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음악이 만나 빚어내는 새로운 화음, ‘멜로디 책방’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영화나 드라마에는 OST가 있는데, 왜 책에는 OST가 없을까요?” 선우정아, 수란, 김현우, 박경, 송유빈, 여기에 MC 이특까지. KBS <불후의 명곡>을 찍는다 해도 손색없을 멤버들을 한 자리에 모은 JTBC <멜로디 책방>의 정체는 독서 교양 프로그램이다. 책을 근사하게 설명해 줄 멘토도, 책의 인문학적 효용을 강조하는 강박도 없는 이 기묘한 책 방송은, 두런두런 자신들이 고른 책에 대해 제 생각을 나누고 그를 기반으로 곡을 만드는 또래 뮤지션들의 소소한 즐거움으로 반짝인다.

이승한 평론가는 뮤지션들이 협업해 OST를 만든다는 <멜로디 책방>의 시도가 기존의 독서 관련 프로그램들에 비교해 더 세련되고 민주적인 방송이라 호평했고, 정석희 평론가는 <멜로디 책방>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도 대화에 참여해 한 마디 거들고 싶어 몸이 근질거린다는 극찬을 보냈다. 김선영 평론가는 점차 예전만한 힘을 잃어가는 레거시 미디어인 TV와 책이 만나, 고유의 깊이를 잃지 않으면서도 시청자의 새로운 감각을 깨우고 읽기의 체험을 공감각적으로 확장하는 경험을 이끌어냈다고 평했다. 한 마디로, 셋 다 <멜로디 책방>에 매료되었단 얘기다.



◆ 더 세련되게, 더 민주적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는 당위는 모두가 안다. 지식을 함양하고 정서를 고양시키며 교양을 쌓고… 그러나 당위만으로 책을 읽고 싶어지진 않는다. 그래서 2010년대의 책 프로모션은 과거와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 책의 내용을 재구성한 북트레일러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를 통해 공개하고, 단순한 사인회 대신 저자와의 만남을 진행하고, 관련 굿즈를 만들어 증정하는 등의 다양한 메리트를 제공하는 일련의 흐름이 가리키는 지점은 명확하다. 텍스트 기반의 책 콘텐츠를, 독자가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형태로 확장해 하나의 총체적인 문화 체험으로 재가공하는 것이다.



JTBC 7부작 독서 교양 프로그램 <멜로디 책방>의 방향성 또한 그 연장선상에 서 있다. 젊은 뮤지션들이 매주 한 권의 책을 선정해 책의 OST를 만든다는 <멜로디 책방>의 포맷은, 단순히 책을 소개하고 추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음악으로 확장한다는 점에서 당대의 흐름을 영리하게 반영한다. 가사를 통해 책의 대략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동시에 멜로디를 통해 책의 정서를 극대화시키는 전략은, 과거 MBC <느낌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가 강조했던 ‘양서를 읽어야 한다’는 당위성 전략이나, 최근 tvN이 선보인 <책 읽어드립니다>가 방점을 찍은 ‘똑똑한 멘토의 지적 권위로 인증된 책 추천’ 전략보다 한결 세련됐다.

MC 이특을 포함해 책을 읽고 재해석하는 미션을 받은 뮤지션 전원은 모두 20~30대로, 최근 방송가에서는 비교적 젊은 조합에 가깝다. 일부 지식기반 토크예능이나 교양 프로그램에서처럼 ‘고학력’이나 ‘연륜’을 권위 삼아 멘토 역할을 하는 멤버가 중심이 되어 돌아가는 대신, 비슷비슷한 연령대의 젊은 뮤지션들이 각자의 생각을 위계 없이 나누고 협업하는 모습은 한결 더 민주적이어서 보기에도 편안하다. 7회로 완결이라는 게 아쉬울 만큼.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 보고 있자면 한 마디 거들고 싶어지는 북토크

