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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차 철밥통 만들어주는 ‘5cm’
기사입력 :[ 2019-10-31 09:58 ]


세계 4위 버스시장 대한민국, 왜 경쟁력은 떨어질까

[전승용의 팩트체크]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특별 규제. 성장기 시장에서는 큰 도움이 됩니다. 외부의 거친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으며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성숙기에 접어든 이후에는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안전한 보호 아래 독과점 혜택을 받다 보면 대외적인 경쟁력은 떨어지고, 결국 도태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런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경차 시장이 좋은 예가 될 수 있겠네요. 차체 너비를 1600mm로 제한한 경차의 ‘전폭 규제’는 수입 경차가 국내 시장에 발을 못 들이게 만들었죠. 일본 경차는 논외로 치더라도, 가장 작은 자동차로 알려진 스마트 포투조차 경차 혜택을 못 받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는 겁니다. 풀체인지를 거치며 너비가 1560mm에서 1663mm 늘어났기 때문이죠.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경차인 피아트 500도 경차 혜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배기량 초과도 문제였지만, 전폭이 1640mm로 40mm 넘었거든요. 아마 이 규제만 없었더라면 1.4리터급 모델이 아니라 0.9리터급 모델을 들여왔을 겁니다. 르노 트윙고(1646mm)와 폭스바겐 업!(1641mm) 등도 전폭 규제로 경차 혜택을 받지 못하다 보니 국내 출시가 어렵고요.

덕분에 우리나라에는 기아차 모닝과 쉐보레 스파크만 경차 혜택을 누리며 팔리고 있습니다(레이는 ‘깍두기’로 치겠습니다). 다만, 안전하게 성장한 이후 급격히 망해가고 있습니다. 한때 월 1만8000대까지 늘어났던 경차 시장은 요즘 9000대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물론, B세그먼트 SUV의 등장으로 피해를 봤다고 핑계를 댈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전폭 규제’로 인한 경쟁의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수입 경차 없이 모닝과 스파크의 탄탄한 독과점 구조가 만들어졌고, 그로 인해 국산 경차의 상품성이 하락했다는 것이죠.



안타까운 점은 이런 ‘전폭 규제’가 작은 경차뿐 아니라 대형 버스에도 있다는 겁니다. 국내 버스 시장 역시 이런 규제로 인해 수입 버스가 들어오지 못하는 상황이죠.

우리나라의 버스 전폭 규정은 ‘2.5m 이하’입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2.55m 이하’를 허용하고 있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5cm 짧은 이 규정을 유지하고 있는 겁니다. 알아보니 호주와 뉴질랜드, 남아공 정도만 2.5m 이하고, 유럽을 비롯해 중국과 브라질, 터키 등은 모두 버스의 전폭을 2.55m까지 허용해 준다고 합니다.

이 5cm가 문제입니다. 얼핏 5cm가 별거 아니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를 맞추려면 새로운 설계가 필요합니다. 차를 다시 만드는 수준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많은 해외 버스 제작사들은 아예 한국 진출을 포기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거고요.



물론, 국내에 판매되는 수입 버스도 있긴 합니다. 만(MAN)트럭과 볼보트럭 등인데요. 이들은 국내 규정에 맞춰 전폭을 2.5m로 줄이는 작업을 한 다음에 출시한 것이라고 합니다. 참 대단한 회사가 아닐 수 없네요. 만트럭은 자사의 버스 섀시에 스페인 보디빌더사가 만든 차체를 얹어 완제품 형태로 국내에 들여온다고 합니다. 볼보트럭의 경우는 수입사인 태영모터스가 볼보의 섀시를 수입한 후 따로 제작한 차체를 얹는 방식으로 국내 2.5m 규정을 맞췄다고 하네요.

당연히 버스 제작비용이 늘어나고 판매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은 기피 시장인 데다가, 힘들게 들어오더라도 경쟁력이 떨어지는 나라가 된 것이죠. 전폭 규제 때문에 국내 업체에 매우 유리한 시장 환경이 만들어졌고, 덕분에 버스 분야에서도 현대기아차의 철밥통이 만들어진 겁니다. 업계에 따르면 버스 시장에서도 현대기아차의 점유율은 80%가 넘는다고 합니다.

현대기아차의 높은 점유율이 불만인 것은 아니지만, 낡은 규제를 바꾸려는 변화는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연간 버스 신규 등록대수는 약 4만6000대로, 세계 4위 수준입니다. 이미 엄청난 시장으로 성장한 것이죠. 오래전 만들어진, 이유를 알 수 없는 ‘전폭 규제’로 수입 버스의 신규 진입을 막는다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규제를 바꿔야 하는 더 큰 이유는 소비자 혜택을 위함입니다. 신규 등록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시내버스인데, 이 시내버스는 서민들을 위한 공공재입니다. 정부에서 시내버스에 매년 3000~4000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이유는 시내버스의 공공재적 성격 때문이죠.

운송 수단으로서의 효율과 편의, 안전, 환경 등을 고루 생각해야 합니다. 일단, 엄격한 규제와 관리·감독이 필요하겠지만, 이보다는 각 플레이어 사이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해 보입니다.

실제로 수입 버스가 하나둘씩 들어오면서 바뀐 것들이 많다고 합니다. 국내 최초로 저상형 3문 버스가 도입돼 승하차가 더 편해졌으며, 더 많은 승객이 탑승할 수 있게 됐습니다. 교통약자 탑승도 더 편해졌고요. 또, 수입 2층 버스를 통해 광역버스의 입석 문제의 해법을 제공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안전과 환경 측면에서도 도움이 됩니다. 유럽의 경우 국내보다 안전 및 환경 규제가 까다롭습니다. 최첨단 안전사양이 탑재되고 친환경 기술이 빠르게 도입되고 있습니다. 주행 성능과 내구성, 품질 등 기술력도 더 뛰어나고요. 해외에 판매되는 다양한 프리미엄 버스들도 들어올 수도 있겠네요.



지금 같은 독과점 구조에서는 더 기대하기 힘듭니다. 특정 회사가 80%의 점유율을 안정적으로 가져가는 시장, 당연히 연구·개발에 소홀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 치열하게 경쟁시켜 더 좋은 차를 만들도록 해야 합니다. 현대기아차가 자극을 받고 변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수입 버스의 진출을 막는 ‘2.5m 전폭 규제’가 바뀌어야겠죠. 큰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만 왜 5cm 짧은지 이해가 안됩니다. 버스 업계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30~40년 전쯤 만들어진 규정이라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 “당시의 좁은 도로폭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고는 하는데, 확실하지는 않다”고 말하더군요. 이어 “어쨌든 결과적으로 수입 버스가 못 들어오는 벽이 됐고, 이로 인해 현대기아차가 큰 혜택을 봤다”고 덧붙였습니다.

버스의 전폭을 5cm 더 길게 허용하는 데는 도로를 다시 만들고, 터널 및 교량 폭을 확장하는 엄청난 대공사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현행 도로 환경을 유지하면서 바꿀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변화입니다. 더 많은 브랜드가 경쟁해서 소비자들이 더 좋은 버스를 탈 수 있는 그런 환경이 만들어지길 기대해봅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전승용

전승용 칼럼니스트 : 모터스포츠 영상 PD로 자동차 업계에 발을 담갔으나, 반강제적인 기자 전업 후 <탑라이더>와 <모터그래프> 창간 멤버로 활동하며 몸까지 푹 들어가 버렸다. 자동차를 둘러싼 환경에 관심이 많아 여기저기 킁킁거리며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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