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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기록’ 그랜저에게 축하 인사는 잠시 유보하는 이유
기사입력 :[ 2019-11-08 09:36 ]


그랜저, 페이스리프트? 풀 체인지? 아이고 의미 없다!

[나윤석의 독차(讀車)법] 말들은 많았습니다. 특히 앞모습을 놓고 호불호가 확실히 갈렸습니다. 그렇지만 결과는 역시 대박이네요. 사전 예약 두 시간 만에 9천대를, 그리고 하루 만에 1만7천대를 넘기면서 ‘대한민국 신기록’을 경신했답니다. 현대차 그랜저 이야기입니다. 그랜저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짚어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커다란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오늘은 하나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은 모델 변경의 정의, 즉 페이스리프트냐 풀 체인지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번 그랜저는 페이스리프트도 풀 체인지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처진 얼굴만 들어올리는 성형 수술(페이스리프트)이라고 하기에는 변화가 너무 크고, 기존의 플랫폼을 개량하여 사용하기 때문에 세대를 바꿔 이름만 빼고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는 풀 체인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마이너체인지 쪽에 가깝습니다. 뼈대는 이전 모델을 사용하지만 미용 성형만이 아니라 기능적인 부분에도 상당한 변화가 더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이제는 이런 거 구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이제는 신모델 출시 후 3년 후 페이스리프트(혹은 마이너체인지) – 7년 후 신모델 출시의 모델 라이프사이클 매니지먼트라는 원칙이 거의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그 주범(?)은 3년차의 모델 신선도 향상 프로그램이 페이스리프트는 물론 마이너체인지의 수준을 넘어서는 과도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추세는 유럽 브랜드들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대략 5년마다 새 모델이 나오는 일본 브랜드들에 비하여 유럽 브랜드들은 한 모델의 수명이 7년 정도로 길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1세기 들어서 자동차에 전기 전자 장비가 대폭 적용되면서 기능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그 발전 속도 역시 상상을 초월하게 빨라졌습니다.

3년만의 성형수술로는 소비자들의 입맛을 잡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전의 페이스리프트에 해당하는 변화가 이제는 매해 다가오는 연식 변경에 적용되어야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럽 브랜드들은 3년만의 모델 회춘 프로그램을 더 큰 폭으로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독일 프리미엄 3사들은 모델 중간 변경 시에 디자인은 물론 파워트레인을 교체하는 등 그 폭을 점점 넓혔습니다. 그리고 폭스바겐은 골프 5세대의 중간 변경 모델을 아예 골프 6세대로 부르기로 결정합니다. 이것이 풀 체인지와 중간 변경의 경계를 혼란스럽게 만든 첫 사례입니다.



이번 신형 그랜저는 그 정도가 더 심합니다. 디자인이 안팎으로 완전히 달라진 것도 큰 변화이지만 더 큰 변화가 있습니다. 바로 휠베이스가 늘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거의 차를 새로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독자들 가운데에는 어차피 앞바퀴 굴림 모델이니 휠베이스를 늘려도 파워트레인에는 영향이 없으니까 괜찮은 것이 아니냐고 하실 분이 계실 겁니다. 하지만 휠베이스가 늘어나면 차체에서 가장 큰 철판인 사이드 패널이 바뀝니다. 프레스로 찍어내는 가장 큰 부품인 사이드 패널이 바뀐다는 것은 자동차 생산용 툴 가운데 가장 비싼 대형 프레스 금형이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커다란 투자인 것이지요.

따라서 이번 그랜저 정도의 변화라면 이미 투자비용 측면에서도 페이스리프트라고는 부르기 어려워졌습니다. 아마도 외장 패널 가운데 공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앞 도어 정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내장재의 변화는 디자인이 완전히 달라진 만큼 더 큰 것으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속으로 들어가 보면 그 차이는 감내할 수준일 겁니다. 왜냐하면 플랫폼은 기존의 것이므로 섀시 부품들 가운데에는 물려받은 것들, 최소한 설계 사상에 큰 변화가 없는 것들이 많을 겁니다. 새로운 부품과 모듈들도 기존의 그룹 모델들과 공유하는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파워트레인은 K7, 전기 전자 편의 장비들은 쏘나타 등과 많이 공유합니다.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이름만 빼고 다 바뀐’, ‘실질적인 풀 체인지 모델인’ 그랜저 페이스리프트는 눈에 보이는 부분은 풀 체인지라고 부르기에 부족하지 않습니다. 디자인 성격이나 차체 크기 등이 근본적으로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공유하거나 물려받은 부분이 작지 않으므로 풀 체인지 수준은 아닙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완전히 바뀐 듯, 하지만 속은 그 정도는 아닌 그랜저가 풀 체인지 완전 신모델보다 더 폭발적인 반응으로 대박을 쳤습니다. 그렇다면 자동차 제작사로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큰 투자가 필요한 풀 체인지 및 플랫폼 교체보다 가시적인 부분에 효율적으로 투자하는 기능과 디자인 변화에 집중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미래차에 대한 큰 투자 수요가 기다리고 있고 수익성이 불량한 전기차의 판매가 늘어나는 고달픔을 겪고 있는 현실에서는 매우 매력적일 것입니다.



일단 시승을 해 볼 때까지는 평가는 유보합니다. K7에서 느꼈듯이 대부분의 보편적인 소비자들에게는 크게 부족함이 없는 기본기를 가진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휠베이스를 늘린 연장형 플랫폼들은 기본기에 위험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판단을 유보하는 겁니다.

만일 그랜저가 기본기까지 잘 익혀냈다면, 디자인의 호불호를 이기고 사전 구매에서 대박을 친 것 이상으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고 축하해줄 수 있을 겁니다.

시승이 기대됩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나윤석

나윤석 칼럼니스트 : 수입차 브랜드에서 제품 기획과 트레이닝, 사업 기획 등 분야에 종사했으며 슈퍼카 브랜드 총괄 임원을 맡기도 했다. 소비자에게는 차를 보는 안목을, 자동차 업계에는 소비자와 소통하는 방법을 일깨우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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