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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가 안 만들었음에도 반짝이는 삼각별을 단 유일한 차
기사입력 :[ 2019-10-31 15:04 ]


이스데라 임페라토108i, 허락 없이 만들어 허락을 받다

[변성용의 사라진 차 이야기] 파는거 아니라니까… 1969년, 메르세데스-벤츠가 차 한대를 선보인다. C111이라 이름 붙여진 모델은 양산차도, 컨셉트모델도 아닌 미래 기술검증 플랫폼이라는 이례적인 물건이었다. FRP 바디의 상용화나 극단적인 에어로 다이나믹스 실증 목적도 있었지만, 이 차가 제일 활발하게 쓰인 곳은 신형 엔진의 테스트였다. 로터리엔진(이 차의 실험결과로 인해 상용화 계획이 폐기된다) 외에도 신형 승용 디젤 엔진, 터보엔진은 물론 메르세데스-벤츠의 다양한 신형엔진이 이 플랫폼에 실려 주행테스트를 거쳤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기술 진로를 사전에 검증하기 위한 연구용 플랫폼이었을 뿐, 처음부터 팔려고 만든 물건이 아니었던 셈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걸 무척이나 갖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은 걸윙도어의 스포츠카는 누가 보아도 300SL의 1970년대식 재림으로 보기에 충분했다. 신형 V8엔진을 장착한 차가 시속 300km를 넘겨버리자 이거 좀 팔면 안되냐는 원성이 몰려든다. 시험 삼아 받아본 오더가 900대나 쌓이자, 메르세데스-벤츠는 계속 고민을 하다가 원칙대로 가기로 한다.

C111은 끝까지 실험용으로만 남는다. 하지만 이 차에 남은 미련은 10년 뒤 아주 엉뚱한 사건으로 해소된다.



◆ 슈퍼카는 직접 만들어야 제 맛

이스데라(Isdera)의 창업자 에버하르트 슐츠(Eberhard Schulz)는 확실히 별난 사람이었다. 고성능 차를 타고 달리고 싶은 것은 여느 마니아와 다를 바 없었지만, 그가 자신의 드림카를 손에 넣는 방법은 그 누구와도 달랐다. 그냥 차를 만든 것이다. 순전히 차를 만들기 위한 지식을 습득하러 공대 기계공학과에 들어갔고, 학교를 갔다오면 집 뒷마당에서 파이프 프레임과 부품을 붙잡고 씨름을 했다. 처음엔 비틀의 4기통 엔진으로 시작해, 중고 포드에서 뜯어낸 100마력짜리 엔진을 단 차로 시속 220km를 돌파한다. 하지만 그걸로는 성이 안찼다. 수소문 끝에 메르세데스-벤츠의 레이스용 M117 엔진을 구한 슐츠는 차를 거의 새로 만들다시피 한 끝에 마침내 시속 315km에 도달한다.

이미 졸업학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목표를 이룬 그는 미련 없이 학교를 때려 치웠다. 그리고는 무턱대고 벤츠와 포르쉐에 자기 차를 몰고 쳐들어간다. 마지못해 끌려 나온 개발 책임자들이 슐츠의 ‘자작차’를 보고 눈이 동그래졌음은 당연지사. ‘나 좀 데려 가라’는 이 똘끼 충만한 청년의 손을 먼저 잡아챈 곳은 포르쉐였다. 1971년, 그는 포르쉐에 입사한 뒤 7년동안 컨셉트 스튜디오에서 엔지니어로 일한다.



◆ 만들면 되는데?

하지만 슐츠의 목표가 포르쉐 입사였을 리가 만무하다. 대학생 때 혼자 슈퍼카를 만들어버린 사람에게 직장은 그 다음 목표를 위한 발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C111의 발매가 좌절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그의 똘끼가 또 발동한다.

‘그냥 내가 만들지 뭐’

제작방식은 C111과 동일했다. 강철파이프를 용접한 스페이스 프레임에 메르세데스-벤츠의 강력한 V8엔진을 얹고, 외피는 C111과 똑같이 파이버글래스로 만들어 얹었다. 스티어링 시스템은 익숙한 911의 것을 가져다 쓰고 서스펜션은 당시 가장 우수한 것으로 생각되었던 928의 ‘멀티링크’ 시스템을 활용했다. (메르세데스-벤츠가 멀티링크를 만들기 전 이야기다) 미드십 차량인 만큼, 뒷시야가 형편없지만 그 때는 후방 카메라 같은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시대였다. 슐츠는 이 문제를 독특한 방법으로 해결했다. 지붕을 뚫고 후방용 거울을 단 것이다.



