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통해 본 몸으로 웃기는 예능의 부활 가능성

[엔터미디어=정덕현] tvN 새 예능 프로그램 <돈키호테>에는 ‘미치거나 용감하거나’라는 표현이 붙었다. 여러모로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둘시네아를 구하기 위해 풍차를 향해 달려들었던 인물. 보는 관점에 따라 그건 미쳤거나 혹은 용감한 행위로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돈키호테>의 스토리텔링을 적극적으로 가져온 이 예능 프로그램은 그래서 프로그램 소개에서도 소설 <돈키호테>의 대사 중 하나를 가져온다. “꿈꾸는 자와 꿈꾸지 않는 자, 도대체 누가 미친 거요?” 그럴 듯한 설정이다. 하지만 막상 <돈키호테>를 들여다보면 그것이 어떻게든 과거 우리가 봐왔던 몸으로 웃기는 예능프로그램과는 다르다는 걸 애써 강변하려는 안간힘처럼 보인다.



많은 이들이 첫 회만 슬쩍 보고도 이건 MBC <무한도전>의 시작점이었던 <무모한 도전>을 떠올린다. 삽질로 포크레인과 대결을 벌이고, 버스와 달리기를 하며, 무참히 깨지는 모습을 통해 큰 웃음을 주었던 예능 프로그램. 처음엔 무모했던 도전들이지만 그것이 성공하진 못해도 최소한 웃음을 주었다는 점에서 박수 받으며, 나아가 그 땀들이 모여 도전의 가치를 세워줬던 프로그램. 그래서 <무한도전>이라는 레전드 예능의 밑거름이 된 예능.

실제로 <무모한 도전>과 비슷하다는 반응들에 대해 손창우 PD는 애써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는 김태호 PD와 5년 간 함께 <무한도전>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 ‘감성’이 비슷하게 전달된 것일 수 있다고 했고, 특히 “어떠한 종목에 도전한다는 형식이”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절대 똑같지 않다고 말씀드릴 수 없지만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잘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물론 <무모한 도전>과 살짝 다른 지점들이 존재한다. 이를 테면 ‘꿈잣돈’처럼 이들이 도전에 성공할 때마다 모아 꿈을 위해 필요한 이들에게 전해준다는 장치가 그렇다. 하지만 그런 장치 하나로 이 유사함이 다르다고 말하긴 어렵다. 육상 꿈나무들과 계주 대결을 벌이고 자동화 로봇과 즉석밥 포장 대결을 벌이는 그 형식은 <무모한 도전>, <무한도전>의 연장선이다.

멤버 구성은 <무한도전>과는 사뭇 다르지만 어딘지 <1박2일>의 구성을 닮았다는 점에서 리얼 버라이어티의 공식적인 팀 캐릭터 구성이 아닌가 싶다. 김준호가 맏형으로 들어갔고 조세호와 이진호가 웃음 담당 개그맨으로서 참여했으며 저세상 텐션을 보여주는 배우 송진우와 이 프로그램의 얼굴담당이자 젊은 피인 이진혁이 포진했다. 맏형을 세워 찧고 까부는 설정 개그가 기본으로 깔려 있고 분량 욕심을 내보이는 조세호와 이진호가 별 노력 안해도 존재감을 보이는 막내 이진혁과 묘하게 세워지는 대결구도가 있으며, 여기에 의외의 예능감을 선보이는 송진우가 조커처럼 포진했다. 도전은 이들의 캐릭터를 만들고, 그 과정은 이들의 성장담을 그려낼 것이다. 리얼 버라이어티 시절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그렇듯이.



이렇게 보면 <돈키호테>는 대놓고 예전 몸으로 웃기고 부딪치는 예능을 내세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리얼리티쇼 즉 관찰카메라의 시대 깊숙이 들어와 이제는 캐릭터쇼가 한 물 간 것처럼 여겨지는 지금 어째서 <돈키호테>는 과거로 회귀한 것일까. 이건 퇴행일까 아니면 빠른 변화에서 오히려 과거가 그리워지는 복고 현상일까.

어찌 보면 관찰카메라 시대로 들어오면서 웃음의 강도는 상당 부분 약화된 게 사실이다. 즉 웃기기보다는 좀 더 진지해진 부분에 무게를 두는 예능의 시대랄까. 예능도 그런 진지함을 담아낼 수 있다는 외연의 확장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러면서 점점 줄어든 것이 별 생각 없이 한없이 웃을 수 있는 그런 예능 프로그램이다. 재미가 웃음만이 아닌 다양한 영역으로 넓혀지면서 상대적으로 웃음의 영역은 축소되었다는 것.



퇴행이든 복고든 <돈키호테>가 지금 기능하는 지점은 바로 이 결핍이다. 그게 무엇이든 웃음을 줄 수 있다면 온 몸을 던지는 그런 예능이 지금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결핍. <무한도전>이 역사 속에서 사라졌고 <1박2일>은 다시 돌아온다고 하지만 아직은 빈자리다. 웃음을 주겠다는 그 진정성이 통할 수만 있다면 충분히 승부를 걸 수 있다 여겼을 법 한 상황이다.

다만 그토록 오래도록 해왔던 <무한도전>의 많은 스토리텔링들과의 비교를 <돈키호테>가 어떤 새로움으로 넘을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 된다. 무언가 새로운 포인트나 소재들이 등장한다면 시선을 끌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복고가 복제가 되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니 말이다. 진정성은 알겠지만, 그걸 얼마만큼 신선하게 끌어갈 것인가는 이 프로그램의 중대한 숙제로 남았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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