“친애하는 엄마, 그리고 친애하고 또 친애하는 우리 엄마의 엄마. 그런 뜻에서 ‘친애하는’을 두 번 붙인 거예요. 엄마와 할머니에게 친애를 보내는 그런 내용의 책인데요.” 세대와 세대의 만남이 마치 해류와 해류의 만남처럼 느껴져서 이 책을 골랐다는 선우정아 씨. 담백한 설명이지만 울림이 컸다. 엄마에게 상처를 받았으나 엄마의 엄마와의 이별을 통해 엄마를 이해하고,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 딸의 이야기. ‘할머니’ 대신 ‘엄마의 엄마’라고 표현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3회 방송이 끝나고 ‘친애하고 친애하는’을 주문했다. 장바구니에 1회 선정 도서 ‘잘자 코코’가 있어서 두 권을 함께 배송 받았다. 2회 주제인 ‘어린 왕자’는 몇 년 전 간소하게 살고자 책장을 십 분의 일로 줄였을 때 다행히 살아남았다. 오늘 네 번째 방송을 보고나니 ‘키다리 아저씨’ 또한 다시 보고 싶어졌다. 출연자들의 서로 다른 해석과 감성이 어우러져 흥미를 유발시킨다. 맞다, 기억난다. 이제는 사라진 ‘싸이 월드’ 초기에 동화책이 아닌 ‘키다리 아저씨’ 읽기 열풍이 불었었지. 당시에 도처에서 댓글로 북토크가 이루어졌었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볼 수 없다.



선우정아 씨가 퀴즈 코너 ‘멜퀴’에서 3연승을 했다. 본인이 고른 책이야 그렇다 쳐도 다른 출연자가 선정한 책들까지! 어떻게 저런 걸 다 기억하지? 문제 사전 유출 의혹을 제시하며 옥신각신하는 출연자들. 4회 만에 꽤 가까워졌다. 음악과 책이 그리 만들었다. 특히 ‘어린 왕자’ OST ‘시들어버린 꽃’을 주관한 막내 송유빈에게는 갈 길이 머나 먼 연예계 생활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소중한 인연이자 기회이리라. JTBC <멜로디 책방>, 방송을 보고 있으면 한 마디 거들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 해진다. 시청자이자 애독자들의 소감을 더하면 어떨까?

정석희 방송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 뉴미디어 시대의 ‘책방’

책과 이야기 그리고 음악의 만남을 시도했던 최고의 방송 프로그램으로 KBS <낭독의 발견>을 떠올릴 이들이 많을 것이다. 2003년 첫 방송을 시작해 2012년 종영한 이 프로그램은 활자를 소리내 읽는 행위와 음악 등의 콜라보를 통해 책의 공감각적 체험 가능성을 극대화한 방송이었다. “묵독이 주가 되는 디지털 시대”에 낭독의 의미를 재발견하겠다는 기획의도에서도 알 수 있듯, 프로그램 방영 시기는 TV가 디지털 매체와 대등한 경쟁을 벌이던 때다. 비록 젊은 층이 빠르게 모바일로 이동하고 있었음에도, 아직은 쟁쟁했던 지상파 방송의 위상과 품격을 보여준 사례가 <낭독의 발견>이다. 2010년대 들어 종편이 개국하고 뉴미디어가 급성장하는 등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지상파 방송이 점차 힘을 잃기 시작한 시기와 이 프로그램의 종영 시기가 맞물린 것도 자연스럽다.



그런 의미에서 이달 초 방영을 시작한 JTBC <멜로디 책방>은 같은 운명에 처한 방송과 책의 생존에 대한 고민이 담긴 프로그램이다. 방송과 마찬가지로 뉴미디어에 밀려 설 자리를 잃어가는 책은 그동안 ‘e-Book’과 ‘오디오북’ 등의 형태로 분화하고 팟캐스트와 유튜브 등과의 협업을 통해 생존을 모색해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책이 지닌 체험의 가능성은 어쩔 수 없이 제한되곤 했다. <멜로디 책방>은 종합엔터테인먼트로서 방송의 장점을 활용해 그 제한을 넘어선다. 책 고유의 울림이 뮤지션들의 해석을 통해 음악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은, 책방으로도 음방으로도 흥미롭고 재미있다. 음악의 완성도도 높지만, 그 이전에 지식인 패널 위주의 기존 ‘책방’과 또 다른 방향의 해석을 시도하는 뮤지션들의 시선이 신선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소설 <친애하고, 친애하는>을 소개한 에피소드다. 이 책을 고른 선우정아가 주인공의 무대 디자이너라는 직업과 뮤지션으로서의 무대를 연결지어 자신만의 언어로 읽어낸 장면은, 같은 창작자이자 독자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지닌 이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흥미로운 시선이었다. 요컨대 <멜로디 책방>은 두 전통미디어가 함께 만나 고유의 깊이를 잃지 않으면서도, 시청자의 새로운 감각을 깨우고 읽기의 체험을 공감각적으로 확장하는 힘을 보여준다.

김선영 칼럼니스트 herland@naver.com

[영상·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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