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팍한 5형제’, 왜 이 시시껄렁한 얘기를 길게 풀어낼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토크쇼의 시대는 지났다. 특히 여러 출연자들이 앉아서 연예계 이야기나 에피소드로 수다를 떠는 형식의 토크쇼는 대세 예능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다. 킬링타임용 웃음을 재미의 원천으로 내세우다보니 스토리텔링의 재미도, 정서적 감흥도, 일상에 도움이 되는 효용 측면에서도 큰 장점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웃음과 게스트의 에피소드에서 찾는 재미는 토크쇼의 고전적인 소재다.

그런데 JTBC 목요예능 <괴팍한 5형제>는 역으로 그 어려운 틈새를 비집고 들어간다. 메인MC가 진행롤을 맡고 사전 취재로 구성한 대본을 바탕으로 에피소드를 풀어내는 일반적인 형태를 벗어난 대신 동성친구들끼리 나눌법한 스몰토크를 지향한다. 출연진도 서장훈, 김종국, 박준형 등 이미 여러 예능을 통해 자기 캐릭터를 갖춘 예능 선수들과 함께 최근 부쩍 밀어주고 있는 업텐션의 이진혁과 세븐틴의 부승관이 고정MC로 합류해, 20~50대 남성으로 출연진을 구축했다.



이야기의 주제나 웃음 포인트도 출연자의 개인사나 개인기가 아니다. 메인 콘셉트는 ‘괴팍한 줄 세우기’다. 평범한 생활 속 주제부터 까다롭고 별난 주제까지 뭐든지 줄 세우며 논쟁하는 토크쇼라는 설명처럼 출연자들은 주어진 주제에 맞춰 각자의 견해에 따라 순위를 매기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를테면 박찬호, 박지성, 박세리, 김연아, 서장훈 중 우리나라 최고의 스포츠 스타 순위는 어떻게 될지, 외모, 젊음, 건강, 돈, 사랑 중 가장 이루고 싶은 소원을 줄 세운다든지, 여행, 영화보기, 노래방가기, 매일 연락하기, 술자리하기 중 내 애인과 남사친의 참을 수 없는 행동의 순서를 정하는 따위다.

친구들끼리 대화하듯이 놀 수 있는 수더분한 이야기에 가깝다. 출연진들도 리얼버라이어티처럼 서로 다른 색을 뽐내는 캐릭터플레이에 집중한다. 제작발표회에서 “정말 편안하고 흐뭇하게 미소를 띠며 편하게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란 서장훈이나 “많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들로 형 동생들이 모여서 재미있게 촬영하고 있다”고 밝힌 김종국의 말이 나온 배경이다. 제작진이 미리 조사한 앙케이트 결과와 일치하는 정답을 찾아가는 것보다 출연자들이 순위를 정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공감하기도 하고 때로는 갑론을박을 펼치는 과정에서 재미를 찾는다.



그런데 3회까지 지켜보면서 느낀 문제는 주제의 품에 비해 너무나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한다는 데 있다. 말 그대로 소소하고 시시껄렁한 이야기, 친구들끼리 나눌법한 스몰토크를 지향하면서 정작 방송 시간은 관찰 예능만큼 잡아놓았다. 주제가 피부에 와 닿는다거나 강연예능처럼 들어볼 내용이 있다든가, 찬반이 명확히 갈리는 논쟁도 아닌 이야깃거리를 1시간 20분 동안 몰입해 듣는다는 것은 시청자 입장에서 굉장히 도전적인 미션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흥할 법한 시시콜콜한 주제로 긴 시간 수다를 떨자고 하니 지루해질 수밖에 없다.

정규 편성하면서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괴팍한 5지선다’라는 2부 코코너를 마련했다. 브아걸이 쎈 이미지 때문에 후배들과 친해지고 싶다는 고민이나, 허영지, 솔비가 유튜브에서 살아남는 법 등 게스트가 고민을 내놓으면 출연진이 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내용이다. 기획의도인 줄세우기와 큰 상관없는 이 코너는 홍보성 출연, 게스트의 에피소드에 의존하는 토크, 벌칙 등으로 오히려 나름의 특이점까지 지워버린다. 김종국은 “예능에서 가짜로 하면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 눈에 보여서 걸린다”고 말했는데 이 코너가 딱 그런 예다. 방송 분량을 채우기 위해 덧붙였을 거란 강력한 의심이 드는 흔한 토크쇼의 요소들을 죄다 모아 놓은 사족이다.



틈새를 노리는 전략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는 형님>의 색깔이 물씬 풍겨나는 서장훈을 중심으로 박준형의 엉뚱함과 <런닝맨>에서 보여준 김종국의 모습 등 익숙한 캐릭터들이 익숙한 활동반경 내에서 활약한다. 분명 새로운 조합인데 신선함이란 특별한 시너지가 발생하지 않는 이유다. 그런데다 지엽적인 토크를 지향하는 기획이 여기에 얹히니 열심히 할수록 뭔가 자연스럽지 않는 분위기가 더 짙게 피어오른다. 이는 곧 왜 보고 있는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모르겠는 혼돈의 상태로 이어진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선명함을 내세울 수 있는 줄세우기 토크 하나로 승부를 보는 거다. 효과적인 승부를 위해선 토크 주제의 성향에 걸맞게 시간을 대폭 줄여야 한다. 유튜브의 시대에, 예능의 앞길을 고민한다는 오늘날, 예능의 방영시간은 점점 더 길어지는 추세다. 사람들의 호흡은 점점 짧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콘텐츠의 질이나 시청자 편의를 위한다기보다 관례나 편의상의 선택에 따른 결과가 아닐까. 기획의 성격과 상관없이 점점 더 늘어지는 예능의 길이는 기회가 아니라 독일 뿐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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