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드 업!’, 우리 개그엔 이런 새롭고 과감한 시도가 필요하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KBS가 2부작 파일럿으로 내놓은 <스탠드 업!>은 여러모로 올해 KBS가 내놓은 그 어떤 예능 프로그램보다 독보적인 시도로 보인다. 먼저 KBS에서 19금을 내걸은 예능 프로그램을 내놨다는 점이 그렇다. 사실 우리네 예능 프로그램에서 19금을 건다는 건 모험에 가깝다. 일단 사전 광고나 홍보가 제한적이다. 방송 규정상 10시 이전은 청소년 보호시간대로 적용되어 방송도 홍보나 광고도 할 수가 없다. 그러니 요즘처럼 방송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프로그램 자체를 알리는데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스탠드 업!>이 19금을 걸게 된 건,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하게 느껴지는 스탠드 업 코미디 장르에 조금 더 날개를 달아주기 위함이다. 스탠드업 코미디는 말 그대로 마이크 하나만 갖고 입담과 유머로 승부해야 하는 장르다. 그러니 이 눈치 보고 저 눈치 보며 정작 할 얘기를 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은 여러 모로 이 장르의 족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와 달리 스탠드 업 코미디가 주류 장르로 소비되고 있는 미국 같은 경우에는 가감 없고 수위 높은 농담들이 거의 제한 없이 무대에 올려진다. 때론 인종 차별적인 소재들까지 등장하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지나친 도덕적 잣대를 드리우진 않는다. 물론 지나치게 과한 수위는 문제가 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웃음을 위한 하나의 농담이라고 주로 받아들인다. 때론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과감하지만 직설적인 이야기가 주는 금기를 넘는 부분이 주는 카타르시스 또한 스탠드 업 코미디가 주는 매력 중 하나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니 19금 수용은 <스탠드 업!>으로서는 도전이면서 어쩌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었을 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농담이 수위를 오고가지만 그것이 하려는 메시지의 목적이 누군가를 비하하거나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오히려 비웃거나 뒤트는 것일 때 이런 수위 넘기도 용인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스탠드 업!> 첫 회에 출연한 장애인 코미디언 한기명의 무대는 여기에 대한 정답지처럼 여겨졌다.

<개그콘서트> 같은 무대개그에서 장애인을 흉내 내면 곧바로 ‘장애인 비하’라는 논란이 달라붙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한기명은 스스로 장애인임을 하나의 유머 코드로 승화시켜버린다. “제가 하는 코미디를 보고 저거 웃어야 해? 안 웃을 수도 없고. 안 웃으면 장애인 차별하는 것 같고 웃지 않으면 장애인 비하하는 거 같잖아?” 기막힌 뒤집기가 아닐 수 없다. 장애인 소재를 가져와도 이렇게 통쾌할 수가 있다니.



<스탠드 업!>에서 주목된 건 기성 연예인들보다 지금껏 방송에서는 많이 보지 못했던 한기명이나 터키에서 귀화한 기자 알파고, 2016년 개그맨으로 데뷔한 케니 같은 인물들이다. 특히 알파고는 외국인이 바라본 한국인의 특이한 문화를 콕콕 짚어 꼬집는 걸로 빵빵 터지게 만들었다. 귀화하기 위해 본 시험이 너무나 어려웠다며 그 기출문제를 예로 든 알파고는 이 시험을 여기 있는 분들이 보면 대부분 떨어질 것이라고 말해 장내를 뒤집어 버렸다. 또 국뽕에 빠져버린 자신의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보여준 풍자 역시 스탠드 업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줬다.

케니는 스탠드 업 코미디 장르가 미국에서 온 거라는 걸 끄집어낸 후 그래서 그들처럼 반말로 할 거라는 설정을 가져오는 것만으로도 관객의 귀를 집중시켰다. 존댓말을 쓰는 우리의 언어습관에 담겨진 이중적인 면들을 가져와 때론 존댓말로 화를 내는 여자친구의 사례를 들려주고,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서 쓰는 인터넷 강사의 얘기로 큰 웃음을 주었다.

<스탠드 업!>이라는 참신한 파일럿 방송이 시도된 건 아마도 최근 슬슬 불어오는 스탠드 업 코미디 장르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 때문으로 보인다. 넷플릭스를 통해 최근 공개된 <박나래의 농염주의보>나 작년 공개됐던 유병재의 <블랙코미디>가 좋은 반응을 얻었고, 최근 화제가 됐던 영화 <조커>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조커>의 흥행은 스탠드 업 코미디가 굉장히 힙한 장르로 다가오게 만들었다.



여기에 더해진 건 유튜브 등을 통해 이미 젊은 세대들이 해외의 스탠드 업 코미디를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시사 풍자 프로그램 <더 데일리 쇼> 진행자로 유명한 트레버 노아나 특유의 관찰력으로 아이러니한 세상을 풍자해내는 서배스천 매니스캘코, 유튜브를 통해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러셀 피터스 같은 스탠드 업 코미디 배우들이 그들이다. 이런 소구가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시도가 적었던 우리도 스탠드 업 코미디라는 장르가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여겨지고 있다.

KBS가 내놓은 <스탠드 업!>은 물론 파일럿이기 때문에 정규 프로그램으로 정착할지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과감하고 참신한 시도들이 필요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것이 현재 오랜 정체기를 겪고 있는 우리네 개그와 코미디 계가 다시금 부활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일 테니 말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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