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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는 자신들이 세운 철학을 터무니없이 쉽게 포기했다
기사입력 :[ 2019-12-04 10:27 ]


너무 빨리, 너무 쉽게 포기해버린 현대차의 패밀리 룩 도전

[이완의 독한(獨韓) 이야기] 지난달 출시한 현대자동차의 그랜저가 계속해서 화제다. 부분변경 모델임에도 안팎 디자인은 세대교체 수준의 변화를 맞았다. 그중에서도 독특한 전면 디자인은 변화의 핵심이다. 전면과 후면 일체감이 떨어진다는 얘기도 있고 전면의 급격한 변화가 여전히 적응 안 된다는 의견도 있으나 자신만의 색깔은 드러냈다는 점만큼은 이견이 없어 보인다.

한편 수소 전기차 넥쏘 때부터 변화가 시작된 실내 디자인은 모두가 만족할 만하다. 고급 세단에 어울릴 뿐만 아니라 차의 가치를 끌어올렸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다. 한마디로 디자인이 ‘열 일’을 했다고 봐야 한다. 다만 이런 파격이 성공적인 판매로 이어질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 삼엽충 논란으로 시작된 현대의 패밀리 룩

이번 그랜저를 통해 또 하나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패밀리 룩과의 결별을 분명히 했다는 점이다. 현대자동차는 늘 디자인에서 비판이 따랐다. 개성 없이 평범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우고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아이덴티티(정체성)를 분명히 해야 했고, 패밀리 룩은 이런 필요성에 따라 마련된 전사적 전략이었다.

2009년 등장한 6세대 쏘나타(YF)와 콤팩트 SUV iX35가 변화의 출발이었다. 플루이딕 스컬프쳐와 헥사고날 그릴이라는, 부르기도 어려운 표현으로 상징된 패밀리 룩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특히 쏘나타가 그랬다. 날렵한 선과 독특한 전면 그릴, 그리고 역동적 느낌의 헤드램프가 조합을 이뤄 이전에 없던 스타일을 구현했다.

미국 시장에서 즉각적으로 반응이 나왔다. 평범해서는 눈에 띄기 더더욱 어려운 미국이었기에 YF 쏘나타 스타일은 나쁘지 않게 받아들여졌다. 판매도 이런 변화 덕인지 도움을 받았다. 유럽에서도 현대가 페터 슈라이어가 이끄는 기아와 함께 자기 색깔 만들기에 들어갔다며 관심을 보였다. 2009년과 2010년은 현대와 기아가 디자인으로 세계적 관심을 끌었던 첫 시기였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삼엽충’ ‘곤충룩’이라며 쏟아진 비판과 비난이 부담스러웠던 것인지 현대는 차세대 LF 쏘나타에서는 과감함을 거둬내고 안정적이고 차분한 방향으로 다시 스타일의 변화를 줬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선택은 좋지 않았다. 개성이 사라진 신형은 북미 시장에서 판매량 감소로 이어졌고, 한국에서도 판매량이 줄었다. 그러자 2017년 풀체인지급의 부분변경 모델 쏘나타 뉴라이즈라는 내놓았다. 그리고 쏘나타 뉴라이즈가 등장한 지 불과 3년 만인 올해 8세대를 통해 또 한 번 다른 느낌의 쏘나타가 나왔다.



세대교체와 부분변경 등 과정 과정마다 쏘나타는 디자인이 계속 큰 폭으로 바뀌었다. 패밀리 룩 선언이 쑥스러울 정도의 변화의 연속이었다. 이 분위기는 그랜저에서도 나타났다. 2011년부터 출시한 5세대 그랜저는 YF 쏘나타와 닮아 있었다. 패밀리 룩 전략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2016년에 나온 6세대 그랜저는 쏘나타가 그랬듯 전 세대의 느낌을 많이 지웠다. 헥사고날 형태의 싱글 프레임 구조로 바뀌며 단정해졌고 헤드램프 역시 역동성보다는 안정감에 초점을 맞춘 듯했다. 그리고 올해 앞서 소개했던 부분변경 그랜저가 등장했다. 파격이라 말할 수 있을 만큼의 큰 변화, 다른 느낌이었다.



