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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맨’, 어디서건 이 명작을 볼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기사입력 :[ 2019-12-18 16:24 ]


넷플릭스가 아니면 ‘아이리시맨’ 같은 영화 가능했을까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2020년 골든글로브상이 발표한 후보들을 보면 단연 넷플릭스의 선전이 눈에 띈다. 특히 영화는 도드라진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아이리시맨>>, 노아 바움백 감독의 <결혼 이야기>,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의 <두 교황>이 영화 작품상 드라마 부문 후보에 오른 것. 드라마 부문 작품상 다섯 편 중 세 편이 넷플릭스 영화라는 건 지금 세계 영화판에 넷플릭스가 가진 영향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중요한 건 이들 작품들이 가진 새로운 특징들이다. 사실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의 특징은 극장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점점 더 효과에 집중하고 실감나는 영상과 음향을 강조하면서 거기 걸리는 영화들도 그 특징에 맞게 변화한 면이 있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른바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그래서 극장을 하나의 놀이공원이자 체험관처럼 만드는 극장용 영화들로 관객들을 끌어 모았다.

그러다 보니 영화 고유의 진중한 스토리텔링이나 미장센 같은 것들보다 효과에 집중되는 면들이 강했다. ‘볼거리 영화들’이 많아진 이유다. 하지만 <아이리시맨> 같은 영화를 보면 마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로버트 드니로나 알 파치노 그리고 조 페시, 하비 케이틀 같은 어찌 보면 자신의 영화적 아이콘들을 한 자리로 끌어 모아 “본래 영화란 이런 것”이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아주 차분하고 담담하게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이 영화는 무려 런닝타임이 209분이나 되지만 눈을 뗄 수 없는 몰입감을 선사한다. 저 볼거리가 만드는 극장용 몰입감과는 너무나 다른.



<결혼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사랑했지만 작은 균열이 차츰 거대해지면서 파경을 맞게 된 부부가 이혼을 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결혼과 이혼, 사랑, 가족 등에 대한 의미들을 찬찬히 담아낸다. 대단히 극적인 사건들이 담겨지진 않지만 이혼 과정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들이 굉장한 폭발력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사실 <아이리시맨>이나 <결혼 이야기>는 극장용 영화로 본다면 사실 기획되기가 쉽지 않고 또 나아가 대중적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애매한 작품들이다. 그건 작품이 가진 성취의 문제가 아니라, 극장이라는 공간과 거기서 관객들이 요구하게 된 걸맞는 영화의 틀이 이들 영화와는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극장용 영화와 넷플릭스 같은 OTT에 세워지는 영화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건 런닝타임이다. 사실 <아이리시맨> 같은 3시간이 훌쩍 넘어가는 영화는 아무래도 극장에서는 부담스럽다. 물론 최근 들어 극장에서도 런닝타임이 긴 영화들이 세워지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몇 편의 에피소드로 나눠진 영화들도 상영되었지만 그런 작품들은 대부분 블록버스터였다. 충분한 볼거리가 제공되기 때문에 한 편에 마무리되지 않더라도 그 과정에서의 즐거움만으로 상영이 가능했던 것.



하지만 <아이리시맨> 같은 블록버스터라기보다는 긴 이야기에 가까운 영화는 얘기가 다르다. 어찌 보면 <아이리시맨> 같은 영화가 나올 수 있었던 건 넷플릭스처럼 집에서도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극장은 어느 정도 거기에 적합한 러닝타임을 요구한다. 너무 짧아도 애매하지만 너무 길어도 성공이 어렵다. 그래서 한 시간이 살짝 넘는 정도의 중편 영화들은 극장에서 세워지지 않아 잘 만들어지지 않는 경향도 생긴다. 넷플릭스에서 방영되고 있는 프랑스 애니메이션 <내 몸이 사라졌다> 같은 80분짜리 영화는 극장만이 플랫폼이라면 만들어지기 애매한 작품이다.

넷플릭스는 한 때 봉준호 감독의 <옥자>를 방영하며 멀티플렉스와 한 판 갈등을 일으킨 적이 있다. 멀티플렉스가 영화를 걸어주지 않은 것. 하지만 최근 들어 멀티플렉스들은 넷플릭스 영화들을 하나 둘 걸기 시작했다. 물론 오래 걸어놓거나, 상영관을 많이 잡지는 않지만 그래도 외면할 수 없는 좋은 작품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흐름은 마치 멀티플렉스가 그 특성상 만들어온 볼거리 경향을 이제는 넷플릭스 같은 새로운 플랫폼에 맞춰진 영화들이 조금씩 보완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그 화려한 효과들을 보여주는 영화에 도취되어 잠시 잊고 있던 영화 본래의 맛을 넷플릭스 같은 새로운 플랫폼이 오히려 복원해내고 있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아이리시맨>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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