 않은 지역에는 고가의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보다 수소차와 충전 스테이션이 효율적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미래의 카드인 수소차를 현대차는 이미 판매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레 현대차그룹은 유럽에서 ‘미래차 선진 브랜드’라는 이미지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즉 이번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의 넥쏘 전시관은 미래차를 향한 현대차그룹의 다양한 접근법을 보여주는 동시에, 미래차 선진 브랜드라는 입지를 다지는 매우 강력한 수단인 셈입니다.



◆ EV 콘셉트 45, 현대차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다

넥쏘가 현재와 미래의 경계에 서 있었다면 이제부터는 미래 이야기입니다. 시작은 EV 콘셉트 45입니다. EV 콘셉트 45는 현대차 부스에서 가장 큰 관심을 불러모았던 모델이었습니다. 이유는 ‘오마주? 현대가?’였습니다. 유럽에는 현대차를 21세기에 갑자기 등장한 신흥 브랜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지요. EV 콘셉트 45는 심플하고 복고적인 디자인으로도 관심을 받았지만 이 모델이 오마주한 포니와 포니 쿠페가 1974년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서 등장했었다는, 그러니까 현대차는 고유 모델을 가진 지가 벌써 45년이나 된 브랜드라는 사실도 적잖은 관심을 받았던 겁니다.



유럽은 보수적인 사회입니다. 역사와 전통, 즉 헤리티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헤리티지는 곧 철학입니다. 자신의 철학이 있는 브랜드는 그동안 쌓아온 전통을 강조하며 소비자를 설득하거나 공감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 유서 깊은 브랜드들이 강세를 보이는 이유입니다. 이는 유럽에선 헤리티지가 없으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보단 타인의 관심사에 맞춰 상대적인 경쟁 우위만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신흥 브랜드 입장에선 ‘가성비’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현대차는 아직 현대차의 헤리티지가 잘 알려지지 않은 유럽 무대에서 ‘45’라는 숫자를 콘셉트카의 이름으로 정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포니’라는 이름이 노출되지 않아서 아쉬웠지만, 이 결정은 합리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독자 모델의 역사인 45년을 이름에 넣는 것이 더 직설적으로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강조하는 데에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EV 콘셉트 45가 전기차라는 사실입니다. EV 콘셉트 45는 차세대 전기차 전용 모듈형 플랫폼인 E-GMP(Electric-Global Modular Platform)에 800V 고전압 시스템을 사용합니다. 현대차가 미래를 제시하는 전기 콘셉트카에 헤리티지를 강조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앞으로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중국의 신흥 브랜드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유럽 소비자들의 뇌리에 깊숙이 새긴 것입니다.



◆ 벨로스터 N ETCR , 미래 전기차 시장을 위한 큰 그림

현대차 부스에서 EV 콘셉트 45와 함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차가 있습니다. 바로 벨로스터 N ETCR입니다. 벨로스터 N ETCR은 이름 그대로 ETCR에 투입될 전기 레이스카이며, 모터스포츠는 자동차 업계에서 열정이 가장 뜨겁게 표현되는 분야입니다. 자동차 레이스에서 후발 주자였던 현대차는 고성능 N 브랜드를 론칭한 후, TCR 레이스 최강자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즉, 벨로스터 N ETCR의 공개는 향후 펼쳐질 전기차 레이스에서도 리더가 되겠다는 포부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벨로스터 N ETCR은 MR(파워트레인을 차체 중앙에 얹고 뒷바퀴를 굴리는 레이아웃) 구조를 채택했습니다. MR 방식의 현대차는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프리미엄 브랜드인 제네시스를 제외하면 최근 현대차의 모든 승용 모델은 엔진을 가로로 배치한 앞바퀴 굴림 방식(FF), 또는 사륜구동 모델이었습니다. 그런 현대차가 최초로 MR 모델을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전기 레이스카인 것입니다.