◆ 모델별 개성 존중? 패밀리 룩 실패의 다른 표현일 뿐

이렇듯 현대자동차의 핵심 세단 2개 모델은 끝없이 디자인 변화를 시도했다. 디자인 연결성이 중요한 게 아닌, 그때그때 최상의 디자인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듯했다. 이런 전략 변화는 2018년부터 공개적으로 드러났다. 2018년 연초에 있었던 싼타페 출시 행사에서 루크 동커볼케 당시 부사장은 현대차의 DNA는 계승하되 각 모델의 개성을 담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올 5월에 이 부분은 다시 강조됐다. 패밀리 룩이 아닌 모델별 특성, 즉 개성에 더 초점을 두겠다고 또 한 번 확인시킨 것이다. 현대차는 이런 변화를 ‘소비자 중심’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모델별 특성에 맞는 디자인을 통해 소비자에게 선택의 즐거움, 차별화의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디자인팀 입장에서도 패밀리 룩보다 디자인 자유도가 큰 이런 정책이 더 반가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차가 왜 패밀리 룩을 도전했던 것인지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왜 엄청난 시간과 비용, 그리고 노력을 기울여 브랜드의 통일된 이미지를 구축하려 했던 걸까? 현대만의 색깔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년 전 페터 슈라이어는 독일 언론과 인터뷰에서 BMW처럼 기아도 멀리서 봐도 이 차가 기아 자동차임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어디서도 현대, 기아의 자동차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하는 게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런 일관된 자기 색깔이 시간을 갖고 쌓여가면 그것이 전통이 된다. 그리고 전통은 브랜드 가치와 경쟁력을 높인다. 이는 누구보다 현대차 자신이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패밀리 룩을 시도했다. 하지만 채 10년도 지나지 않아 현대는 이런 전략을 수정했다. 아니,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포기하고 말았다.

왜 그랬는지 속내를 밝히지 않는 이상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새로운 스타급 디자이너들이 현대와 기아로 몰려들며 그들의 요구에 따라 새로운 전략이 세워진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높은 분의 말 한마디로 도어 손잡이 위치가 바뀌고, D컷 운전대 하나 적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한 곳이 현대차임을 안다면 디자이너의 힘만으로 기업 핵심 전략이 급변한 것이라고 받아들일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당장 눈앞의 결과를 위해, 조급한 마음이 꾸준하게 디자인 전략을 이어가게 하지 못한 건 아닐까?

새로운 차가 나올 때마다 화려한 수식어로 디자인을 설명한다. 모델별 차이를 강조하며 이것이 소비자에게 좋은 것임을 이야기한다. 멋진 디자인이라 칭찬이 쏟아진다. 하지만 아무리 꾸미고 설명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현대자동차의 패밀리 룩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다만, 실패했다고 이대로 물러서는 게 옳은지 묻고 싶다.

더 나은 디자인, 더 좋은 디자인의 엠블럼, 더 고급스러워진 실내 디자인 등을 묶어 다시금 도전하면 되는 일이다. 현대차가 입에 달고 사는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 역시 시행착오를 겪으며 수십 년 이상 패밀리 룩을 유지하고 있다. 그 정책을 통해 자신들만의 색깔을 만들었고, 전통을 다졌으며, 가치를 키웠다. 디자인의 좋고 나쁨을 이야기하고자 함이 아니다. 일관성 없는 기업 태도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운 핵심 전략을 너무 쉽게, 너무 빠르게 포기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

이완 칼럼니스트 : <모터그래프> 등에 칼럼을 쓰고 있으며 ‘이완의 카폐인’이라는 자동차 동영상 콘텐츠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다. 현재 독일에 살고 있으며, 독일의 자동차 문화와 산업계 소식을 공유하는 일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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