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의 양식’, 음식도 아는 만큼 맛있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여행을 할 때 우린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깨닫곤 한다. 그 지역의 역사나 지식을 모르는 이들에게 어떤 건물이나 거리는 그냥 지나치는 공간이나 길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하지만 그 역사와 지식을 사전에 가진 이들에게 그건 더 풍부한 감흥을 가져온다. JTBC <양식의 양식>은 음식도 그렇다고 말하고 있다. 아는 만큼 더 맛있을 수 있다고.

애초 제목에 담긴 ‘양식’이라는 표현 때문에 이 프로그램은 ‘음식의 인문학’이 아닐까 기대하게 만든 면이 있다. 하지만 4회까지 진행된 프로그램을 들여다보면 인문학이라기보다는 ‘미식의 세계’를 여는 프로그램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프로그램을 예로 들어 표현한다면, <알쓸신잡>이라기보다는 <수요미식회>에 가깝다고나 할까.



다만 <수요미식회>는 스튜디오에 앉아서 음식을 논하지만, <양식의 양식>은 그 곳이 국내든 해외든 경험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직접 찾아가 체험하고 이야기하는 현장성이 도드라진다는 점이다. 게다가 하나의 주제로 전 세계의 유사한 음식들을 꿰어간다는 점에서는 미식의 ‘블록버스터’ 같은 인상까지 준다.

1,2회에 했던 치킨이나 불+고기의 경우는 우리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사한 음식들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글로벌과 로컬을 잇는 특징이 강했다. 그래서 편집에 있어서 외국의 어떤 장소와 국내를 오가며 하는 공간이동들은 화려한 볼거리를 만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다소 산만한 느낌을 줬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3회의 주제였던 백반은 중국 같은 곳에 유사한 형태가 있긴 하지만 한국만의 백반이 가진 특징들이 워낙 도드라질 수밖에 없어 훨씬 우리의 음식문화에 집중한 면이 있었고, 4회의 주제인 냉면은 온전히 남북한과 연변까지를 아우르고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담아내는 다양한 냉면들을 소개함으로써 훨씬 편집이 안정된 느낌을 주었다.

인문학보다는 미식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어 냉면 하나를 갖고도 평양냉면과 옥류관냉면의 차이는 물론이고 같은 평양냉면이라도 과거의 전통을 고집하는 맛과 신세대들도 즐길 수 있게 만들어진 맛의 차이를 다뤘고, 나아가 독특한 특징을 갖는 연평도와 연변 냉면까지 소개했다. 다양한 냉면의 세계에 맞는 맛의 차이가 무엇이고, 더 맛있게 즐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도 소개됐으며 여기에 냉면 마니아들에 의해 자주 논쟁이 되기도 하는 것들을 이른바 ‘냉면 썰전’ 형태로 풀어내기도 했다.



<양식의 양식>은 이런 다양한 음식이 생겨났던 풍토와 역사 같은 사실을 더하면서도 거기에 출연자들을 통한 저마다의 생각들을 담아낸다. 그것은 인문학적이라기보다는 이들의 해석이고 생각이다. 이를테면 냉면의 그 심심한 맛이 어째서 중독적인가에 대한 결론으로 정재찬 교수가 나태주 시인의 <풀꽃2>의 시구를 인용하는 대목은 문학적 상상력을 더한 해석이다.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는 시구처럼 냉면의 그 심심한 맛은 점점 알게 되면서 더 그 맛에 빠져버린다는 것.



어째서 소고기나 돼지고기, 곱창, 짜장면 같은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에는 그러지 않으면서 유독 냉면에는 “중독됐다”는 표현을 쓰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 프로그램은 그래서 그 남북을 통괄하는 냉면의 세계를 추적하며 나름대로의 결론을 얻어낸다. 물론 그건 정답은 아닐지라도 그 과정에서 우리가 알게 된 냉면의 다양한 세계는 우리에게 그 맛을 좀 더 깊게 느끼게 해주지 않을까. <양식의 양식>을 보는 맛은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온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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