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net의 자랑 ‘악마의 편집’, 실제로 악마들이 조작한 결과였다니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Mnet(엠넷)이 자랑하는 ‘악마의 편집’이 실제로 악마들이 편집한 결과로 드러났다. 아이돌 육성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국민프로듀스라는 개념을 만든 <프듀X> 시리즈 제작진이 <프로듀스X101>의 생방송 경연에서 시청자 투표 결과 조작 혐의로 안준영 PD와 김용범 CP가 구속 기소됐다. 게다가 금전을 주고받은 정황도 있어 배임수재 혐의도 추가 적시됐다는 보도와 함께 접대, 증거 인멸 시도 등의 의혹도 함께 제기됐다. 우리나라 방송 콘텐츠·엔터테인먼트 사상 최악의 스캔들이다.

구속된 둘은 <프로듀스101>, <프로듀스48>, <프듀X>까지 4시즌을 진행하면서 시청자 투표 시스템에 ‘국민 프로듀서’라는 이름을 붙여 이른바 ‘국프’ 열풍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다. 또한 뻔한 성공스토리에 식상해진 일반인 오디션에서 보다 치열한 경쟁과 육성 코드가 들어간 아이돌 오디션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일명 ‘악마의 편집’이란 방법론을 완성해 오디션쇼의 명가로서 엠넷의 브랜드 가치를 높인 채널의 핵심인력이기도 하다.

비교적 낮은 시청률임에도 <프듀> 시리즈가 줄곧 화제성 1위를 차지하고 워너원 등이 음원차트를 석권하는 것은 물론 모든 예능에서 섭외가 들어올 정도로 방송가를 뒤집어놓을 수 있었던 건 국민프로듀스라는 개념을 내세운 팬덤 콘텐츠이자 비즈니스로 성공했기 때문이다. 일본식 아이돌 육성 코드를 케이팝에 접목시키고 꽤나 솔깃한 스토리텔링으로 브랜드를 만들면서 팬덤은 공고해졌다. 시청자들은 완성된 상품을 즐기는 것을 넘어서 함께 성장하는 과정에서 더 큰 기쁨을 누렸고 방송을 통해 현실의 가치를 창조하는 여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프듀> 시리즈는 한편의 방송을 넘어서 실제 출연자들의 삶과 큰돈이 걸린 엔터테인먼트 프로젝트였다.



그래서일까. <프로듀스X>의 생방 경연이 마치자마자 조작 논란이 거세게 불붙었지만 제작진과 방송사는 해명 대신 시리즈 역사상 최장기인 5년 계약을 맺어버렸다. 관련한 공식입장은 제작진이 법원 출두하는 지난 5일 처음으로 냈다. 무색무취한 사과문 속에는 제작진 뒤로 발을 뺀 속내가 담겨있었다. 경찰은 <프로듀스X>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전 시즌과 <아이돌학교> 등 엠넷 오디션 프로그램 전반에 걸쳐 조작 정황을 포착, 수사 범위를 확대했다는데도 말이다. 엠넷의 이런 태도를 보면 제대로 활동하기 전부터 불명예 수식어를 갖게 된 엑스원 멤버부터 당장 100원의 유료 문자에 대한 보상부터 열렬히 입소문을 내고, 조회수를 올려준 그동안 보내온 팬심에 받은 상처까지 답이 없는 상황이다.

엠넷이 만든 오디션쇼는 우리 예능사는 물론 대중문화계에 큰 명암을 남겼다. <슈퍼스타K>를 통해 새로운 등용문을 만들고 음악성과 가창력을 중시하는 문화를 정착시켰고 세계적 시류와 늘 거리를 두며 만년 하위 장르로 머물던 힙합을 1020세대의 또래문화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JTBC와 YG의 대국민 기만극 <믹스나인>을 한번 겪은 입장에서 이번 사건이 터지니 우리나라 방송사와 제작진이 과연 국민프로듀스 개념의 오디션쇼를 제작할 수 있는 도덕적 역량이 있는지 근본적인 회의가 든다.

<슈퍼스타K> 시리즈로 스타 제작자가 된 한동철 PD가 YG로 건너가 만든 <믹스나인>은 마찬가지로 출연자의 데뷔라는 목표와 전국민 프듀 개념을 그대로 도입했다. 핵심은 중소 기획사 소속 연습생들에게 ‘기회’를 제공한다는 콘셉트였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각도를 평평히 하겠다는 공정성을 내세웠지만 시청률이 좋지 못하자 말이 달라졌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며 모든 약속과 책임을 없던 일로 덮었다. <프듀> 시리즈는 아예 치열한 경쟁을 내세웠다. 중화제로 내세운 게 ‘국민’이었다. 국민의 선택. 그런데 그렇게 들먹이던 국민들이 만든 이야기 자체가 사기일 확률이 매우 높아졌다.



공정성 하나로 나라가 난리고 세대와 성별로 나뉘어 참호전을 펼치는 오늘날, 엠넷은 갑질과 사기와 기만과 착취로 청춘과 꿈과 열정과 응원을 짓밟았다. 방송 중엔 그렇게 참여를 독려하더니 논란이 발발하자 시청자 의견에 무시로 일관했다. 그리고 이제는 제작진의 비위로 몰고 가는 꼬리 자르기 형세다. 우리나라 굴지의 콘텐츠 기업으로 문화를 가장 잘 안다면서 보여주는 모습이 꼴불견이다.

공정한 사회를 염원하는 이 시대에 공공재라는 방송에서 생방송 사기극이 벌어졌다. 공정함은커녕 약속과 룰과 신뢰가 너무 쉽고 아무렇지 않게 훼손됐다. 너무나도 대놓고 벌어진 기만극에 세상 믿을 게 없다는 절망을 시청자들에게 남겼고, 최선을 다해서 도전했던 참가자들은 어린나이에 부조리와 적폐가 만연한 우리 사회의 현실에 강제로 무릎을 꿇는 경험을 했다. 무엇보다 아이돌 팬덤의 절대적 다수를 차지하는 어린 세대들에게 현실의 차가움과 어른들 돈벌이의 비정함을 이렇게 보여준 것이 슬프다.

<프듀>시리즈는 단순한 오디션쇼가 아니라 워너원, 아이즈원 등의 초히트 그룹을 만들어낸 엔터테인먼트 사업이었다. 최소한 사운이 다할 때까지 오디션쇼는 손을 땐다든가, 방송 콘텐츠를 넘어선 케이팝 비즈니스에선 물러난다는 정도의 각오는 밝히고 그동안 끼고 있던 꿀단지를 이제는 내려놓는 최소한의 양심이 필요하다.

대기업이 저지르는 대규모의 경제범죄가 별 탈 없이 마무리되는 선례가 워낙 많다보니 회사는 시간의 뒤에서 기회를 엿볼 것이다. 이미 그러고 있다. 그러나 방송 콘텐츠 소비자들에게는 특히 열렬히 응원했던 팬들의 마음 한 구석에는 우리 시대의 씁쓸함이란 자화상이 표구되어 걸렸다. 아이들의 재능과 열망과 순수한 애정으로 비즈니스를 했던 어른들은 최소한의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문화를 잘 아는 기업가들의 생각이 너무나 궁금하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net,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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