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화를 찍고 있다고 생각하자, 이 오르막 내리막이 너무 재미있지 않느냐. 어차피 우리는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될 거고, 마지막 엔딩이 중요한 거니까. 지금 영화 찍는 거라고 생각하자고 했어요. 남편이 워낙 긍정적인 사람이니까, 그런 상황들을 즐겨요.”

-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서 이동국 선수 부인 이수진의 한 마디

[엔터미디어=정석희의 그 장면 그 대사] 예쁜 여자를 만나면 삼년이, 착한 여자를 만나면 삼십 년이, 지혜로운 여자를 만나면 삼대가 행복하다는 옛말이 있다. 그렇다면 이 셋을 두루 다 갖춘 여자를 만난다면?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초대된 이동국 선수, 신은 그에게 감당키 어려운 역경들을 떠안긴 대신 고난을 함께 해줄 최상의 배우자를 점지해줬지 싶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기다렸다는 듯 들이닥치는 부상과 실수에도, 뜨거운 관심이 날이 선 비수로 뒤바뀌는 순간에도,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던 두 번의 해외진출 때도 늘 곁에서 ‘롤러코스터와 같은 이 삶을 즐기자’며 격려하고 포용해준 밝고 긍정적인 아내. 전북현대의 최강희 감독이 이동국 선수를 극적으로 부활시킨 평생의 은인이라지만 부인 이수진 씨 역시 동반자이자 또 다른 인생의 스승이 아닐는지.

사실 나는 최근의 몇몇 예능 프로그램 이전에는 이동국 선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아마 월드컵이든 올림픽이든 막이 올라야 겨우 축구와 마주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습성 때문일 게다. 지식을 총 동원해봤자 2002년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세상이 잠시 시끄러웠다는 정도? 아, 그리고 지난 연말 전북현대의 K-리그 통합 우승으로 MVP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는 기사도 접하긴 했다.

그랬으니 KBS2 <해피선데이-1박 2일>’절친 특집‘에서 ‘동국아, 니 욕 많이 했어‘라는 장우혁이 남긴 메시지를 발견하고는 “그럴 줄 알았어. 저 욕 안 한 사람이 없을 걸요?” 하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을 때, 아무리? 설마? 하며 반신반의 할 밖에. 동서인 은지원 말고는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였지만 그래도 과장이겠거니 했다. 공격수인 만큼 결정적인 찬스에 실축을 해 만인에게 실망을 안긴 적이 있긴 하겠으나 그래도 무에 그리 큰 죄라고 공적 취급을 받았을까 싶었던 것. 그런데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서 털어놓은, 14년간 가슴에 묻어두었던 속사정에 귀 기울여 보니 그 모든 게 사실인 모양이다. 이건 뭐 ’닥치고 악플‘이라고 해야 되나? 애증의 발로로 이해하기엔 너무 지나쳤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농담 삼아 예를 든 발리슛 하나만 해도 그렇다. 2004년 대 독일 전에서 그림 같은 발리슛을 성공시켜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지만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과연 실력일까, 운일까, 갑론을박까지 일었고, 그 같은 불신어린 시선은 몇 번의 발리슛 성공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 ‘얘는 떠 있는 공만 잘 찬다’는 결론을 도출해냈다고 한다.











기가 찰 노릇이지 뭔가. 뿐만 아니라 경기에 나오면 느리다느니 수비에 비협조적이라느니 비난하고, 출장을 못하면 또 몸 관리 제대로 못한다고 비난, 그러다 골을 넣으면 주워 먹기나 잘 한다고 비난, 부인 이수진 씨의 말대로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고, 별의 별 트집들을 다 잡았던 것이다. 그가 비운의 스타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으련만 도대체 왜 그리들 잔인했던 걸까?

우리나라 최고의 스트라이커지만 1998년부터 네 차례의 월드컵 동안 그라운드에서 뛸 수 있었던 시간은 고작 51분에 불과하다고 한다. 1998년, 얼결에 날린 슛 하나로 스타가 되었으나 2002년에는 ‘게으른 천재’라는 오명을 쓴 채 토탈사커를 강조하는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외면을 받아야 했고, 2006년에는 월드컵 본선 진출의 1등 공신이었음에도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으로 기다렸던 무대에 발조차 들여놓지 못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2010년, 또 한 번의 월드컵 때는 처참한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슛 하나에 꿈을 걸고 12년을 달려온 그를 이번에는 골대가 외면을 한 것이다. 순간 모든 축구팬들이 장탄식을 했겠지만 본인 심정만이야 할까. 게다가 매 경기 반드시 축구장을 찾는다는 부인 이수진 씨는 남편이 받는 뭇매를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들었을 게 아닌가. 누구나 몹시도 지치고 힘겨울 때면, 기대서 울고 위로받을 한 사람이 필요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괴롭다는 내색 안 하는 남편이, 몸이 아파도 아프다는 소리 한번 안 해본 남편이 과거 자신이 골 넣었던 장면을 몇 시간씩이나 보고 있을 때, 그걸 지켜봐야 하는 아내의 가슴은 오죽 쓰리고 아팠을까.

중동으로부터 파격적인 이적 제의를 받았으나 최강희 감독의 은혜를 차마 저버릴 수 없어 국내에 머무를 결심을 했다는 이동국 선수, 그리고 최강희 감독은 2011년 12월 대한민국 대표팀 수장으로 부임하면서 이동국 선수과 함께 하겠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그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2002년 황선홍 선수가 보여준 노장 투혼을 다시금 재현할 수 있을지, 아니면 아쉬움을 남기고 말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불운을 겁내지 않는 현명한 아내가 곁에 있는 이상 그의 도전은 해피엔딩이 될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사진=SBS,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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