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애’ 윤계상vs‘순애보’ 윤지석, 누굴 고를까?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MBC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는 수줍은 몇 가닥의 러브라인이 있다. 그중 하나, 수차례의 고백과 좌절, 그리고 꿈과 현실을 오가는 우여곡절 끝에 박하선은 드디어 윤지석(서지석)의 사랑을 받아들였다. 맞춤법이 틀린 손 편지가 가족 모두에게 공개되는 굴욕을 겪기도 했지만 어쨌든 지금 현재, 지석은 누구보다 행복하다. 그래서 하루 종일 하선 생각을 하다못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를 위해 붕어빵을 사들고 혹여 목이라도 메일까봐 라떼까지 챙겨 온다. 몸에 밴 배려다. 그걸 받아들고 기뻐하는 하선, 그러나 행복에 겨운 표정이라고 하기엔 살짝 부족함이 있다. 하기야 그저 늘 있어온 일일 뿐이니까. 우리가 그녀에게서 설렘을 본 적이 있던가?

그에 비해 윤계상에게서 뮤지컬에 함께 가자는 제안을 받은 두 번째 러브라인의 주인공 백진희는 날아갈 듯 황홀한 얼굴이다. 더구나 하선으로부터 ‘뮤지컬 보는 건 데이트 단골 코스가 아니냐. 혹시 남친 생겼느냐’라는 소리를 듣고 난 뒤엔 두 볼은 상기되고 가슴은 두근두근, 기대감에 부푼다. 고대하던 당일, 좌석에 앉은 진희가 짧은 치마 때문에 불편한 기색이자 이내 코트를 벗어 무릎을 가려주는가 하면 뮤지컬을 처음 본다는 그녀를 위해 자상하게 이것저것 설명해주는 계상. 공연이 끝난 뒤 추우니 덮고 있으라며 자신의 코트를 어깨에 둘러주고 커피를 가지러 간 그를 바라보며 진희는 ‘나,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너무 따뜻해서 눈물 날 것 같아’라고 혼잣말을 한다.

하지만 일장춘몽이 따로 없다. 로비에서 우연히 만난 계상의 후배로 인해 계상이 3월이면 르완다로 장기 의료봉사를 떠난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 진희. 뮤지컬 관람은 진희의 바람처럼 연심에서 기인했던 것이 아니라 야근을 시킨 것에 대한 보답 차원이었을 뿐이었다. 계상의 뇌구조를 그려보자면 아마도 르완다를 비롯한 봉사 활동이 90 퍼센트 이상을 차지하지 싶다. 여성에 대한 관심은 한 점에 불과하지 않을까? 진희네 집주인인 여고생 김지원에게도 자상한 일면을 종종 보였지만, 그래서 지원 역시 진희처럼 계상을 향한 해바라기를 시작했지만, 이제 와 되돌아보면 계상의 일련의 행보들은 모두 애틋한 심정에서 나왔지 싶다. 한 마디로 말해 안쓰러워서 잘해준 것 같다는 얘기다. 하다못해 길을 가다 다친 개나 고양이를 봐도 그냥 지나치지는 않을 계상이니까.











늘 생각했다. 두 윤 선생, 계상과 지석의 부모님은 대체 어떤 분들이시기에 아들 둘을 저리도 잘 키우셨을까? 둘 다 요즘 보기 드물게 괜찮은 총각들이 아닌가. 반듯하고 정의롭고 순수하고, 거기에 금상첨화로 인물까지 훤칠하니 더 이상 뭘 바라겠나.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 참 많이 다르다. 지석이 말하길 어릴 적부터 ‘윤’이라는 성씨 말고는 일치하는 점이 없었다고 한다. 한때 질풍노도의 성장기를 보냈으리라 추정되는 지석은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교사라는 직업에 안주했고, 그와 달리 코피를 쏟아가며 학업에만 정진했을 계상은 부와 명예가 보장되는 대형병원 의사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것도 모자라 이젠 아프리카 의료봉사를 떠날 예정이다. 그것도 언제 돌아올지 모를 기약 없는 일정이다.

자 그렇다면 이제 우리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겠으나 심심파적, 재미삼아 두 캐릭터를 놓고 ‘양 손의 떡 놀이’를 한번 해보자. 남자 친구여도 좋고, 남편감이어도 좋고, 나처럼 사윗감을 고르는 마음이어도 좋다. 누가 더 좋을까? 위기의 순간 SOS를 보내기만 하면 언제 어느 때든 백이면 백, 열일 젖혀두고 달려와 줄 순애보적인 지석이 좋을까? 아니면 아무리 가족이 위급하다한들 자신 앞의 환자 생사가 더 우선이지 싶은 계상이 좋을까? 나는, 내 남자라면 망설임 없이 평생 존경심을 샘솟게 만들, 이 세상 모든 이에게 늘 친절한 큰 윤 선생을 택할 게다. 그러나 사윗감이라면 또 망설임 없이 언제나 곁에서 챙겨주고 보듬어줄, 자신의 아내 외에는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을 작은 윤 선생을 고를 것 같다.

하지만 어차피 장난이긴 해도 이런 선택들은 다 부질없는 일이다. 언제나 그렇듯, 진희가 방울토마토인 줄 알고 키우는 낑깡의 말처럼 세상일은 어떻게 될지 누구도 모르는 거니까. 어떤 것도 확실한 것 없는 거니까. 순애보 사랑 지석이 결혼 후엔 가부장적인 남편으로 변할지 누가 알겠나. 또 막상 가족이 생기고 나면 계상이 어느 누구보다 더 가족을 챙기고 보살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을 한 가지는 둘 다 진정 괜찮은 사람이라는 사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그림 정덕주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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