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패다’ 윤시윤의 노고가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이유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드라마 찬(贊)△. tvN 드라마 <싸이코패스 다이어리>는 사이코패스 살인자, 기억상실 등 익숙한 소재를 독특한 발상으로 버무려 신선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매회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는데다, 이중성을 지닌 캐릭터를 맡아 호연을 펼치는 윤시윤 덕분에 상당한 재미가 느껴진다. 정인선, 박성훈, 허성태, 최대철 등의 연기도 안정적인데다, 수사극과 코미디의 요소 외에 퀴어 로맨스적인 요소까지 살짝 가미되어 참신함이 돋보인다.

착해빠진 호구였던 육동식(윤시윤)이 우연히 사이코패스 살인자의 수첩을 손에 넣은 채 기억을 잃는다. 수첩을 자기 것으로 오인한 그는 자신이 사이코패스인 줄 착각한다. 그의 내면에는 호구의 본성과 사이코패스의 자의식이 공존하는데, 상반되는 두 인격의 요소가 충돌하면서 기묘한 상황들이 벌어진다. 여기에 수첩의 주인이자 육동식이 다니는 회사의 이사인 사이코패스 서인우(박성훈)와 연쇄살인 사건을 해결하려는 심경장(정인선)이 육동식과 얽혀든다.



기억상실로 자신의 실제 삶과 전혀 다른 자의식을 가진 채 살게 된다는 설정에서 영화 <럭키>가 연상되기도 하고, 회사에서 가장 약자처럼 보이던 이가 살인충동에 휩싸인다는 점에서 <오피스>가 연상되기도 하고, 오랜 세월 괴롭힘을 당해오던 호구가 과대망상과 분열에 빠져든다는 점에서 <지구를 지켜라!>가 연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싸이코패스 다이어리>에는 일찍이 다른 텍스트에서 다룬 적이 없는 독창적인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바로 강자와 약자에 대한 역설적인 성찰이다.



◆ 강자와 약자

<싸이코패스 다이어리>의 살인자는 고시원 취준생, 독거노인, 노숙인, 공장노동자 등을 잔혹한 방법으로 죽인다. 그는 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관람하고, 살인에 대한 기록과 피해자의 지문을 다이어리에 수집한다. 살인현장에 이들의 피로 찍은 지문을 인장처럼 남기지만, 수사조차 되지 않았다. 모두 자살로 위장해서 죽였기 때문이다. 자살이 흔한 한국 사회에서, 누군가 갑자기 죽는다한들 이들의 자살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더욱이 희생자들은 모두 죽을 만큼 곤궁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 살인자는 약자에 대한 혐오로 자신의 살인을 정당화한다. 기생충 같은 자들일 뿐이고, 포식자인 자신의 쾌감을 위해 이들을 죽이는 행위는 아버지와 함께 하던 사냥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약육강식의 세계관을 극단으로 밀어붙이면 다다를 생각이다.

한편 육동식은 남한테 이용당하는 호구로, 조직의 비리를 뒤집어쓴 채 퇴사를 강요당한다. 자살을 결심한 그는 공사 중인 건물 옥상에 올랐다가 살인현장을 목격하고 도망치다 기억상실에 빠진다. 그는 우연히 손에 들어온 사이코패스 다이어리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데, 그 과정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그는 계속 의구심을 품다가 자기 것이 아니라고 한번 버린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것이 맞다고 받아들이는데, 이는 상사를 죽이고픈 충동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그는 살인충동을 느끼는 순간, 자신이 사이코패스 살인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의 착각이 그에게 무한한 전능감을 부여한다.

드라마는 호구가 사이코패스라는 착각이 안긴 전능감으로 자신을 잘 방어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만약 그랬더라면 유치한 상상력이 빚은 소망충족적인 서사이거나, 사이코패스에서 도덕의 문제를 빼버린 채 단지 ‘강함’의 문제로 사유하는 오류를 범했을 것이다. 드라마는 호구와 사이코패스 사이에서 번민하는 그를 통해, ‘강함’과 ‘약함’에 대한 중요한 사유를 끌어낸다.



◆ 이성이나 자의식 너머의 도덕 감정

자신을 사이코패스라고 착각하는 육동식은 ‘약한 자를 괴롭히기보다 나보다 강한 자를 죽이는 것에서 쾌감을 얻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강한 존재라고 믿기 때문에, 자신을 음해하려는 팀원들에게서 자신을 방어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빨리 진짜 나쁜 서상무를 죽이면 되는데, 약자인 당신이) 이런 일까지 겪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며, 순교자처럼 행동한다.

육동식은 서상무를 성공적으로 납치하여 그를 죽이려한다. 하지만 서상무가 발버둥치는 순간 살려준다. 그의 본성이 살인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이코패스인 자신이 왜 그를 놓아주었는지 고민하다가, ‘쓰레기 같은 인간들을 죽이는 것이 지겨워졌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합리화 한다. 또한 그는 자신이 과거에 저질렀던 살인을 은폐하기 위해 목격자를 죽이려 찾았다가, 오히려 그를 위험에서 구해준다. 이처럼 그의 행위는 사악한 의도와는 달리, 번번이 선한 결과를 초래한다.



