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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의 신모델 파티, 왜 이런 무리를 하는 걸까요?
기사입력 :[ 2019-11-23 09:11 ]


현대기아차 연말 신모델 공세 – 완벽한 조합

[나윤석의 독차(讀車)법] 이거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요즘 현대기아차의 신모델 공세 이야기입니다. 더 뉴 그랜저, 3세대 K5, 그리고 제니시스 최초의 SUV인 GV80이지요. 신모델을 연말 두 달에 몰아서 출시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 낭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모델 수명이 다른 공산품보다 긴 자동차의 신모델은 매우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연말에 신차를 출시하는 것은 이전에도 흔한 사례가 아니었습니다. 연말은 연간 실적을 위해 할인 판매 등 프로모션이 확대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즉 프로모션 효과에 가려서 소중한 신차의 출시 효과가 최대한 극대화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한 신차가 사전 계약으로 고객들을 붙잡으면 즉시 출고할 수 있는 기존 차량의 판매에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자동차 회사는 계약서가 아니라 신차 출고와 입금을 먹고 살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기아차는 신모델을 세 가지나 11~12월에 론칭하는 겁니다. 게다가 국내 시장에는 경쟁자가 없다 싶을 정도로 현대기아차는 독주하고 다른 브랜드들은 여러 가지 이슈로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굳이 이렇게 무리를 할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그랜저와 K5는 올해 발표된 형제차인 K7 프리미어와 신형 쏘나타와 경쟁을 해야 하니 판매량 증가 효과는 보이는 것보다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효율적이지도 않고요.



그렇다면 현대기아차는 왜 이런 무리를 하는 것일까요?

제 결론부터 말씀드린다면 상당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각각의 모델 입장에서도, 그리고 회사와 시장의 상황에서도 그렇습니다. 현황이 그리 느긋하게 국내 시장의 독과점을 즐길 여유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전에 일단 세 모델의 성격부터 구분해 보겠습니다. 그랜저는 페이스리프트 모델이며 K5와 GV80은 신모델입니다. 그랜저와 K5는 세단이고 GV80은 SUV입니다. 현대와 기아는 대중 브랜드이고 제네시스는 프리미엄 브랜드입니다. 그리고 현대와 기아는 세계 시장에서 주류 플레이어에 속하는 입장이지만 제네시스는 확실히 새내기입니다. 그리고 그랜저는 국내 시장에서는 최강 베스트셀러이지만 해외에서는 존재감이 없고, K5는 중요한 모델이지만 시장 1등은 아닌 어정쩡한 입장이고, GV80은 잘 아시다시피 제네시스 브랜드 최초의 SUV입니다.



이 분석을 잘 조합하면 스토리가 만들어집니다. 핵심은 새로운 디자인 아이덴티티의 확립입니다. 현대차그룹은 공격적인 디자인 혁신을 진행 중입니다. 현대 브랜드는 이미 쏘나타부터 시작했고 기아차는 K3부터 힌트를 보였지만 K5가 실질적인 시작입니다. 제네시스도 GV80이 제네시스 디자인의 새로운 DNA를 담음 첫 번째 모델입니다.

프리미엄 시장의 후발주자인 제네시스에게는 21세기 자동차 시장을 관통하는 두 개의 키워드인 럭셔리와 SUV 두 가지를 모두 가진 첫 모델인 GV80은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가장 확실하게 자신을 차별화할 수 있는 디자인 언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전동화와 자율주행 등 미래차로서의 발걸음을 GV80을 통하여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플랫폼부터 파워트레인, 디자인까지 완전히 다른 차가 필요한 겁니다.

디자인 경영을 가장 먼저 시작한 기아 브랜드에게 새로운 디자인 언어는 제2의 도약을 위한 핵심 요소입니다. 요즘 현대기아차는 SUV에게 – 특히 중형 이상 – 패밀리카의 역할을 넘겨주며 보편적인 디자인 언어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 세단은 보다 감성적인 방향으로 차별화를 꾀합니다. 여기서 쏘나타가 그랬듯 현대 세단들은 (특히 중형 이상) 보다 중성적이거나 여성적인 반면 기아 세단들은 연령에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은 남성적인 방향으로 갑니다. 그리고 이런 방향성을 가장 잘 보여준 모델이 K5인 것이지요.



여기서 가장 불리한 모델은 그랜저였습니다. 풀 모델 체인지가 아니라 페이스리프트였기 때문입니다. 디자인이 혁명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현대기아차에서 기존 차체에 얼굴 등 일부 디자인 요소만 이식하면 이른바 ‘삼각반떼’와 같은 어색한 성형 부작용을 겪을 것이 뻔했습니다. 현대 브랜드의 기함이자 베스트셀러인 그랜저가 망가지면 그 타격은 엄청날 겁니다. 그래서 현대는 그랜저에게 페이스리프트 수준을 넘어서는 대폭 변경을 시도한 겁니다.

그랜저 디자인의 혁명적 변신이 가능했던 데에는 ‘그랜저는 팔린다’는 그랜저 브랜드의 파워가 가장 큰 힘이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디자인도 파격과 안정감의 교묘한 조합으로 기존 소비자들의 이탈은 최소화하고 새로운 고객들은 잡겠다는 의도가 잘 보입니다. 반대편 차량 혹은 보행자가 짧은 순간에도 인식할 수 있는 파격적인 얼굴, 뒤따르는 차량이 계속 바라보며 고급스러움을 느끼게 하려는 뒷모습, 차량의 오너가 현대 브랜드의 기함을 가졌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길어 보이는 옆모습과 세련된 인테리어가 잘 혼합된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그랜저의 평가를 유보했었던 이유인 주행 품질 부문에서도 휠베이스를 늘인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꽤 젊고 탄탄한 느낌이지만 불편하지는 않는 이른바 ‘젊은 고급차’의 느낌을 잘 만들어냈습니다. 팰리세이드에서도 그랬듯이 그랜저도 양적인 만족감이 질적인 부분보다 더 앞서는 편입니다만 절대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질적으로 우수한 것은 제네시스에게 양보해야 하는 것이 브랜드의 엄연한 차별화입니다.

모델별로 이유가 또렷하다고는 해도 그렇다고 해서 세 모델을 짧은 기간에 집중시킨 이유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회사와 시장 분위기 차원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강력한 2020년’이 아닌가 합니다. 즉 충분히 많은 대기 고객을 확보하여 출고가 본격화되는 2020년 초부터 급격한 오름세를 보여주겠다는 뜻입니다. 미래차로의 행보가 본격화되는 2020년을 시작하면서 현대차그룹의 세 브랜드가 각자의 이미지와 제품력을 새로운 디자인과 함께 성공적으로 시작하는 모습을 숫자로 증명하자는, 즉 현대차그룹은 미래차를 향한 새로운 강자라는 기업 이미지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전술적인 손해와 비효율을 감수하며 대격전을 시작하는 현대차그룹, 2020년은 원하는 성공의 해로 기록될 지 주시하겠습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나윤석

나윤석 칼럼니스트 : 수입차 브랜드에서 제품 기획과 트레이닝, 사업 기획 등 분야에 종사했으며 슈퍼카 브랜드 총괄 임원을 맡기도 했다. 소비자에게는 차를 보는 안목을, 자동차 업계에는 소비자와 소통하는 방법을 일깨우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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