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termedia 주요뉴스

자존심 강한 독일 심장에 깃발 꽂은 테슬라
기사입력 :[ 2019-11-20 09:48 ]


테슬라가 베를린을 유럽 시장 교두보로 삼은 까닭

[이완의 독한(獨韓) 이야기] 지난 12일, 독일에서는 한 자동차 전문지가 주관하는 시상식이 열렸다. 매년 새로 출시된 자동차를 대상으로 엔지니어, 디자이너, 레이서는 물론 방송인까지, 여러 그룹이 참여해 분야별 최고의 차를 선정하는 아우토빌트의 ‘황금 스티어링휠 어워드’였다.

아우디와 BMW의 수석 디자이너, 최고 기술 이사, 기아와 토요타 수입 법인 대표들 모습이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폭스바겐 그룹 회장 헤르베르트 디스 외에도 아우디, 스코다, 부가티 브랜드를 이끄는 CEO들도 함께했다. BMW 신임 회장 올리버 칩세는 물론 재규어/랜드로버 회장도 트로피를 받기 위해 현장에 있었다. 내로라하는 업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것.

그런데 이날 가장 큰 관심을 받은 이는 미국에서 날아온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였다. 그는 앙증맞은 트로피를 손에 쥔 채 수상 소감을 전하던 중 테슬라 공장 기가팩토리가 베를린 근교에 들어선다는 깜짝 발표를 했다. 탄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고 진행자들도 “이거 (대단한) 뉴스군요!”라며 놀라워했다. 자동차 경제지 아우토모빌보헤는 ‘일론 머스크가 (독일에) 폭탄을 떨어뜨렸다.’고까지 했다.



◆ 왜 베를린이었나

일론 머스크는 수년 전부터 자신들의 유럽 전기차 생산 기지 마련을 이야기해왔다. 프랑스, 북유럽, 독일 등, 여러 유럽 국가가 관심을 가졌다. 유력한 후보지 중 하나로 영국도 거론됐지만 브렉시트로 기가팩토리 유치는 물거품이 됐다. 독일이 유력하다는 소식이 계속 전해졌고, 여러 주가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베를린과 맞닿아 있는 브란덴부르크주의 그륀하이데(Grünheide)에 기가팩토리가 들어서는 것으로 결정됐다.

외신들은 자동차 산업과는 거리가 있는 베를린을 선택한 것을 두고 나름의 분석을 내놨다. 베를린이 e-모빌리티(이동성) 중심지가 될 거라는 가능성을 보고 투자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장밋빛 전망만으로 5조 이상을 투입한 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베를린을 선택하게 만든 현실적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우선 베를린은 독일의 수도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독일 도시 중 거주 인구가 가장 많고 물가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에 속한다. 또한 문화, 예술, 경제적인 면에서 유럽 전체로 봐도 젊고 역동적이다. 미국의 실리콘 밸리처럼 IT 신생 기업들이 둥지를 틀며 다양한 기업 활동이 활발한 곳이 베를린이다.

이 지역은 환경에 대한 관심도 높은데, 슈피겔의 보도에 따르면 테슬라 공장이 들어서는 곳은 독일에서 주민 1명당 친환경 재생에너지 생산량이 가장 높다. 또한 관련 에너지 기업들도 포진해 있어 기가팩토리를 친환경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운영하려는 일론 머스크 계획과도 어울린다. 접근성도 나쁘지 않다. 베를린 중심부 기준 40km 정도밖에 안 떨어져 있으며 공항과 가깝고 고속도로에 인접해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베를린 외에는 선택할 만한 곳이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한다. 남부에는 최고 도시임을 자부하는 뮌헨이 있고 이곳에는 아우디와 BMW가 버티고 있다. 뮌헨 조금 위에는 포르쉐와 메르세데스-벤츠의 고향 슈투트가르트가 있고, 조금 더 위로 올라오면 오펠의 본사와 공장이 있는 헤센주가 나온다.