자신이 사이코패스라는 인식은 그에게 비범한 용기와 정신승리적 사고를 안기지만, 그를 살인으로 이끌지 않는다. 이는 진정한 강자는 약자를 괴롭히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는 생각과 약자를 돕고 싶어 하는 ‘도덕 감정’에 의한 것이다. 그는 호구의 천성을 지닌 데다, ‘착함은 약함이 아니라는’ 엄마의 가르침을 들으며 자랐다. 그의 ‘도덕 감정’은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기억이 모두 사라진 상태에서, 스스로를 사이코패스로 여기며 이루어지는 이성적 추론에 역행하여 힘을 발휘한다. 이성 너머의 ‘도덕 감정’이 그를 선한 행위로 이끄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성 혹은 도덕이 무엇인지에 관한 심리철학적 견해를 담고 있다.

이런 ‘도덕 감정’은 육동식만 지닌 것이 아니다. 드라마 속 코믹의 상당부분을 책임지는 동네 양아치 장칠성(허성태)에게서도 발견된다. 그는 비록 생계를 위해 주먹을 써온 양아치지만, 약자를 위해 폭력을 쓰는 ‘협객’의 삶을 동경해왔다. 그는 육동식의 괴상한 행보를 보고 협객으로 오인하여 ‘형님’으로 모신다. 육동식의 정신승리가 낳은 기행들은 직장 동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불의한 상사와 나약한 이기심의 지배를 받던 후배 오미주(이민지)는 용기를 내어 서상무의 계략을 폭로하고, 부하 직원에게 ‘갑질’을 해대던 공팀장(최대철)은 육동식이 ‘칼을 잡고’ 끓여준 해장국을 먹고 온화해진다. 스스로를 강하다고 생각하는 육동식의 이타적인 행위로 인해, ‘약해서 악하던’ 사람들의 인간성이 회복된다.



◆ 포식자 살인자와 모방범죄자

하지만 이러한 ‘도덕 감정’을 모두가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서인우는 재벌가의 후계구도에서 겪는 긴장감과 경쟁심과 박탈감을 살인을 통해 해소한다. 그에게 살인은 고급한 취미생활이다. 자신의 강함과 전능감을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살인이 약육강식의 질서에 부합된다고 생각하기에, 죄의식도 없다. 파시스트적인 사고의 극단적 형태라고 볼 수 있는데, 자본가이자 개미들을 털어먹는 증권사 이사인 그가 포식자 살인자라는 점은 썩 잘 어울린다.

물론 이런 사고가 기득권층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수사를 혼란에 빠뜨린 모방범죄자는 자본주의 사회의 실패자이지만, 약육강식의 세계관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포식자로 여긴다. 그는 자신의 아내를 죽여 자신의 강함을 확인한다. 하기야 ‘일베’ 등 남초 사이트에는 사회적으로 패퇴한 남성들이 약육강식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여성 등 약자를 공격하면서 자신의 강함을 확인하려는 이들이 모여 있다. 그리고 실제로 연쇄살인범들은 대중문화 속 이미지인 매끈한 엘리트들보다 하층민 남성들이 자신을 강자와 동일시하면서 여성 등 약자에 대한 혐오로 열패감을 상쇄하려는 경우가 많다.



이는 ‘진정한 강함’에 대한 사유를 포기한 채, ‘강함’을 동경하고 ‘약함’을 혐오하는 사고가 극단으로 치달아 이르게 되는 도덕적 파탄의 지경이다. 흔히 니체의 철학을 잘못 읽으면 파시스트가 된다고 말하는데, 이는 ‘강자’와 ‘약자’에 대한 생각을 사이코패스처럼 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하지만 니체의 철학이 진짜로 말하는 것은 내적 강인함을 지닌 존재가 되어서, ‘약해서 악한’ 상태를 벗어나라는 뜻이다.

육동식은 자신이 사이코패스 살인자였다 할지라도, 이제부터 살인을 저지르지 않고 살아가려 한다. 하지만 육동식의 괴상한 착각을 알게 된 서인우가 덫을 놓는다. 자신의 범죄를 기억을 잃은 육동식에게 모두 덮어씌우려는 것이다. 드라마의 첫 장면이 경찰 포토라인에 선 육동식의 ‘사이코패스 선언’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육동식이 연쇄살인범의 누명을 쓰고 체포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인 모양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단순히 그런 결말로 흐르진 않을 것이다. 드라마가 쉽게 예측되지 않는 길을 따라 여기까지 흘러왔듯이, 육동식의 이타적인 도덕 감정과 심경장의 진범을 잡으려는 의지와 능력이 다른 길을 만들어 낼 것으로 기대한다. 무엇보다 호구와 사이코패스가 뒤섞인 복잡한 연기를 소화한 윤시윤의 노고가 오래 기억되기 위해서라도 산뜻한 해피엔딩이 준비되어 있으리라 믿는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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