현대차는 ETCR 레이싱카를 선보이면서 기존의 전기차들과는 다른 측면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모터스포츠가 강조하는 두 측면, 즉 경쟁의 극한이라는 강렬한 감성적인 측면과 기록이 모든 것을 증명하는 첨단 고성능의 이미지입니다. 그것을 통하여 현대차는 자동차 산업의 미래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의지를 강렬하게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TCR에서 파생된 레이스인 만큼 ETCR은 상대적으로 낮은 문턱, 그리고 전기차 레이스인 포뮬러 E처럼 도심에서 펼쳐질 가능성 등으로 대중들, 특히 젊은이들에 대한 파급 효과가 높을 것입니다. 이는 곧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없는 젊은 사람들의 시선을 당겨올 수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젊은이들의 관심을 되찾는다는 ETCR의 의도는 자동차의 본질인 ‘달리는 즐거움’을 강조하는 현대차의 고성능 브랜드인 N과 일맥상통합니다. 따라서 전기차의 저렴한 유지비와 달리는 즐거움이 만난 극한의 형태인 벨로스터 N ETCR은 새로운 고객 유치를 위한 큰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벨로스터 N ETCR의 존재는 현대차그룹이 8,000만 유로(한화 약 1,067억 원)를 투자한 크로아티아의 고성능 전기차 스타트업 ‘리막(Rimac)’과의 관계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현재 현대차와 리막은 RM20이라는 한정판 고성능 레이스카를 개발 중이기도 합니다. 내연 기관의 시대에는 패스트 팔로워였던 현대차가 전기차에 관해서는 리더의 자리에 서기 위하여 기술적 선진성과 이를 위한 투자에 주저하지 않는 결단을 보여주는 시사점도 벨로스터 N ETCR에는 함께 존재하는 것입니다.

◆ 현대차그룹, 유럽 미래차 시장의 주류로 거듭나다

지금까지는 제품 이야기였다면 이번 이야기는 조금 다른 차원의 전개입니다. 2019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개막 며칠 전, 현대차그룹은 유럽의 충전 네트워크 컨소시엄인 아이오니티(IONITY)와의 투자 합의문에 서명했습니다. 아이오니티는 다임러 그룹, BMW 그룹, 폭스바겐 그룹, 포드 등 유럽 브랜드 또는 유럽에 주요 거점을 가진 브랜드로만 구성된 충전 네트워크 컨소시엄입니다. 그런 아이오니티에 현대차그룹이 비유럽 브랜드로서 최초로, 그리고 유일한 2단계 투자자로 합류하게 된 겁니다. 일본 브랜드들도 해내지 못한 일이라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2019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현장에서 목격한 대조적인 사건 하나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혼다가 선보인 양산형 콤팩트 전기차 혼다 e입니다. 현대차가 선보인 EV 콘셉트 45와 비교할 때 양산차를 선보인 혼다가 한발 앞서 나간 것처럼 보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충전과 관련된 내용에서 승부가 완전히 뒤집힙니다. 혼다는 충전 네트워크를 신속하게 확장하겠다는 계획과 함께 급속 충전이 최대 100kW 수준, 즉 400V 시스템이라고 밝힌 것입니다.

현대차는 혼다에 앞서 진행된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EV 콘셉트 45에 적용된 중요한 기술 사항을 발표했는데 핵심은 바로 초고속 충전이 가능한 800V 고전압 시스템이었던 것입니다. 현대차그룹은 아이오니티 투자를 통해 미래의 전기차에서 필수나 다름없는 800V 고전압 시스템을 적용할 수 있게 되었고 아이오니티는 현재 유럽에서 800V 초고속 충전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전기차 충전 업계의 최강자입니다. 혼다와 현대차의 수준이 전기차에서는 확연히 차별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렇듯 현대차그룹의 아이오니티 투자는 두 가지 커다란 의미를 갖습니다. 첫째는 비유럽 브랜드 최초로 유럽 전기차 업계에 주류로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대중 브랜드 최초로 800V 고전압 시스템을 적용하는 브랜드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전략적인 움직임을 통해 자동차 산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관통했습니다. 그리고 대중들의 머리와 가슴을 움직이는 넓고 촘촘한 그물망을 던졌습니다. 현대차그룹의 비전은 이제 명확하게 드러났습니다. 가장 주목할 점은 미래차 시장의 주류로서의 약진입니다. 현대차는 더 이상 ‘패스트 팔로워’가 아닙니다. 차세대 자동차 산업을 이끄는 리더 그룹에 속한, 당당한 구성원이 된 것입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나윤석

나윤석 칼럼니스트 : 수입차 브랜드에서 제품 기획과 트레이닝, 사업 기획 등 분야에 종사했으며 슈퍼카 브랜드 총괄 임원을 맡기도 했다. 소비자에게는 차를 보는 안목을, 자동차 업계에는 소비자와 소통하는 방법을 일깨우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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