헤센에서는 오펠 외에도 현대와 기아가 꽤 오래전부터 활동 중이다. 프랑크푸르트 위에 있는 쾰른에는 포드 유럽 법인과 공장이 있으며 토요타도 이곳을 거점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 마지막으로 베를린과 쾰른 사이에는 잘 아는 폭스바겐의 도시 볼프르부르크가 있다. 겹치지 않게 지역을 안배하면서 동시에 여러 요구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고, 결국 베를린이 선택된 것으로 보인다.



◆ 최대 1만 개 일자리 기대, 경쟁 업체들의 반응

독일은 기가팩토리가 들어옴으로써 최대 1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남들은 있는 공장도 문 닫고 동유럽 등으로 빠져나가는데 이렇게 자동차 공장이 들어선다니, 독일인들 눈에 테슬라는 예뻐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독일 중앙 정부와 주정부까지 두 손 들어 테슬라를 환영하고 있으며, 지역민들은 기쁜 표정을 감추지 않고 있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자동차 전문가들 역시 테슬라 공장이 독일에 들어서는 것이 업계 전체에 도움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기존 제조사들엔 자극이 되고, 전기차 시장의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라는 게 그들의 이야기였다. 실제로 독일 자동차 업계는 환영한다면서도 긴장하는 모습을 함께 보였다.

기가팩토리 유럽 공장이 결정 나자 독일 일간지 빌트는 BMW와 다임러 등, 경쟁 업체들의 입장을 물었다. BMW는 일론 머스크의 발표를 주목했고, (테슬라가) 더 발전할 것이라고 짧게 답했다. 하지만 다임러 그룹과 포드는 언급 자체를 아예 피했으며 오펠은 우리 회사 외 다른 업체 문제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다소 까칠한 대답을 남겼다.

그나마 아우디가 긍정적으로 답변을 보냈다. 짧은 기간 빠르게 성장한 테슬라를 존중하며, 이번 베를린 진출은 확실히 좋은 선택이었다고 평가했다. 폭스바겐 회장 헤르베르트 디스 역시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론 머스크를 칭찬한 바 있다. 특히 그는 이번 결정이 독일 자동차 산업과 강한 교류를 추구하려는 일론 머스크의 의도가 담긴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룹 전체가 테슬라와 전기차 시장을 두고 경쟁을 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마냥 그들의 독일 진출에 박수를 보낼 수는 없다.

자존심 강한 독일 자동차 산업은 그동안 테슬라로 인해 말 못 할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어느 날 불쑥 등장한 작은 전기차 회사가 고급 시장을 싹쓸이하는 모습을 속절없이 지켜봐야만 했기 때문이다. 자동차 만들기에서 최고라 자부하던 폭스바겐, 다임러, BMW였지만 적어도 고급 전기차 시장에서는 힘을 쓸 수 없었고, ‘너희들은 그동안 뭐 하고 있었냐’는 독일 내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엄청난 자금을 투자하는 등, 노력 끝에 그나마 이제 겨우 프리미엄 전기차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었지만 이번에는 자신들의 본진 깊숙하게 깃발을 꽂은 테슬라의 독일 진출을 바라보게 됐다. 일부 독일인은 테슬라 공장이 독일 심장인 베를린에 들어서는 것을 두고 다시 한번 독일 자동차 업계가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됐다고 했고,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의 지배력을 어떻게 무너뜨릴지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아야 한다며 위기를 말하는 이도 있었다.

공장 하나 들어서는 것 이상의 상징성을 가진 이번 테슬라 베를린 공장 건립은 어떤 형태로든 독일 완성차 업체에 자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과연 테슬라의 새로운 도전에 독일 경쟁자들은 어떻게 화답할까? 애써 태연한 척 표정 관리에 들어간 독일 자동차 거인들의 대응이 궁금해진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

이완 칼럼니스트 : <모터그래프> 등에 칼럼을 쓰고 있으며 ‘이완의 카폐인’이라는 자동차 동영상 콘텐츠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다. 현재 독일에 살고 있으며, 독일의 자동차 문화와 산업계 소식을 공유하는 일을 즐기고 있다.

Copyright ⓒ 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뒤로가기 인쇄하기 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