차를 만드는 것은 슐츠에게 즐거운 취미 생활이었다. 시간 날 때마다 진행하는 제작은 특별히 서두를 것 없이 진행되지만, 다만 그 과정은 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그는 포르쉐의 현직 엔지니어였으며, 고품질의 자동차 개발과정을 이미 몸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포르쉐의 FR라인업을 모두 디자인한 아나톨 라핀(Anatole Lapine)이 그의 직속상관이었으며, 덕분에 디자인을 현실화하는 과정까지 이해의 영역을 넓혔다. 그의 프로젝트가 소문이 퍼지면서 스폰서를 자청한 유명 튜너의 지원까지 받게 되자 그는 포르쉐를 나와 신차 개발에 전력으로 매달린다. 개발을 시작한 지 5년이 된 1978년, 슐츠의 두 번째 차 CW311이 세상에 나온다. 그리고 그 차는 메르세데스-벤츠를 발칵 뒤집어 놓는다.



◆ 일단 저지르고 보는 거다

메르세데스-벤츠에게 CW311은 어처구니가 없는 짓거리였다. 슐츠와 그의 친구들이 만든 차 앞에는 메르세데스의 삼각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물어본 적도, 허락한 적도 없건만, 멋대로 남의 회사의 상표를 가져다 붙인 배짱에 말문이 막힐 판이었다. 원칙대로라면 그냥 소송을 걸어서 박살을 내놓으면 그만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들 앞에 자태를 드러낸 차는 그냥 자신들이 만든 컨셉트카라고 봐도 될 정도의 무시무시한 완성도를 자랑했다. C111과 이후 선보인 컨셉트카 SL-X을 고스란히 계승한 디자인 속에는 명차 300SL의 현대적인 (‘엣지’의 시대였던 1970년대 기준으로) 해석마저 녹아 있었다. 도어와 엔진커버를 열면 보이는 것은 온통 메르세데스의 현용 엔진과 계기판, 스위치들 뿐. 어딜 봐도 메르세데스가 만든 게 분명한 차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 한가운데 선다. 언제 이런 끝내주는 차를 만들었냐는 찬양이 쏟아졌다. 이제는 이거 우리차 아니라고 말해봤자 꼴만 우스워질 뿐이었다.



메르세데스는 슐츠를 조용히 불러 협상을 매듭짓는다. CW311은 ‘회사’의 공식차량으로 등재하되, 양산은 슐츠의 권한으로 남겼다. ‘회사’는 양산에 필요한 부품을 조달하되, 양산차에는 삼각별을 붙이지 않기로 했다.

메르세데스-벤츠가 손도 대지 않은 차였음에도 메르세데스-벤츠로 등재된 차는 그 전에도, 그 후에도 CW311이 유일했다.



◆ 벤츠가 안 만들었지만 벤츠가 된 유일한 차

CW311이 양산되는 것은 그로부터 꽤 시간이 지난 1984년이 되어서였다. 슐츠는 이스데라(Isdera)라는 독립 디자인/엔지니어링 컨설팅 회사를 창업했고 주문을 받아 차를 만들었다. CW311라는 코드명 대신 시판모델에는 임페라토(Imperator/황제) 108i 라는 새 이름을 붙이며 오픈 모델인 스파이더 036i도 추가된다. 주문은 오직 슐츠 본인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전액을 납부한 뒤 12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이였다. 그래서 10년 동안 만들어진 차는 고작 30대 밖에 되지 않았다. 긴 시간동안 만들어졌기 때문에 메르세데스 V8의 거의 모든 세대를 다 가져다 썼다. 235마력을 내던 초기 엔진은 1993년의 최종판에 이르러서는 410마력의 6리터 AMG까지 확대되며, 최고속도도 310km/h에 이를 정도로 성능도 올라갔다.

임페라토 108i의 단종 후에도 이스데라는 명맥을 이어 나갔다. 메르세데스-벤츠의 V12엔진을 이용한 슈퍼카 코멘다토레(Commendatore) 112i나 V8엔진 2개를 사용한 레트로스타일의 차 아우토반커리어(AutobahnKurier) 116i을 내 놓지만, 둘 다 CW311과 같이 큰 반향을 얻지는 못했다.



이제 ‘이스데라’ 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제법 나이가 있는 마니아 정도다. 이미 예전에 사라지지 않았을까 싶던 브랜드는 뜻밖의 장소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2018년, 이스데라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베이징 오토쇼, 이제 중국자본의 브랜드가 된 이스데라가 새로 내놓은 오랜만의 신차는 예상했겠지만, 2+2시터의 ‘전기차’다. 걸윙도어 말고는 예전의 모습을 찾을 길 없는 디자인을 보며, 한가지는 확실해 졌다.

이스데라는 부활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CW311같은 차를 만드는 일은 영영 없을 것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변성용

변성용 칼럼니스트 :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13년간 객원기자로 글을 썼다. 파워트레인과 전장, 애프터마켓까지 자동차의 다양한 분야에서 업무를 수행하며 자동차를 보는 시각을 넓혔다. 현재 온오프라인 매체에 자동차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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