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가 그리는 두 개의 세계, 어느 쪽이 이길까

[엔터미디어=정덕현] SBS 월화드라마 ‘VIP’에는 두 개의 세계가 계속 부딪친다. 처음 그 부딪침은 나정선(장나라)과 박성준(이상윤)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듯 보이는 부부 사이에서 시작했다. 박성준의 불륜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그 불륜 사실이 밝혀지고 그 대상이 박성준의 라인인 하재웅(박성근) 부사장의 숨겨진 딸이자 VIP 전담팀에 갑자기 막내로 들어온 온유리(표예진)라는 게 드러나면서 그 사적인 대결구도는 공적인 대결로 이어진다.

온유리가 하루아침에 하유리가 되면서 성운백화점 재벌가, 즉 VIP의 딸이 되면서 전담팀의 서열 구도가 능력이나 경력이 아닌 혈연으로 흔들리기 시작하면서다. 부사장이 공공연하게 하유리를 딸이라 공표하고, 성운백화점 재벌가에서도 그를 집안사람으로 받아들이면서 하유리도 조금씩 변한다. 급기야 부사장이 그 힘으로 하유리를 덜컥 과장 승진시켜버리자 노력해서 성공하려는 보통의 샐러리맨들은 커다란 허탈감에 빠진다.



물론 ‘VIP’는 사회생활을 하는 남성과 여성의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대결구도 또한 담아놓은 면이 있다. 하재웅 부사장과 박성준 라인이 가진 권력구도는 새로 부임해온 하태영(박지영) 사장과 나정선과의 가시적인 남녀 대결을 보여주고, 송미나(곽선영)와 이현아(이청아)가 자신들을 성추행한 배도일(장혁진) 이사를 미투 폭로로 내모는 그 과정에서도 남녀의 대결구도는 분명히 보인다. 여기서 나정선-이현아-송미나-강지영(이진희)은 하나의 여성들의 연대가 되어 서로를 돕는다.



그렇지만 ‘VIP’가 무조건적인 남녀 성별 대결구도를 그리는 건 아니었다. 거기에는 송미나를 이해하고 지지해주려 노력하는 남편 이병훈(이재원)과 이현아를 응원하는 차진호(정준원) 그리고 은근히 나정선을 걱정해주는 마상우(신재하) 같은 남성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 등장한 하태영 사장은 여성을 대변하는 인물이라기보다는 권력의 의지가 더 큰 인물이다. 그래서 이 대결구도는 남녀의 대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당한 노력으로 그만한 대가를 얻으며 성취하려는 보통의 정상적인 인물군들과, 부정한 방법들을 동원해서 낙하산 인사를 하고 권력의 힘을 이용해 약자들에게 갑질하는 비정상적인 인물군들의 대결이다.



하재웅 부사장과 박성준의 검은 네트워크가 그걸 대변한다. 하재웅의 내연녀와 차명계좌를 박성준이 관리하고, 그런 내밀한 관계로 박성준이 이사가 되는 그 과정은 이른바 ‘VIP’라는 특정 인물군들에 의해 비정상적으로 부정이 저질러지고 그런 결탁을 통해 성공을 거두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반영한다.



반면 여전히 박성준 밑에서 차장으로 일해 왔고 심지어 지방발령까지 갈 위기에 몰렸던 나정선의 고군분투는 시청자들을 그 분노에 공감하게 만든다. 그는 남편이 이제 대놓고 불륜을 하고 있다는 걸 보면서도 사내의 복잡한 관계에 얽혀 오히려 벼랑 끝에 서 있게 된 상황이다. 부사장이 아예 초 VIP들을 위한 팀을 따로 꾸려 박성준과 자신의 딸 하유리를 그 팀에 넣고 VIP 전담팀을 와해시키려 하자, 나정선은 하태영에게 블랙다이아몬드 클럽을 운영하자며 박성준 팀과 TF팀을 구성한다. 부정한 방식으로 사내 권력을 쥐려는 저들과 나정선이 본격적으로 대결하기 시작하는 것.

하유리가 하루아침에 과장 승진을 하는 모습은 육아 때문에 만년 사원으로 승진을 못한 채 심지어 사내 갑질에 성추행까지 당하며 이제는 퇴사를 고민하는 송미나와 대비된다. 저들은 별 다른 노력 없이도 혈연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내에서 승진한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뛰고 또 뛰는 송미나가 그런 노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과는 너무나 다른 구도다.



드라마는 그래서 궁극적으로 혈연과 어두운 관계로 이어져 성공가도를 달리는 이들과 오로지 노력을 통해 사회생활에서 살아남으려 하지만 번번이 좌절하게 되는 이들이 가진 두 세계의 부딪침을 그린다. 거기에는 역시 두 개의 너무나 다른 의미를 가진 VIP들이 있다. 혈연과 어두운 관계로 이어진 이들의 세계에는 부정한 일들조차 처리해주고 받들어지는 VIP들이 존재한다. 한편 보통의 삶에서는 저들의 갑질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서로 보듬어주는 남편이나 남자친구 혹은 회사동료 같은 진정한 의미의 VIP(아주 중요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VIP’는 이 서로 다른 인물군들을 대비함으로써 어느 쪽이 진짜 VIP인가를 질문하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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